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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6-04 07:45
상처만 남은 직장내 괴롭힘 진정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25  
지난해 나는 한 직장내 괴롭힘 사건을 수임했다. 노무사로 수년간 일하면서 직장내 괴롭힘 사건들을 많이 접해 왔지만, 이 정도로 심한 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고도 심각한 괴롭힘이었다. 심지어 해당 사건의 피해노동자 A는 오랜 기간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증거를 수집해 왔다. 괴롭힘을 당해도 이를 입증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안들에 비하면, 내용도 심각하고 증거도 충분한 이 사건은 인정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지난해 11월 초 이 사건을 노동부 B지청에 접수했고, 약 20일 뒤 출석조사가 진행됐다. 근로감독관도 조사 내내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버티셨냐며 A를 위로하고, 사안이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감독관이 바뀌었다. 기존 감독관이 병가를 갔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당초 처리기한이 지나 처리 예정기한 연장 통보도 받았다. 그 뒤 한 달도 되지 않아 또다시 감독관이 변경됐다. 인사발령이 났다는 것이다. 감독관이 두 번이나 교체되는 동안 거의 2개월의 시간이 지체됐다. 그동안 A씨는 이전보다 더 심해진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게 됐다.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노동부에 신고까지 했으니, 괴롭힘이 더 심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괴롭힘 사건이 빨리 처리돼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은 계속 미뤄졌고, 신고 뒤 A씨는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출근했다.

마지막으로 바뀐 감독관은 사건을 무려 석 달 동안 쥐고 있었다. 사쪽의 조사가 진행되길 기다린다, 내용이 많아서 검토에 시간이 걸린다 등등 전화할 때마다 기다리라고 했다. 몇 번 독촉하자 감독관은 올해 4월 말에 결론을 내주겠다고 했다. 4월 말은 처음 접수한 날로부터 약 6개월이 되는 시점이다. A씨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노동청에 진정을 낸 날로부터 6개월 동안 신고 사실이 회사와 가해자들에게 다 알려진 채 계속 출근하며 그들과 함께 일해야 했다는 의미다. 노조가 회사와 법인에 적극 요구해서 잠깐의 휴가를 받기도 했지만, 턱없이 짧은 기간이었다.

그렇게 4월의 마지막 날, 결론을 받았다. 법 위반사항 없음, 즉 불인정이었다. 내가 본 괴롭힘 사안 중 제일 심각했는데, B지청은 이 역대급 괴롭힘 사건을 불인정했다. 한 장짜리 세부 불인정 이유도 아주 형식적이고 간단하게만 적혀 있었다. 6개월을 질질 끌어 놓곤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불인정으로 사안을 종료시킨 B지청과 감독관의 태도에 화가 났다. 결과를 받자마자 조사 과정의 제반 서류를 요구하는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러나 그 정보공개청구조차도 공개 여부 결정 기간 연장을 통보했다. 사건도 끌더니, 정보공개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 화가 나지만, 그래도 감독관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경계하려 한다. 노동부도 얼마나 인력이 부족할까, 감독관 한 사람이 처리해야 할 사건이 얼마나 많을까 이해를 해보려 하는 것이다. 특별히 B지청이 다른 지청보다 더 바쁘고 힘든 건지는 모르겠으나, 내부 사정을 모르니 이해해 보려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내가 이해한다고 해서 처리를 장기간 지연시키고 명백한 괴롭힘 사안을 불인정으로 처리한 B지청의 과오가 정당화되지도 않고, A씨가 당한 이중의 고통도 사라지지 않겠지만 말이다.

손쉬운 불인정으로 B지청으로서는 내용 많고 성가신 사건 하나 해치운 것일지는 몰라도, A씨에게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와 관청에 대한 불신만 남았다. 나에게도 노동부의 신뢰성은 0이 됐다. 솔직히 이제 노동부가 제2의 가해를 하는 것과 다름없게 느껴질 지경이니, 앞으로 괴롭힘 상담이 들어오더라도 섣불리 노동부 진정을 권하진 못할 것 같다. 노동부에 신고해 봤자 별 수 없으면 어디서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주변 법률대리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노동부와 감독관의 일 처리에 대한 불신이 매우 큰 것을 피부로 느낀지는 오래됐다. 오랜 시간 세간의 평가가 이러했다면, 노동부도 반성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진정인들의 호소는 ‘해치워야 할’ ‘성가신’ ‘일거리’가 아님을 명심하기를, 감독관들이 그들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바란다.

박소영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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