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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5-15 07:48
어선원 재해, 넘기 어려운 입증의 벽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83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이 최후의 사회적 안전망이자 생존권 보장 수단이듯, 어선원에게는 어선원재해보상보험제도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산재보험은 사업주의 무과실책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출발했다. 그러나 점차 피재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는 기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법원도 산재보험의 생활보장적 성격에 맞춰 근로자 보호 관점에서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추세지만, 어선원재해보험에서는 아직 이러한 원리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몇 해 전 53세 남성의 직무상 질병 불승인 처분 취소소송을 맡은 적이 있다. 신청상병은 비외상성 뇌출혈이었다. 피재자는 갈치잡이 소형 어선의 선장이었고, 어선원으로 30년 이상 근무했다. 그는 오후 5시에 출항해 밤 10시께 조업지에 도착한 뒤,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야간노동을 했다. 입항 후에도 갈치 선별과 하역 작업을 2시간가량 수행했지만, 입출항 기록만으로 산정된 업무시간은 과로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수협의 재해조사에서, 출항 전 기관점검이나 하역 후 작업은 업무시간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피재자의 10년간 건강보험 수진자료에는 어선원으로 일하며 얻은 다양한 질병이 기록돼 있었다. 어깨와 허리 치료를 빈번히 받았고, 고된 노동 뒤 음주와 흡연으로 심신을 달래 오면서 고혈압·뇌경색을 앓았다.

진료기록감정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감정의는 “어업 종사자는 육체적 업무강도 평가기준상 매우 힘든 군에 속해 있고, 선상 작업에서는 소음, 진동, 고온 및 저온, 화석연료 엔진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 등에 노출된다”고 평가했다. 또한 “주 40시간대의 근무시간은 어선원 노동의 특성상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으며, 재해일 가까운 시기에 근무시간이 줄어들었다 해도 만성과로 노출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어업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위험한 직업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으며 실제 어업의 재해율이 산재보다 높다”는 연구보고도 제시했다.

선상노동에 관한 증거확보는 육상노동에 비해 월등히 어려웠다. 다행히 동료 선원의 도움으로 선박 기관점검, 출항 준비, 조업 과정, 입항 및 하역작업을 포함한 업무 과정 전반의 동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업무량과 업무강도 입증을 위해 수협에 위탁판매 실적확인서, 수산물 매매기록장 등을 제출 신청했고, 피재자 어선의 어획량이 동종 어선의 두 배가량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법원은 냉정했다. 입출항 기록이 없는 시간에 업무를 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고, 발병일에 근접해 조업일수가 기록됐으며, 30년 넘게 선장으로 근무해 업무에 적응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고혈압과 뇌경색 이력이 있으면서도 음주와 흡연을 지속한 점을 지적하면서 피재자 쪽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상병의 업무관련성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피재 어선원이 사망하거나 해당 어선을 떠난 경우, 심지어 그 어선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라도 어선에서의 업무 내용을 증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수협은 ‘소음성 난청 재해보상 실무 지침’을 개정해 보상을 신청하는 어선원 개개인이 선박 소음을 측정한 ‘작업환경 측정 결과’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어업·선박은 작업환경측정 대상에 들어있지 않아 수협에서 조사를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설득력이 없다. 보상기관인 수협에서 재해조사가 어렵다면 피재 어선원은 무슨 수로 상병의 업무관련성을 입증하겠는가.

대법원은 업무와 재해 사이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이 여전히 근로자쪽에 있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업무상 질병의 인정기준을 예시적으로 해석하고, 고용노동부 고시를 행정규칙으로 봐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 또한 증명의 난이도를 고려해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근로자의 입증 부담을 완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어선원 재해 사건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관철될 필요가 있다. 육상보다 여러모로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어선원들이 재해를 입은 경우, 그들의 생존과 가족의 생계를 보장하는 보험제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입증책임 수정원리가 더욱 실효성 있게 구현돼야 한다.

조애진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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