작성일 : 25-05-04 08:18
[인터뷰-오빛나리 작가노조(준) 위원장] “‘최저선’ 만드는 것 넘어, ‘노동’ 새로 쓰는 노조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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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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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로 호명되지 않은 작가들 뭉쳐 노조설립 추진 … 체계·기준 없는 시장, 정당한 보상 요구
“지금의 법체계 안에서는 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런데 기존 체계 안에서만 노동을 생각하면 (작가뿐만 아니라) 인정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훨씬 많아요. 작가노조는 이러한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상상력을 통해 직접 기준을 세우려고 합니다.”
작가들이 모여 노조를 만들고 집필노동의 최저선을 마련하기 위해 교섭을 요구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사용자와 교섭하는 모습을 상상이 아닌 현실로 마주할 수 있을까. 오빛나리(33·사진) 작가노조 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작가는 왜 노동자가 될 수 없는지 사회에 질문을 던지며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가노조 준비위는 지난 2년간 수차례 집담회와 포럼을 열고 노조설립을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왔다. 최근 준비위 소속 작가들이 쓴 책 <작가노동 선언> 출간을 시작으로, 산별노조 가입과 작가 실태조사 추진 등 본격적인 노조활동에 나설 채비를 갖췄다.
5월1일 노동절을 맞아 <매일노동뉴스>는 오빛나리 위원장을 지난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서 만났다. 그간 ‘노동자’로 호명되지 않았던 작가들의 노동실태와 노조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들었다.
오 위원장은 2016년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고양예고 문창과 졸업생 연대 ‘탈선’ 대표로 활동했다. 당시 오 위원장은 “가해자의 이름은 하나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문단 내 성폭력을 단순히 한 명의 부도덕한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성폭력을 방조하고 은폐하는 데 협조적인 구조를 직시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지난 2월 말 작가노조(준) 구성원들의 지지를 얻어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20년째 오르지 않은 원고료
‘최저선’ 없는 글쓰기 노동
작가의 노동에는 ‘최저선’이 없다. <글쓰기의 최전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등을 쓴 은유 작가는 책 <작가노동 선언>에서 20년째 오르지 않은 원고료 문제를 지적했다. 은유 작가가 2006년 ‘자유기고가’로 기업이나 정부에서 내는 간행물에 글을 쓰고 받은 금액(200자 원고지 15매에 20만원)은 전업작가로 이름을 알린 이후인 2016년에도 비슷했다. 최근에는 합당한 보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청탁에는 거절 의사를 밝히기도 하지만 숱한 자기검열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관행에 균열을 내는 일은, 생계가 걸린 일감이 끊길 수 있다는 두려움과 싸우는 일이기도 했다.
은유 작가는 “누구나 생계와 존엄을 지키며 글을 쓸 수 있도록 최저 고료와 노동조건이 보장되는 구조 설계가 시급하다”며 “모두가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정작 글 쓰는 사람의 권리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모순된 현실에서 작가노조라는 울타리를 우리 손으로 만들고 싶은 이유”라고 밝혔다.
오 위원장은 작가 노동의 특징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아수라장이라고 말했다.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가 책에서 밝힌 “작가의 노동 현장은 한마디로 체계도, 기준도 무엇 하나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혼돈의 아수라장”이라는 말을 빌린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표준계약서는 권고사항일 뿐 노동현장에서는 힘이 없었다. 원고료와 인세 관련 계약은 작가에게 불리하게 이뤄져 왔고, 글쓰기만으로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은 ‘예술’이란 이름으로 가려졌다.
“작가의 노동을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는 데서 모든 문제가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소비하는 사람도 이것(글쓰기, 책)이 노동의 집합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예술이냐 노동이냐 같은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어요. 작가는 ‘창작’하는 ‘노동자’입니다. 예를 들어 르포 작가는 책을 쓸 때 현장 조사나 인터뷰 등 발로 뛰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를 노동이 아니면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작가나 글쓰기에 대한 신화를 깨는 것도 필요해요. ‘글쓰기=고귀한 무엇’이라는 신화는 그 안에서 발생하는 부조리, 불평등을 비가시화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요.”
“노조야말로 작가 스스로 노동자로 자각하고
권리 외치며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그릇”
혼자 일하는 데 익숙한 작가들이 창작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뭉친 건 2023년 3월이 시작이었다. 안명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를 포함해 소수가 모여 단체대화방을 개설했다. 지난 2년간 작가노조(준)는 장르별 작가집담회를 열고, ‘표준계약서’부터 ‘문단 내 성폭력’까지 다양한 주제로 연속포럼을 개최했다. 지난해 3월에는 알라딘 전자책 유출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혔고 같은해 6월 국제도서전이 열리는 날 ‘글쓰기도 노동이다’라는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다소 느리지만 단단하게 작가노조 출범을 위해 차곡차곡 기반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오 위원장은 과거 탈선 대표로서 경험이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당시 한 작가단체는 ‘사적인 문제’라는 선을 그었고, 문단 내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가진 단체도 ‘우리의 문제’로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해결을 도모하지는 않았다”며 “개인의 감수성 문제로 접근할 게 아니라 창작과 노동환경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협회 등이 아닌 노조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노조를 결성하고 스스로를 노동자로 자각하고, 불공정 계약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들이 권리를 쟁취하면서 동시에 노동환경 개선에 책임을 지는 ‘주체’로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작가노조(준)에는 시·소설·에세이·칼럼·르포·인문사회·웹소설·웹툰·그림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 약 60명이 모여 있다. 오 위원장은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누구나에게나 문이 열려 있다”며 “예비 작가인 지망생이나 글을 쓰는 ‘N잡러’ 모두 가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산별노조 가입 추진, 실태조사 이후 교섭 나설 것
작가노조(준)는 현재 산별노조 가입을 추진 중이다. 올해 2월15일 오프라인 전체회의를 열고 상급단체를 논의했다. 민주노총 여러 산별노조를 만나 가입을 협의한 결과 전체회의를 거쳐 금속노조 가입을 결정했다. 독립노조가 아닌 산별노조 가입은 작가노조(준) 입장에서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노조설립 신고증을 둘러싼 노동자성 입증 투쟁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쓰지 않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오 위원장은 “몇 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싸움에 많은 에너지를 들일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며 “불안정·비정규 노동이 작가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닌 만큼 ‘선배’들이 걸어간 발자국을 따라 걷고 싶다”고 말했다.
노조(준)는 지난달 10일부터 작가의 집필노동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노동시간과 계약형태, 수입과 ‘N잡’ 여부, 건강 등을 전반적으로 조사한다. 향후 정식 출범 이후 조사결과를 토대로 단체교섭과 법·제도 요구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오 위원장은 “단기적인 목표는 상급단체 가입”이라며 “실태조사 이후에는 불공정한 계약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출판사나 협회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하거나, 정부에 예술인 고용보험·산재보험 제도개선 등 사회적 안전망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노조하는 게 즐겁고 재미있으면 좋겠다”며 “기존의 제한된 선택지만 있었던 도식에서 벗어나서 여러 가능성을 상상하되 너무 추상적이지 않도록 구체성을 더해 가는 노조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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