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Home|자유게시판|자유게시판

 
작성일 : 25-04-14 08:39
설익은 소득주도성장 정책, 일찌감치 좌초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7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 정권의 개혁적인 성격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정책이다. 기존의 재벌·대기업 중심, 수출주도의 성장 대신 노동자와 중소기업이 중심이 되고 내수가 주도하는 성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이다.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을 해소해 불평등 개선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전략이었다.

이런 점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성장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자 진보진영의 새로운 성장 담론에 해당한다. 그 개혁적인 성격도, ‘소주성’이라 불렸던 그 단어도 지금은 한때 유행했다가 사라진 말처럼 됐지만 말이다.

“그동안 진보진영은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인 성장에 대한 담론이 부족했다. 경제성장이나 국가 경쟁력에 관심을 덜 가졌던 게 사실이다. 이제 성장에서도 보수와 경쟁해 지지 않아야 한다.”(문재인, 2013. <1219 끝이 시작이다>)

수출로 벌어들인 대기업의 이윤은 아랫목만 데웠을 뿐 경제 전체에 온기를 더하지는 못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이 낙수효과를 잃으면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성장을 저해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세계경제가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국면으로 접어든 데다 세계화의 후퇴로 통상환경이 나빠진 상황에서 수출 패러다임을 지속하기도 어려웠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실질소득을 인상하고 정부지출을 늘려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획기적인 전략전환을 추진했다.

소득을 높이는 수단으로는 가계소득 증대, 사람에 대한 투자, 그리고 사회안전망・복지 확대가 동원됐다. 특히 가계소득을 높이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공공 일자리 확대, 청년 일자리 창출과 같은 시장소득 증대방안과 함께 공공서비스 확대와 취약계층 복지 확대와 같은 재분배정책을 병행했다.

소득주도성장과 수출주도성장의 충돌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실전에 투입했지만 제대로 성과를 낸 것은 아니었다. 이론적 검증도 부족했고 정책적 대안도 풍부하지 못했다. 짧은 글이니만큼 두세 가지만 지적한다.

먼저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수출주도성장 정책 사이의 모순이다. 두 정책은 임금과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반된다. 수출주도성장은 경쟁력을 이유로 실질임금을 억제하고 노동조합을 약화하려는 동기를 갖는다. 총수요의 큰 몫을 수출이 차지한다면 임금을 높여 내수를 진작시킬 유인도 크지 않다. 반면에 소득주도성장은 내수를 성장의 엔진으로 삼는 만큼 실질임금 인상과 노동기본권 보장을 강조한다.

내수를 성장의 엔진으로 삼는다고 해서 수출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이 실질임금의 인상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를 감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경제를 한 정권의 임기 동안 내수경제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재벌 대기업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지도 불확실했다. 두 정책 사이의 점진적인 이행전략이 필요했지만 전략적 준비는 부족했다.

“개방경제에서는 (명목임금의 상승으로 달성한) 실질임금의 상승이 외국기업에 대한 국내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따라서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해외의 수요를 감소시킬지 모른다.”(마크 라부아, 2016)

노동 주체의 실종과 사회적 대화와의 괴리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핵심 주체 또한 논란이 됐다. 임금인상이 내수 증대로 이어지려면 저소득 노동자의 임금이 인상되고 임금격차가 축소돼야 한다. 저소득 계층의 소비 성향이 상대적으로 높아 이들의 소득증대가 소비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불평등과 빈곤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프랜차이즈 고용 관행 개선 등을 추진한 것도 이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싸고 격렬한 정치적 공방이 오갔지만 세부적인 정책대안은 제한적이었다. 가령 “민간부문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 방안은 무엇인가” “임금격차를 어떻게 완화하나” 그리고 “노동조합의 교섭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등은 텅 빈 질문으로 남았다. 노동복지, 최저임금, 소상공인 지원, 사회안전망 정책 등과의 연계와 우선순위를 조율하는 종합적인 정책이 되지도 못했다. 최저임금을 인상했지만 그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발목을 잡았다.

노동이 주체적으로 참여한 것도 아니었다. 수출주도성장 정책이 ‘국가-자본 동맹’을 기반으로 한다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국가-노동 동맹’을 기반으로 삼는다. 이런 점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노동주도 성장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향식 정책 위주로 추진되면서 노동 주체는 배제됐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임금 및 소득증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노동존중사회를 구축하라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것은 사회적 대화와 유기적으로 연계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개 닭 보듯’ 따로 놀았다. 사회적 대화가 바탕이 되지 않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정부의 온정주의에 머물거나 전시용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저임금 노동자와 소상공인을 대립구도로 몰아넣었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상징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노동자와 소상공인 사이에서 ‘약자들의 갈등’만 부추긴 모양새가 됐다. 이는 곧 “소득주도성장 정책,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라는 역설을 낳았다(이혜윤, 20-21).

결국 최저임금 인상정책은 철회되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경기침체와 맞물려 동력을 잃는다. 미중 무역갈등과 한일 무역갈등,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어지면서 경제정책은 다시 전통적인 수출주도성장 정책으로 회귀한다.

소득주도성장, 끝나지 않은 여정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소득주도성장 정책 실험은 새로운 도전이자 가보지 않은 길을 탐색하는 실험이었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간판을 내리면서 내놓은 평가는 장사꾼이 좌판 위의 갈치를 좋게 말하듯 지나치게 후하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소득분배는 개선됐고 일자리의 질은 향상됐다.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해소,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도 성과로 꼽는다. 최저임금 인상에도 일자리는 늘었으며 ILO 기본협약도 비준했다(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2022. <소득주도성장, 끝나지 않은 여정>).

결과적으로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저성장과 양극화를 극복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야심 찬 기획은 논란에 휩싸이다 임기가 끝나면서 흔적조차 희미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방향이 틀렸다거나 여정이 끝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출주도성장 정책을 둘러싼 통상환경의 변화와 그것이 초래한 불평등 속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여전히 중요한 대안의 하나다. 이를 대체할 지배적인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이 등장한 것도 아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진심이던 그 많던 경제학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를 묻는 이유다.

소득주도성장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주도한 ‘임금주도성장’ 개념을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까지 확대한 일종의 포용적 성장전략이다. 그것이 노동을 주체로 삼아 노동존중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일환이라면 사회적 대화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그렇게 될 때 사회적 대화는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포용적 대화’로 바뀐다. 이어지는 주제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오늘의 방문자 1 | 총 방문자 381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