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두 번 통과했는데 윤석열이 거부, 차기 정권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특수고용직 ‘카마스터’가 말하는
노조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
784일.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지회장 김선영)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촉구하며 천막농성을 한 지 28일로 784일째다. 김선영 지회장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두 차례 국회 문턱을 넘고,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무산된 과정을 국회 앞에서 지켜봤다. 매일 새벽 5시30분쯤 일어나서 국회 앞을 오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출근·점심·퇴근 선전전을 하며 ‘카마스터’(대리점 영업사원)의 실질적 노동 3권 보장을 외쳤다.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반짝’ 희망을 가졌지만 이내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좌절하는 과정을 두 번이나 겪었다.
지난 2년간 천막에서 노숙생활을 한 김 지회장은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에도 국회 앞에 있었다. 뉴스 속보를 보자마자 국회 앞 상황을 영상으로 찍어 금속노조 간부·활동가들이 모여 있는 단체대화방에 공유했다. 영상이 퍼지면서 민주노총은 발빠르게 ‘국회 앞 집결’ 지침을 통지했다. 지회의 스피커와 마이크 등 농성장 물품은 ‘계엄의 밤’에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을 뭉치게 하는 주요 역할을 했다. 그날 지회의 역할이 X(옛 트위터)를 통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후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회는 국회 농성 이전에 원청과의 대화를 촉구하며 2022년 5월부터 현대차 국내영업본부가 있는 서울 강남구 오토웨이 타워 앞에서 농성을 했다. 그런데 법원이 현대차가 지회를 상대로 제기한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고, 강남구청이 농성장을 철거하면서 농성장을 국회 앞으로 옮긴 것이다.
‘진짜 사장’ 찾기 10년 … “온전한 노조법 필요”
지회는 2015년 8월 노조설립 이후 10년 가까이 ‘진짜 사장’ 현대차·기아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카마스터’는 현대차·기아 판매대리점에서 대리점주와 판매용역계약을 맺고 기본급 없이 판매수당을 받으며 일한다. 김 지회장은 “카마스터는 정규직 영업사원과 같은 업무를 하고, 카마스터에 대한 교육이나 업무감사도 원청이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기아측은 대리점과 차량판매 위탁계약만 맺었을 뿐 “카마스터는 대리점 대표와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2019년 6월 대법원이 카마스터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판단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지회는 100여개 대리점측과 개별교섭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현재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이들의 핵심 요구는 기본급과 4대 보험 보장이었다. 대리점측에서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지회장은 6·3대선 이후 차기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로 ‘온전한 노조법 개정’을 꼽았다. 두 번 국회를 통과한 안은 사용자 범위를 ‘실질적·구체적으로 노동조건을 지배·결정하는 자’로 넓혔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원안에 담겼던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한 자’로 사용자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에 국회를 통과한 안은 우리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포함이 안 될 가능성이 높아요. ‘진짜 사장 교섭법’이라고 하지만 (지회의 진짜 사장인) 현대차와 교섭하기 어려운 현실은 바뀌지 않을 수 있어요. 원안에 담겼던 내용으로 온전한 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사용자 정의 ‘사실상 영향력 행사’ vs ‘실질적·구체적 지배’
2022년 9월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노동계와 시민사회 요구를 반영한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사용자 개념을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로 넓히고, 쟁의행위 범위도 노동관계 당사자 사이의 주장의 불일치로 발생한 분쟁상태로 확대했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폭력이나 파괴를 제외하고 노조 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선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재계는 노조법 개정안이 민법 750조에서 규정한 불법행위에 대한 손배청구권을 제한해 민사상 손해배상 법리에 어긋나는 데다 헌법상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노동자·사용자 범위 확대에 대해서도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를 붕괴시키고 노사관계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원안’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대폭 수정됐다. 첫 국회 통과안을 보면 사용자 개념은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좁혀졌고, 손배 청구 자체를 제한하는 내용도 빠졌다. ‘손해에 대해 각 배상의무자별로 각각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한다’는 내용 정도가 담겼다. 사실상 기존 판례를 입법으로 반영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다.
두 번째로 국회를 통과한 안은 노조법 2조4호 라목을 삭제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사용자가 불법을 저질렀을 경우 노조·노동자의 배상 책임을 면제하는 내용도 추가됐다. 다만 사용자 개념은 기존 통과안과 동일했다.
배달호·김주익·쌍용차·대우조선 하청노동자
노란봉투 캠페인 10년 만에 국회 통과했는데…
노란봉투법의 시작은 2013년 한 시민이 노란봉투에 돈을 담아 한 언론사에 보내면서부터였다. 2013년 12월, 법원은 파업에 참여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시민 배춘환씨는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 손배가압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돕자며 시사IN에 현금 4만7천원을 보냈다. 이듬해 노란봉투 캠페인이 본격화되면서 시민 4만7천여명이 참여해 14억6천800여만원이 모였다.
쌍용차 사건 이전에도 노동자들은 손배가압류로 계속 고통받고 있었다. 사측이 영업손실 보전을 명분으로 소송을 제기하지만 실상 노조활동 무력화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03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산중공업 배달호와 한진중공업 김주익은 손배가압류가 ‘노조탄압의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했다. 배달호와 김주익은 각각 유서에서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 “식물노조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이라고 칭했다.
2014년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손배가압류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자연스레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논의로 이어졌다. 은수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쟁의행위 범위를 넓히고 무분별한 손배 소송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노동쟁의의 대상을 ‘정리해고 및 근로조건에 관련된 사항’까지 넓히고, 영국 사례를 참고해 조합 규모에 따라 손배 청구금액 상한을 정했다.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해당 법안은 이렇다 할 논의 없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논의에 불이 붙지는 않았다. 손잡고 발기인이기도 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도 노란봉투법은 좀처럼 진전되지 못했다. 불을 당긴 것은 하청노동자의 투쟁이었다. 2022년 6~7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 파업 당시 유최안씨가 가로·세로·높이 1미터인 철창에 스스로를 가두고 농성했다. 51일간 파업 이후 대우조선은 불법파업에 따른 손해가 발생했다며 470억원 손배 소송을 제기했다. ‘손배폭탄’이 떨어지고 나서야 하청노동자가 파업에 나선 이유와 배경이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파업에 대한 손배 청구는 ‘결과’
‘숨어버린 진짜 사장’ 파업 원인 살펴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시민단체 손잡고·공공상생연대기금의 ‘손배가압류 소송기록 아카이브’(2021년 4월~2022년 5월)를 보면 소송기록이 확보된 197건(손배청구 185건, 가처분 및 가압류 12건)을 분석한 결과, 쟁의행위 원인으로 단체교섭·단체협약 관련 현안(82건, 41.6%)이 가장 많았다. 불법파견과 노조파괴, 부당노동행위, 근로기준법 위반 같은 사용자측의 불법(70건, 35.5%)이 뒤를 이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본인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 교섭할 의무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파업에 대한 손배 청구는 ‘결과’일 뿐이다. 파업에 이르게 된 근본 ‘원인’에는 ‘진짜 사장’과 논의 테이블에 앉을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노란봉투법 발의 초기에는 손배청구를 제한하는 3조 개정에 힘이 실렸다면, 21대 국회에서 ‘손배폭탄 방지법’(3조)과 ‘진짜사장 교섭법’(2조)이 한 몸으로 통과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배경이다.
양대 노총도 이번 대선에 핵심 요구로 노조법 2·3조 개정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 17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21대 대선 정책요구를 확정했다. 노조법 2·3조 개정은 7대 핵심요구에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근로자 개념 확대 및 근로자 추정제도 도입 △사용자 개념 확대 △쟁의행위를 이유로 한 사용자의 손배청구 제한이 담겨야 한다고 봤다. 민주노총도 노조법 2·3조 개정을 대선 핵심요구로 제시했다. 특수고용·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 명확화 등의 핵심 내용을 포함해 기존 국회 통과안보다 진전된 내용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노조법 2·3조 개정은 이미 늦어도 너무 늦은 과제라며 차기정부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윤지선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 활동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돼야 한다고 했던 이유를 돌이켜 봤을 때, 차기정부가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윤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들부터 책임지고 통과시켜야 한다”며 “노란봉투법은 두 번이나 거부권 행사로 좌절된 법안이다. 더 이상 미뤄서도, 축소돼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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