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 … 정치권도 ‘공감대’, 노동계 대선 요구 ‘1순위’
장시간 노동, 일방적 보수 삭감 감내
법 바깥 노동자들의 “숨 막히는” 노동
‘주 80시간’. 쿠팡 로켓배송 노동자 최낙현씨(43)의 쓰러진 동료 기사가 스스로 책정했던 근로시간이다. 최씨에 따르면 쿠팡 택배노동자들은 사실상 주 7일 일한다. 개인사업자기 때문에 주 52시간 상한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는 적용되지 않는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주 7일을 일하면 기사의 아이디가 앱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한다.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지만 무용지물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순 없다. 매일 배당되는 물량을 처리하지 않으면 CLS 정책에 따라 해고나 다름없는 구역회수(클렌징)를 당하기 때문이다. ‘백업기사’가 이를 담당해야 하지만, 이를 구하지 못하는 대리점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들의 경우 아이디를 하나 더 만들어 일한다.
서울 북부지역에서 배달의민족 라이더로 일하는 조현우씨(36)의 수입은 최근 많이 떨어졌다. 이전에는 8~10시간 일해서 벌었던 돈을 채우려면 16시간을 일해야 한다. 하루 16시간을 일할 수는 없어 소득 일부를 포기했다고 한다. 올해 4월부터 배달의민족이 배달료를 낮추면서 임금 저하로 이어진 것이다. 배달료를 낮출 수 있다는 배달 플랫폼 약관에 동의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홈플러스에서 온라인 배송을 하는 노동자 이호진씨(55)는 회사 앱을 쓰고, 로고를 달고,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 보수도 매달 일정한 수준이다. 하루 12~14시간을 일하는데 자차 운행비 등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소득은 300만원대 초반이다. 노동시간을 감안하면 최저시급에 가깝다고 느낀다. 이씨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냐”고 물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포차 식당에서 배달 라이더, 택배기사, 보험설계사 등과 간담회를 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듣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한마디를 던졌다. “숨이 막히네요.”
연차·최저임금·사회보험 사각지대
이 후보가 “숨이 막힌다”고 했던 간담회 참석자들의 사연은 그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을 적용받지 못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들은 연차휴가와 퇴직금·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돼 왔다.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가입의 경우 2008년부터 단계적으로 확대되다가 2023년 7월부터 전속성 요건이 폐지되면서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한 노무제공자라면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해졌다. 고용보험은 2021년 7월부터 특수고용직 가입이 허용돼 현재 14개 직종에 적용되고 있다.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은 형식상 개인사업자다. 사업주 또는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는 게 아니라 위임이나 도급계약을 맺고,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는다. 배달 건당 수수료를 받는 라이더나 택배노동자, 계약 건당 보수가 지급되는 보험설계사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노동자로서 구제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송이다. 자신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은 소송을 통해 이를 따질 수 있다. 재판부는 계약의 형식보다는 실질적인 노동환경을 따져 판결하기 때문이다. 현재 판례는 이들이 사업주나 사업장에 종속돼 일했고, 다른 일을 하며 돈을 벌기가 어려웠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한다.
다만 개인이 소송을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현재 법리가 종속성 요소로 업무 지시·감독을 보고 있어서, 기술 발달로 인해 사용자로부터 지시·감독은 받지 않으나 통제·관리를 받는 경우 근로자성 인정을 받기가 어렵다. 구제를 받는다 해도 구체적 사실관계를 따져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 사람만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뿐이다.
이런 구조에서 법 바깥 노동자 규모는 확대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로 추정되는 원천징수 인적용역 대상자가 2008년 326만명에서 2018년에는 669만명으로, 2022년에는 847만명까지 늘었다. 원천징수 인적용역은 개인이 독립자격으로 용역을 공급하고 대가를 받는 용역이다. 이들 중 업종이나 직종이 특정되지 않는 기타자영업이 가장 크게 늘었다.
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노동자 규모는 분석방법에 따라 최소 200만명, 최대 780만명까지 추정된다.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은 2019년 이들의 규모를 220만9천명으로 파악했다. 일하는 시민연구소는 2022년 406만명으로 추정했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2017~2021년 국세청 인적용역사업소득 원천징수 자료를 통해 778만명으로 계산했다. 우리나라의 전체 임금노동자수가 지난해 8월 기준 2천214만3천명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규모다.
“노동자 추정 원칙 넣어 근기법으로 보호”
학계와 노동계, 시민사회의 논의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을 살펴보면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범위를 확대해 법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까지 근로기준법을 적용시키는 방안이다. 다른 하나는 이들을 법으로 개념화하고, 이들을 위한 기본법을 만들어 보호하는 안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범위를 확대하는 안의 핵심은 법 바깥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추정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근로자 개념에 “자신이 직접 노동을 제공하고 사업주 또는 노동수령자로부터 그 대가를 지급받는 사람은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조항을 넣자는 안이 거론된다. 그동안 법 바깥 노동자들이 근로자성을 입증해야 했지만, 이 조항이 시행되면 사용자가 이들이 근로자가 아니라고 입증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이 내용을 담고 있다.
사용자 개념의 확대 필요성도 함께 거론된다. 현행 사용자 정의는 사용자 종류를 열거한 것일 뿐 개념을 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용 방식이 변화하면 사용자성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사용자를 ‘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에서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등 해당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로 정의하자는 안이 거론된다. 21대 국회에서 강은미 전 정의당 의원이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는 국제적인 권고를 반영한 해결책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6년 고용관계의 지표가 존재하는 경우 고용관계를 법적으로 추정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유럽연합(EU)은 ‘플랫폼 노동자 지침’에서 디지털 노무제공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사람들이 고용상 지위를 인정받아 노동권과 사회보장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2026년까지 플랫폼이 노동자들에게 지시나 통제를 한 사실이 확인되면 고용관계를 추정하는 법제도를 마련하도록 했다.
“모든 일하는 사람 개념 만들어
근기법에 준하는 수준으로 보호”
근로기준법 개정이 아닌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을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같이 새 법을 만들어 보호하자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이 방안에 대해서는 또 다른 법을 만들어 보호하는 경우 특수고용 노동자와 같이 불완전한 노동자 계층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은 근로시간과 휴식 등 근로기준법상 강행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기가 어렵고, 법안을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대안으로 거론된다.
핵심은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근로기준법에서 제공하는 근로자 보호조치와 다름없는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모든 일하는 사람’에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을 포함시키고, 사업자 개념을 만들어 △서면 노무계약 체결·교부 의무를 부여 △사용자의 일방 해지와 변경 금지 △1년 이상 일하는 사람의 휴식일 보장 △임산부 보호조치와 및 성희롱·괴롭힘 예방과 금지를 명시하자는 구상이다. 세부적인 표현은 각기 다르지만 21대 국회에서 이수진·장철민 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안이, 22대 국회에서는 김주영·이용우·장철민 의원안이 모두 같은 의도와 내용을 담았다.
다만 정리해야 할 쟁점이 있다. 사업자 개념이다. 현재 계류 중인 법안으로 한정해 살펴보면, 김주영 의원안과 장철민 의원안은 사업자를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노무를 제공받아 사업을 하는 자’로 했다. 이용우 의원안은 ‘일하는 사람의 보수 결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자의 일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알선 또는 소개해 보수의 결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 단체, 법인 등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자’로 사업자 개념을 정했다. 전자는 사업자 종류를, 후자는 사업자 개념을 확정한 것이어서 향후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일하는 사람에게 노동 3권에 준하는 권리를 부여하자는 구상도 있다. 김주영 의원안은 일하는 사람이 노무제공 조건 개선을 위해 단체를 결성하거나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사업자와 협약을 맺을 수 있도록 했으며 사업자가 협의에 응하지 않는 경우 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게 했다. 공제회를 설립해 자조복지 강화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한 내용도 있다.
김주영 의원안은 정부가 일하는 사람의 권리보호에 관한 사항을 조정·심의하기 위해 정책조정심의위원회를 두는 조항도 넣었다. 산업형태와 노동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적절한 대응을 위해 범정부적 정책 조정기구가 필요하다는 이유다.
노동계 대선요구·정책협약 맨 앞으로
노동계는 이번 대선에서 법 바깥의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 통과를 요구안 맨 위로 올렸다. 민주노총은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안을 요구했다. 한국노총은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과 고용관계 추정제도 도입을 핵심 정책요구안 맨 위에 올렸고, 민주당과 맺은 정책협약에서도 첫 번째 내용으로 설정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상식적인 사회’를 강조했다. 이호진씨는 “실질적으로 근로자고 종속관계인데 사용자 입장에서 일하는 게 부당하다고 느낀다”며 “제 바람은 상식적인 세상”이라고 했다. 이씨는 “세상이 변하고 산업 형태가 변하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그와 같이 근로기준법과 노동법 역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현우씨는 “일하는 노동자가 법으로 보호받는 상식적인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낙현씨는 “2025년에 과로 때문에 사람들이 줄지어 사망하는 나라가 어디 있냐”며 “이제 이런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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