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4-27 07:49
태움 속 희생된 간호사, 정신질환·자살도 산재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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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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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임상 실습을 앞둔 간호사는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통해 예비 간호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다지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본인의 안녕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의료 현장에서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태움이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다. 선배 간호사들이 교육을 명목으로 후배 간호사들에게 가혹한 언어폭력과 업무 스트레스를 주는 악습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 3명 중 1명꼴로 태움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이 사회초년생인 신규 간호사이다. 이러한 악습은 병원의 인력 부족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량, 신규 간호사에 대한 교육의 부재,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 보라”는 식의 복수심에서 비롯된다. 결국 신규 간호사들은 우울증,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의 정신질환을 앓게 되며, 나아가 일부 간호사들은 극단적인 스트레스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신질환과 극단적 선택이 산재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간호사들이 겪는 정신적 피해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거나 단순한 적응 실패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아, 결국 피해자는 산재 인정은커녕 퇴직을 강요받거나 더 큰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1두32898 판결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1항에서 말하는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안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은 여전히 피해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입증 책임을 요구하며, 산재 신청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업무 관련성을 부정하거나, 빈번하게 정신질환의 원인을 개인의 성향이나 외부 요인으로 돌린다. 하지만 간호사들이 겪는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와 직장내 괴롭힘은 이미 수많은 연구와 통계를 통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는 요건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다.
특히 정신질환과 자살의 경우, 일반적인 신체 질환보다 업무 기인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지만, 이는 노동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다. 태움이 업무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은 간호사들이 극단적 선택까지 내몰리는 현실을 고려할 때,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태도는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무책임한 행정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남겨진 유족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랑하는 가족을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해 떠나보낸 슬픔과 억울함은 그 어떤 말로도 위로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죽음은 병원 내 구조적인 문제로 인하여 야기된 것이지 단순한 개인적 선택으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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