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12 07:55
[포용적 코포라티즘을 향해 ②] 문재인 정부 시절 포용적 코포라티즘 내세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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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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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코포라티즘의 본보기로서는 흔히 한국에서 칭송돼 온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의 사례를 들 수 있다.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1982년)은 사실상 신자유주의 사회적 대화, 즉 경쟁력 코포라티즘의 효시로 알려진다. 노사는 높은 실업률과 저성장, 인플레이션이라는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임금상승을 억제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시간제 확대와 비정규직 활성화) 및 노동시간의 단축에 합의한다.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사의 노력은 임금인상 자제와 단체교섭의 분권화를 담은 1993년의 ‘신노선 협약’(New Course Accord)과 노동 유연화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보장 강화를 담은 1996년의 ‘유연화와 사회보장에 관한 협약’으로 이어진다.
높은 실업률과 재정적자, 그리고 외국인 투자 유치의 어려움을 겪던 아일랜드에서는 1987년 국가회복 프로그램(Programme for National Recovery, PNR)이라는 사회협약을 체결한다. 협약에는 임금 안정과 법인세 감면,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화(시간제, 계약직, 임시직 등 다양한 고용형태와 유연근무제의 확대) 등이 포함됐다. 아일랜드의 사회협약은 그 이후에도 3년 터울로 6차례 더 체결됐으나 2006년 7차 협약, “2016년을 향하여, 10년의 사회 파트너십 협약”을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정부가 긴축정책을 취하고 공공서비스 노동자의 임금삭감에 노조가 반발해 사회적 대화에서 철수한 탓이었다.
사회협약의 결과로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의 기적’(Dutch Miracle)을 이루고 아일랜드는 ‘켈트의 호랑이(Celtic Tiger)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한 한국정부가 이들 국가의 사회협약에 주목한 것은 당연했다. 사회적 대화가 경쟁력과 고용창출, 그리고 경제성장에서 괄목한 만한 성과를 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노동배제의 정치가 노동참여의 정치로 바뀌면서 조직노동이 정책 결정의 파트너로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한 경쟁력의 제고라는 정부의 바람은 최초의 사회협약,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1998.2.9.)에서부터 관철됐다. 노동조합은 노동기본권(교사 및 공무원 노조의 합법화,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 등)을 얻는 대가로 파견직의 합법화와 정리해고(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해고)를 수용했다. 민주노총은 임시지도부가 합의한 내용을 대의원대회에서 거부했지만 버스는 떠난 뒤였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합의한 결과는 구조조정 대란으로 나타났다.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가 법제화되자 김대중 정부는 곧바로 구조조정에 착수한다. 공공기관의 민영화와 은행에 대한 구조조정, 그리고 현대차를 비롯한 재벌 대기업의 정리해고가 숨 쉴 틈 없이 이뤄졌다. 양대 노총은 2기 노사정위원회에 불참을 선언함으로써 불만을 표현했다. 노사정위가 가까스로 가동됐지만 공전만 거듭하다 구조조정의 충격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양대 노총은 다시 노사정위에 불참한다. 1999년 2월, 민주노총은 노사정위 탈퇴를 공식 선언한다(김용철, 2019. <한국의 노동정치>).
사회적 대화 파행 부른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사회적 대화
노사정위원회로 시작한 한국의 사회적 대화는 출발부터 경쟁력 코포라티즘으로 일관했다.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가 태동한 것은 1998년. 이때는 이미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사회적 대화, 즉 경쟁력 코포라티즘이 지배하고 있었다. 한국의 사회적 대화가 노동시장 유연화나 경쟁력 제고와 같은 요소를 앞세운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사회적 대화는 신자유주의로 향하는 통로였으며 그런 만큼 노동조합과의 불화는 불가피했다.
흥미롭게도 정부가 아일랜드와 네덜란드 모델에 주목했지만 실패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시도는 없었다. 1996년 1월에 시작해 7년만인 2002년 1월에 종결된 “노동을 위한 동맹”(Bündnis für Arbeit)’이 그것이다. 핵심주제는 노동조합이 실질임금의 동결과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수용하는 대신 사용자는 고용의 창출을 책임진다는 것이었다. 이는 금속노조의 제안으로 비롯됐다. 노동조합이 임금인상 자제를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 창출은 사용자 측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임금인상 억제를 통한 독일의 경쟁력 강화가 주로 논의되면서 ‘노동을 위한 동맹’은 사실상 노동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일종의 ‘경쟁력 동맹’으로 변질되고 말았다”(구춘권, 2020, “독일 코포라티즘의 변화와 역사적 전환에 대한 고찰”).
사회적 대화가 정부와 자본이 노동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면서 결국 노동조합은 철수한다. 경쟁력 코포라티즘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사노위가 주창하고 경사노위가 외면한 포용적 코포라티즘을 되살려야
문재인 정부에 들어 사회적 대화를 노동정책의 중심수단으로 삼으려면 사회적 대화의 성격부터 새롭게 규정해야 했다. 경쟁력을 금과옥조로 삼아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려는 사회적 대화로서는 노동계의 주체적인 참여는 물론 ‘노동존중사회’가 지향하는 노동시장 내 불평등 해소 역시 기대하기 어려웠다. 문재인 정부에서 새롭게 규정한 사회적 대화는 취약계층 보호와 불평등 해소, 그리고 사회통합을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포용적 코포라티즘(inclusive corporatism)이라고 부를 수 있다.
포용적 코포라티즘은 사회적 형평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우선 그 구성에서 다양한 계층의 참여를 보장한다. 전통적인 주체인 노사정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나 환경단체, 농민단체는 물론 비정규직 등 노동 약자계층도 주체로 포함된다. 경쟁력 코포라티즘에서는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가 노조의 양보를 강요하기 일쑤였지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는 노사중심성의 원칙과 협의 중심의 운영을 합의함으로써 노사를 사회적 대화의 중심에 배치했다. 사회적 대화가 노동존중사회 구축을 위한 토대이자 소득(임금)주도 성장정책의 지렛대였다는 점에서도 경사노위는 노사정위원회와 성격을 달리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대화를 특징짓는 키워드, 가령 노동존중사회, 소득주도성장, 노사중심성, 협의중심의 운영, 참여 주체의 확대 등은 하나같이 포용적 코포라티즘을 향한 일관된 지향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시절, 포용적 코포라티즘은 결실을 맺었을까. 다들 아는 바와 같다. 실패했다. 경쟁력 코포라티즘의 관성이 물귀신처럼 작용하는 가운데 경사노위가 합의한 운영원칙과 노동존중사회의 지향은 실종됐다.
노동존중사회의 구축을 내걸고 출범한 경사노위가 경쟁력 코포라티즘의 의제라 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첫 의제로 채택한 것부터가 역설적이었다. 합의를 의결하려던 본위원회는 계층위원의 반발로 6개월 이상이나 내부진통을 겪었다. 의제의 내용뿐 아니라 그 선정방식, 그리고 제도의 설계와 운영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문제를 드러냈다. 경사노위에서 수석전문위원으로 일했던 박명준 박사의 말처럼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는 형식만 ‘포용적 코포라티즘’이었지 내용은 과거의 ‘경쟁적 코포라티즘’과 같은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박명준. 2019.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쟁점과 과제>).
결국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존중사회의 구축은 실패했고 포용적 형태의 사회적 대화 역시 자리 잡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노동존중사회의 구축이나 포용적 형태의 사회적 대화가 폐기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새 정부에서 사회적 대화가 추진된다면 경사노위에 남겨진 다양한 실험의 흔적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적 대화를 위한 새로운 제도와 의제의 모색 못지않게 사회적 대화의 성격과 운영원칙, 그리고 지향과 같은 ‘보이지 않는 시스템’도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 경사노위 박태주 상임위원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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