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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6-05 13:50
새로운 문제에 대한 새롭지 않은 대처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20  
계엄이라는 충격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이 끝났다.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기술은 대선에서도 큰 화두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AI 투자를 통해 K-엔비디아를 만들어낸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범용인공지능(AGI) 실현위원회에서도 관련한 다양한 정책제안을 내놓았다. 기술 발전이 지정학적 패권 경쟁의 한 축이자, 각 산업의 게_임체인저로 작동하는 상황에서, 시대에 뒤처지지 않게 움직이는 정책은 너무도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기술결정론적 시각을 경계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기술은 그 자체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회와 결합해 작동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이 적용될 사회의 조건이 어떠한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다.

어떠한 신기술, 신사업이 등장하더라도, 오래된 노동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배달플랫폼에서 시간제보험이 막 만들지던 무렵, 배달플랫폼 기업의 임원이 “배달라이더 보험을 왜 회사가 책임지느냐”고 물었다. 근로계약 관계도 아니고 이륜차 유상운송보험 문제 역시 하루이틀 된 문제가 아닌데, 왜 플랫폼기업이 나서야 하냐는 것이었다. 이륜차 유상종합보험, 높은 사고율, 불투명한 고용관계 등이 만일 플랫폼기업의 등장으로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라면 오히려 기업의 책임을 더 명확하게 짚을 수 있었을까?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자동화 기술이 생산성 향상과 안정적 일자리로 이어졌다면, 기술자본주의 시대의 자동화 기술은 고용관계가 이미 파편화 된 균열 일터에서 작동한다. 균열 그 자체가 기업의 자원이 되고 있다.

“사람이 하는 것보다 시간은 더 걸립니다.” 돌봄로봇을 도입한 한 요양시설의 시설장은 이승보조 기구의 효과에 대해 평가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서비스 업종에 도입되고 있는 기술에 대해서는 ‘후딱 해버리는 것이 편하지’라는 평가를 종종 들을 수 있다. 로봇이 일을 못해서일까? 그보다는 한 사람이 여러 명의 돌봄 요구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 속에서, 돌봄노동자들이 로봇보다도 빠르게, 많이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부담을 기술을 통해 경감하고자 한다면 기술을 개발하고 도입하는 것만큼이나, 이들에게 더 천천히 일해도 되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일하는 방식을 그대로 두면서 특정 업무만 기계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과정과 평가의 기준,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인력을 배치하는 기준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술개발이 인력감축, 비용감축과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라 안전과 같은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고, 이에 맞게 체계가 개편돼야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기술 발전과 노동의 변화와 관련한 논의가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짚고 싶다. 자동화라는 단어가 휴머노이드나 자율주행차량과 쉽게 연결되는데, 이러한 연상 역시 기술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당대의 지배적 생산 기술은 문화적 규범을 만들어낸다. 대공장 시대의 규범이 성실함이었다면, AI시대의 규범은 최적화를 향한 열망이 아닐까 싶다. 유튜브에는 챗GPT를 이용해 자신의 업무 프로세스를 최적화, 자동화하는 방법에 대한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리고 업무를 자동화하는 데는 반드시 첨단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값비싼 첨단기술은 접근하기 어렵다. 무인계산대, 분식집의 자동 조리 냄비, 자동 김밥말이와 같은 기술은 첨단기술이 아니지만 훌륭하게 업무를 자동화하고 있다. 최적화라는 문화적 규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여러 기술의 결합은 대기업보다 소규모 서비스 업종이나 사무직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동안 이 칼럼에서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일터와 노동자의 경험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다뤄왔다. 일 년 반 동안의 글을 요약하자면, 기술결정론적 시각을 경계하고, 인간중심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중심적 체계의 기반은 현재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에서 찾을 수 있다. 변화하는 일터는 보기에는 새로운 현상들이 가득차 있지만,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라는 점에서는 이미 익숙한 이야기이다.

박수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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