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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6-05 13:51
광장의 빛은 얼마나 깊이 스미는가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27  
남해안에는 해파리를 제거하는 군집로봇 제로스가 있다고 한다. 해파리는 주로 여름 바닷가에 출몰해 사람을 공격하고 원자력 발전소의 취수관을 막는 무시무시한 녀석들이다. 제로스는 해파리를 구석으로 몰아 빨아들인 다음 찢어발긴다. 해파리 조각들은 바다의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바다의 바닥은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어둠이 당연한 세상이다. 우주보다 더 멀고 더 새카만 곳이다. 그곳엔 잘린 해파리 조각이 쌓이고 1만년이 넘은 고래뼈가 네 번째 고래낙하를 하고 있다. 인간은 열수분출공이 뿜어내는 뜨거운 물과 가스를 피해 바닥에 빛을 비춘다. 인간은 어둠뿐인 줄 알았던 세상을 들여다보다 놀라고 만다. 바다의 바닥에서 해파리가 다시 태어나고 있다.

‘여름이 거꾸로 펼쳐진다. 우리 모두가 삶을 향해 움직인다. 우리 모두가 죽기를 거부한다.’

나는 제로스에게서 우리나라의 법과 정치를 본다. 제로스는 해파리가 왜 갑자기 남해안을 뒤덮었는지, 공존할 방법은 없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할 뿐이다. 차별금지법을 외치는 퀴어를 지워 버리고, 광장을 밤새 지킨 여성을 차별막 뒤로 미루고,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를 방치하듯이. 이동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고, 노키즈존에서 쫓겨난 아이들을 길에서 지우듯이. 그렇게 이 사회의 모든 차별과 혐오는 사라진다.

일단 문제는 해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당장 눈앞에서 해파리가 사라졌으니 사람들은 다시 물놀이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되찾은 바다는 언뜻 보기엔 안전해 보인다. 그러나 빛은 바다로 깊이 스미지 못한다. 바다의 바닥엔 갈기갈기 찢긴 것들이 쌓이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희생자, 열사 등의 이름으로. 그 어느 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슬픔으로 쌓인다.

‘빛은 무엇을 원할까? 더 많은 자기편? 맞다. 맞고, 또한 어둠을 뒤흔들고 싶다는 마음.’

수면의 빛은 심해 어디쯤 멈추지만, 끝내 바닥을 찾아 가는 빛이 있다. 지난 6개월간, 아니 그 이전부터 광장과 길바닥을 제집처럼 지켜야 했던 이들이 보낸 조그만 잠수정이 켜 놓은 빛이다. 그렇게 새카만 바다의 바닥에서, 해파리는 다시 태어난다.

모든 조각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심과 애정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전혀 희망이 없을 것 같던 조각들에서조차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 무도한 정권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마음이 이어져 연대와 지지가 해고노동자를 복직시켰듯이, 장애인들을 경찰에게서 지키고, 내 안의 편견을 부수고 차별금지법을 외쳤듯이. 3년 만에 주어진 투표용지에 이번만큼은 다르리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눌러 담았듯이.

6월3일, 눈을 뜨자마자 투표장으로 달려가 간절한 마음으로 한 표를 찍었다. 콩하고 찍는 동작이 경쾌하고 쉬워서, 마치 지난 6개월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가벼운 마음 같아서 잠시 멈춰서 투표용지를 바라봤다. 이전보다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일만 잘하는 정부이기 이전에, 소외받고 차별받던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모여 탄생한 정부라는 것을 모두가 기억하기를 바랐다.

광장이 밝힌 빛은 어디까지 깊이 스밀 수 있는가. 빛이라곤 스미지 않던 바다의 바닥까지 관심과 애정이 드리울 수 있을까. 그리해 암흑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투쟁을 이어 오던 이들에게 마침내 일상을 돌려줄 수 있을까. 우리가 광장에서 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기를 바라고 바란다.

김자연(란다) 공인노무사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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