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14 07:43
부산의 봉제노동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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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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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조방낙지’를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부산 동구 범일동 일대를 ‘조방 앞’이라고 부른다. 조방은 조선방직주식회사의 줄임말이다. 이 회사는 1917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자본에 의해 설립한 조선 최초의 근대적 면방직공장으로 노동자 수가 2천명~3천200여명으로 규모가 매우 컸다. 하지만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을 받았다.
조방 노동자들은 1922년과 1930년, 1933년 파업투쟁을 전개했고 이는 “대한민국 수립 후 가장 치열하고 가장 대규모의 쟁의”로 기록돼 있다. 부산노동권익센터에서는 매년 직종별 노동실태조사와 정책대안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5~6개씩 발표하고 있는데 작년말 봉제업을 조사하게 됐다. 조방 앞을 왔다갔다하며 봉제업 노동자들(1인 자영업자 포함)을 찾아 3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우리는 ‘득득’, ‘드르륵 득득’ 재봉틀 소리를 따라 갔다. 빼곡하게 프린트된 봉제공장 주소록을 들고 봉제공장을 찾아다녔지만 정확한 주소를 찾기 힘들었고 간판도 없고 아예 폐업을 한 곳도 많았다. 주소지 앞에 가서도 공장 직원과 통화하고 그들이 우리를 마중나오고 나서야 공장 간판을 찾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봉제공장들이 규모가 작고 영세하다. 며칠간의 공장찾기 노하우는 ‘쪼가리 천’ 쓰레기 봉투가 보이면 분명 봉제공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재봉틀 소리에 문을 열면 좁은 공간에 재봉틀이 줄지어 있고 밀집된 공간에 놀란다. 노동자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천들과 재봉틀 소리로 가득 찬 좁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조선방직의 파업이 100년도 지난 지금, 부산 섬유산업의 노동조건은 나아졌을까.
조사 결과, 부산의 봉제업 노동자 평균노동시간은 46.2시간으로 부산의 전체 임금노동자 평균노동시간 36.8시간에 비해 9.4시간 많다. 60세 이상 고령의 봉제업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48.5시간으로 부산의 봉제업 노동자는 나이가 들수록 더 길게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더해 경력이 긴 35년 이상 일한 노동자가 일주일에 50시간 이상 일하고 있어 고령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이 확인됐다. 업체규모별로 노동시간을 보면, 5인 미만의 경우가 53.5시간으로 가장 길었다. 작은규모의 사업체에서 나이가 많을수록 노동시간이 길었는데 나이가 들면 노동시간을 줄일 것이라는 일반적 생각과는 다른 양상이 봉제업에서 나타났다. 봉제 일을 하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4배 많은 걸 보면 부산의 봉제 일을 하는 고령 여성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심각한 상황이다.
월평균임금은 200만원 미만이 72.5%로 나타나 최저임금에 대부분이 미달했다. 10명 중 약 7명 정도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했는데 여성들은 10명중 7.7명, 남성은 4.7명으로 여성과 남성의 차이도 컸다. 조사시점인 2024년 최저임금기준 월급은 206만740원으로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수준이다.
설문조사는 봉제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하는 시간에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밥 먹고 잠시라도 쉬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일이라 설문조사를 하는 우리는 마음이 조급했다. 이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봉제노동자의 ‘의자 다리’였다. 다 쓴 실패를 겹겹이 끼워 낮은 의자의 높이를 조절했다. 인체공학적 장비는 차치하고 이 의자를 보면서 영세한 봉제업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의자의 높이가 안 맞아 허리가 아프거나 작업이 불편했을 노동자의 건강과 높이에 맞는 의자를 구비할 수 없는 봉제공장의 영세함과 고령의 여성노동자의 삶의 지혜가 어울어진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봉제 공장의 사장님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노동자의 조건은 눈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책상에는 벗어놓은 안경까지 고령여성노동자를 짐작케 했다. 그 재봉틀를 사용하는 노동자는 일하던 옆 넓은 작업대에서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싸온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의류 제조업은 국제분업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고 우리나라도 해외로 생산공장을 옮긴 경우가 많다. 현재 봉제업은 영세한 곳들만 남아 더 영세해지고 있는 것이다. 봉제 노동자 조사를 하면서 왜 전망이 나쁜 사양산업 노동실태조사를 하냐는 질문을 종종 들었다. 그러면 사양산업이라 부산에 수천명 봉제노동자가 있어도 열악한 노동조건은 모른 체해도 좋은 것일까? 하청의 하청 구조로 수익성은 낮아지고 1년에 넉달가량의 비수기를 갖는 봉제업은 봉제기술을 전수받을 사람도 없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60대 이상으로 늙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최소한의 노동조건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1970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산화해 갔다. 2025년 우리는 조방 앞에서 5명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고 외쳐 본다.
김희경 부산노동권익센터 정책연구부장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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