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08 07:44
[변화하는 일터] 자동화된 지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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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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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학교급식실에 도입되는 조리로봇이 작업장 안전과 직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학교급식실 로봇은 인력 대체보다 작업보조를 통한 노동강도 경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골격계 부하가 심한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는 것에 대해 큰 만족감을 표시하는 작업자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반대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조리로봇이 도입되고 있는데, 작업자들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휴게소의 조리노동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동일한 직종이라 하더라도 일하는 방식에 따라 자동화의 영향은 매우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업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자동화의 수준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학교 급식노동의 특징 중 하나는 다양성이다. 식단이 매일 바뀌고, 식단 구성도 다양하다. 식재료 검수, 손질, 조리, 청소까지 업무 또한 다양하다. 스마트 설거지 기기, 야채 썰기 기기처럼 작업별로 자동화 기기를 사용하는 비율은 높지만, 전체적인 프로세스가 자동화돼 있지는 않다. 정해진 시간 내에 이런 다양한 업무를 해내야 하는 것은 어렵고 때로는 위험한 일이지만, 업무의 다양성은 동시에 노동자들이 도전의식과 성취감을 느끼는 원천이기도 하다. 만일 이 업무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된다면, 노동조건은 더 좋아지는 것일까? 급식노동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연구자인 나는 인공지능(AI) 서비스가 자료검색, 정리, 글쓰기의 상당 부분을 보조해 준다면, 그래서 더 많은 보고서를 쓸 수 있게 된다면,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질까?
반복 작업을 자동화한 결과 오히려 업무가 지루하고 단조로워지는 역설은 자동화의 역사 동안 계속돼왔다. 자동화된 업무환경에서 작업자의 지루함, 주의·집중력 저하에 따른 사고 위험 증가, 단조로운 업무에 따른 업무 몰입도 저하와 이탈 등에 대한 연구 역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자동화된 업무환경의 지루함에 대한 연구는 대규모 자동화가 이뤄진 제조업에서부터, 첨단 기계의 도움 속에서 노동이 이뤄지는 항공기 운항, 자율주행차량에 이르기까지 산업과 직종을 넘나든다. 노동자들이 단조로움에 의한 수동적 피로에 대처하는 대표적인 전략은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행동을 하거나, 혹은 업무의 방식을 바꾸는 것 등이다.
1931년 시리얼 회사 켈로그는 이런 노동의 단순화에 대응해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단축했다. 당시 켈로그의 경영진이었던 브라운은 일괄 조립라인을 도입한 이래 공장의 업무란 것이 단조로워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기계화 추세 속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그는 점점 더 기계화되는 노동과정에 대해 노동자가 통제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기에, 여가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켈로그는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직원들의 여가생활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켈로그의 6시간 노동은 약 55년간 지속되다가 1985년에 막을 내렸다. 켈로그의 노동시간 단축 시도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자동화의 부작용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로 여가를 즐기는 인간상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켈로그의 도전은 책 <8시간 vs 6시간>에 소개돼 있다.
자동화와 관련된 논의는 어떤 작업을 자동화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런 질문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켈로그의 사례는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일을 남겨둬야 그 일이 여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아니면 최소한 일 밖에서라도 보상을 찾아 줄 수 있는가는 노동자가 삶에 대한 통제력의 감각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질문이다. 자동화의 과정이 일의 의미, 삶의 의미를 희석한다면, 우리는 자동화된 일자리에서 의미 없음과 지루함을 견뎌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가 E.P. 톰슨은 근대 시계시간의 도입이 새로운 시간체제, 생산체제와 더불어 이 체제에 걸맞은 인간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한다. 자동화 체제는 그렇다면 어떠한 심상과 인간을 만들어 낼 것인가.
박수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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