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07 08:00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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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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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이 진행됐다. 시상식 중간 특별무대로 엄혜란 배우의 스피치와 다양한 방송미디어 제작현장의 스태프들이 ‘엔딩크레딧’이라는 무대를 꾸몄다. 이 무대의 핵심 주제는 ‘보이지 않지만 같은 곳을 향해 항해하는 사람들’로, 카메라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노고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무대 이후 수상을 하는 배우들은 모두 함께 고생한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진전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다른 한편으로는 이중성을 생각했다.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예술적 일체감은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영적인 고양감을 부여한다. 가치 있는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기여하고 함께한다는 것은, 단지 ‘노동의 가치’를 ‘경제적 가격’으로 치환하는 자본주의적 방식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이 영적인 고양감을 가질 수 있는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하면, 백상예술대상을 시상했던 중앙일보 부회장 홍정도가 이야기한 것처럼, ‘K-Culture’라는 새로운 자본의 재생산 가치를 갖는 백상예술대상에 노미네이트될 수 있는 소수의 작품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드라마 ‘정년이’의 주연 김태리 배우가 말한 것처럼, 작품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정신은 우리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가치지향적이었던 이 수상사를 들으며, 중소기업에서 고군분투해 만들어 가는 가치들을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착취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좋은 일자리를 독점하며 고용 책임도 지지 않는 대기업들을 떠올렸다. 수상자인 김태리와 드라마 ‘정년이’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이날 교양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 있다. 지난해 3월, 33년의 역사 끝에 폐관한 소극장 학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뒷것 김민기’다. 다큐멘터리는 90년대 학전의 배우들에게 계약서를 작성하게 하고, 연출 스태프들과는 근로계약서를 맺고 4대 보험을 가입시켰다는 미담을 다룬다. 극단은 배부르고 배우들은 가난했던 것이 일상이던 시기, 학전은 함께 성장하는 것을 지향했다. 이 미담이 대단하다고 칭송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노동조합을 통한 권리 확장이 멈춰 있는 현실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수많은 방송 스태프들은 대부분 프리랜서 계약을 맺는다. 그 계약에는 연차도, 퇴직금도, 4대 보험도, 노동시간의 제한도 없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예술적 일체감’은 최소한의 안전망 위에서 주체들이 노력한 결실이어야 한다. 주어지는 것이 아닌 형성하는 것이며, 해석하는 것이 아닌 느껴지는 것이다. 백상예술대상의 특별무대가 드러낸 함께하는 지향은 충분히 가치 있다. 다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방송작가유니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만들어가는 ‘유니온’할 수 있는 현장이다.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 보자. ‘그냥 쉬었음’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는 언론보도의 이면에는 관계의 고립,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다른 말로 ‘정체성’의 부재다. 산업화·민주화로 대표되는 근대 이후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한국은 급격한 정치·경제적 성장을 이뤘지만, 이를 감당할 사회의 성숙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올해 많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를 향한 한국적 ‘정’에 대한 갈망과, 이것이 드라마 속의 이야기로 그쳐 버리는 현실 가운데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이 존재한다.
올해 3월 ‘2024 청년 삶 실태조사’의 결과가 발표됐다. 삶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냐는 질문에 ‘없다’가 2년 전 조사 당시 2.45%에서 7.88%로 3.2배, 우울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응답은 2.7%포인트,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경험은 0.5%포인트 증가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의향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고, 점점 높아지는 고용 불안정성은 N잡러를, ‘그냥 쉬었음’을 늘리고 있다. 불행히도 청년의 삶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은 다양한 층위에서 복합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청년기본법이 생기고, 다양한 청년의 삶을 위한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지만, 이는 해석의 수단일 뿐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공동체 탄생을 담보하지 않는다.
우리의 정체성은 형성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음 대선의 결과에 어떠한 기대도 되지 않는다. 이는 단지 정치를 혐오하거나 냉소한다는 것이 아니다. 공론장에서 뜨겁게 다뤄지는 정년연장과 연금개혁과 같은 것들이 그 밖에서는 차디차게 식어 있는 지금, 이 사회를 말 그대로 혼돈으로 빠뜨린 세력의 단일화 같은 것에 신경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니온’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나의 경제적 상태를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발 딛고 있는 사회의 기반을 만들고, 구성원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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