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13 07:44
다이내믹 코리아를 넘어 예측가능한 정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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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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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인생은 노래 따라간다고 그랬던가. 한 국가의 운명 또한 국가브랜드를 따라가나 보다.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라는 표어보다 한국의 상황을 적확하게 드러내는 표현이 또 있을까. 자고 일어나면 정국이 요동치니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을 정도로 역동적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세를 일관된 관점에서 개괄하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으니 바로 ‘조직의 부재’다.
한국정치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들은 ‘조직의 부재’라는 키워드로 엮어낼 수 있다. 가령 국민의힘에서 벌어진 전격적인 후보교체라는 전무후무한 사태가 그렇다. 당 조직이 정말 제대로 기능할 수 있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최소한 조직의 원리, 내부 규율 등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면 법원이 김문수 후보의 대선후보 지위 가처분 신청을 기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법원의 노골적인 정치개입이라는 현상도 실상 한 꺼풀만 벗겨보면 ‘당 조직’에 대한 존중이 없기에 나타난 일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당원 민주주의 실종’으로 포장해 설명하고 있지만 그런 설명은 자칫 다수결주의로 흐를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본질은 당의 내부 규율에 따라 진행된 절차와 그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무시, 달리 표현하자면 결사체로서의 정당 조직의 자율성에 대한 무시였다.
좌파진영에서 나타난 후보 단일화 사태도 비슷한 맥락에서 비판할 수 있다. 많은 좌파 성향의 논자들이 김재연 진보당 후보의 사퇴를 두고 위성정당 사태의 연장에서 친민주당적인 성향의 발로로 파악하고 비판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잖아 있겠으나 유의미한 비판이라 보기는 어렵다. 한 정치적 집단이 내부의 의사결정과정을 거쳐서 전략적으로 민주당과 연합하기로 했다면 그 전략의 유의미함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자체를 두고 비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건 김재연 후보의 사퇴 과정에서 당의 대표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김재연 후보는 사퇴 직전까지도 진보당 대선후보로서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등의 여러 단체들과 정책협약을 했다. 당일 사퇴 직전까지도 그러한 정책협약을 이어 가다가 사퇴해 버렸다. 그러면 진보당과 정책협약을 한 사회단체들은 어떻게 되는가. 이래서는 당이 하나의 조직체로서 권위를 세울 수가 없다. 이런 정당과 누가 협력을 할 수 있을까. 정의당, 노동당 등의 일부 좌파 진영에서 진보당의 대선출마를 두고 결국 막판에 가서는 또 민주당과의 협력을 이유로 사퇴할 것이라고 비난했던 게 현실이 돼 버렸다.
진보당 의원, 당원, 지지자 등도 사후적으로 언론보도를 통해 후보 사퇴를 접하고 반발하는 등 내부 의사결정 과정 또한 깔끔하지 못했다. 이 모든 사태들은 결국 진보당이 하나의 조직체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대선후보조차 당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당 내외에서 정치적으로 신뢰하기 어렵게 된다.
이처럼 한국 정치에서는 조직을 존중하지 않고 되레 그 시스템을 ‘해킹’하는 방식으로 특정 정치인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전직 대통령부터가 법기술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며 법과 제도를 우회하고 해킹하는 여러 수법을 구사하다가 끝내 탄핵당했다. 위로는 대통령부터 아래로는 정당의 지도자와 당직자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들이 정당 조직을 사실상 와해시키거나 조직을 자신의 사적 이익에 종속시키려 하고 있다. 민주당도 이런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아예 대선후보 한 명만을 위한 입법을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앞서 언급했던 ‘역동성’이란 실상 아래로부터 새로운 정치적 주체, 흐름 등이 끊임없이 공급돼 나타나는 것이라기보다는, 조직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사태가 끊임없이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좌파가 새로운 세상을 지향한다면 그 첫 구호는 ‘예측가능한 정치’가 돼야 한다. 이제 규범, 권위, 조직, 시스템 등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 예측가능한 정치를 내세워야 한다.
손민석 작가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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