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08 07:49
[퀴어동네의 무지개 일터] 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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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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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활동가들이 보름간 진행한 혜화동성당 종탑 고공농성이 얼마 전 끝났다. 지난 2월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자립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천주교가 이에 대해 대대적인 입법 폐지 청원을 했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전국에 무려 175개의 장애인 거주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자립지원법이 탈시설이 불가피한 장애인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고, 장애인의 삶을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에 시설 입소를 ‘선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중증장애인은 종종 지역사회에서 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주시설에 보내지지만, 시설도 사람이 살기 매우 열악한 공간이다. 시설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여러 명이 한방에서 개인 공간 없이 살고, 사생활도 없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자고, 밥을 먹어야 한다. 뭘 먹을지도 선택할 수 없다. 종교도 시설 재단에 따라 정해지고, 마음대로 외출도 불가능하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저서 <출근길 지하철: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에서 “시설에 갇혀 사는 삶은 인간다운 삶 자체를 빼앗기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고 안전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장애인은 자신보다 경증인 다른 장애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시설종사자에게 학대당하기도 한다. 최근 울산의 한 대규모 장애인거주시설에서는 CCTV를 통해 한 달간 폭행 890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가해자는 장애인의 머리를 때리고 발을 세게 찼으며, 장애인을 짐짝처럼 질질 끌었다. 갈비뼈가 부러질 때까지 때리거나 따귀를 연거푸 치기도 했다. 이 시설은 개원 이래 40년 가까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정부 보조금을 받고 지방자치단체의 지도·점검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학대 사실이 적발된 적 없었다. 모든 시설이 그렇지는 않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이유다. 시설 장애인은 심지어는 죽기도 한다. 코로나19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장애인시설을 포함한 집단거주시설에서 사망했다.
중증장애인이 시설에서 사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말은 반쪽짜리 진실이다. 현재의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그 말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달라진다면 이 말은 거짓이 된다. 박경석 대표의 말처럼 “주거공간을 안정적으로 마련해주고,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대로 제공이 되고, 소득체계가 잘 갖춰지면 자립이 절대 불가능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조치들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이윤이 무엇보다도 우선인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을 할 수 없고 그래서 이윤을 벌어들일 가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삶에는 별 관심이 없다. 국가에 돈을 벌어다 줄 반도체산업을 뒷받침하는 데는 수조원씩 투자해도, 사회적 약자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데는 인색한 것이다. 지금도 시설에서는 “어차피 돈도 못 벌어다 주는 장애인들 제일 값싸게 관리”하기 위해 적은 수의 노동자가 여러 명을 버겁게 돌보는데,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흩어져 산다면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훨씬 많이 필요하다. 그동안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만들었던 온갖 시설과 체계도 모두 수정해야 한다.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노동권도 제대로 보장해야만 한다.
지난 몇 달간 광장에서 다른 사회를 열자고 외쳤던 목소리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 우리가 우리 삶과 이 사회의 주인인 사회는 장애인도 한 명 한 명의 주인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 사회가 한 번의 선거나 몇 개의 정책만으로 이뤄질 리는 없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수호하는 목소리를 잠재우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이 사회를 바꿔내는 것은 결국 우리의 눈부신 연대뿐이다.
손진 퀴어동네 회원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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