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정부 회의체 노동자 대표 달랑 3명 … 17개 지자체 탄소중립위원회는 고작 1명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 집행위원장이 정의로운 전환을 논의하는 대화체를 보며 든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지금 여러 군데 대화기구에서 (전환) 논의가 시작 단계인데, 발전비정규직 고용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몇 차례 회의를 했다고 알고 있지만 (노동계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는) 기존 대책만 되풀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도처의 ‘정의로운 전환’ 논의, 비정규직은 외면
2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해 중앙정부 기준 3곳에서 대화기구를 구성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석탄발전 전환 협의체와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심의위원회 산하 산업전환고용안전전문위원회 그리고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다. 광역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는 지역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있다.
이 중 그러나 산업전환으로 일자리를 잃을 발전비정규직이 참여하는 기구는 없다. 석탄발전 전환 협의체는 관계부처와 지자체, 발전 5사(한국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가 모이지만 노동단체 자리는 없다. 산업전환고용안전전문위에는 위원 16명 중 노동자대표가 2명 포함돼 있지만, 발전비정규직은 배제됐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는 위원 58명 중 한국노총과 서울교통공사올바른노조가 노동계 대표로 참여한다. 어디에도 비정규직 명패는 없다. 17개 광역자치단체의 지역탄소중립위에는 노동자대표성을 가진 위원을 위촉한 곳이 전남도 1곳에 불과하다.
발전비정규직이 원하지 않는 건 당연히 아니다. 발전비정규직은 강하게 대화기구 참여를 요구해 왔다. 이태성 집행위원장은 “위원회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정확하게 모른다”고 했다.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들은 국가가 책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떤다.
오죽 간절하면 거버넌스 구상까지 직접 짜냈다. 화력발전소 폐쇄가 진행되는 지역의 시민·환경단체·고용형태별 노조가 참여하는 정부 차원의 거버넌스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이태성 집행위원장은 “지금이라도 화력발전소 폐쇄를 단순히 발전소 설비 가동 중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지역경제 등 연계된 수많은 사회적 관계망의 큰 변화로 보고 대화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의로운 전환 관점에서 노동자와 지역사회 의견이 정책에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도 같은 목소리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축소나 조정의 정확한 규모와 일정을 공개해 노동자와 협의해야 하는데 정부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를 통해 추산할 뿐) 정확히 알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을 전환 대화기구에서 배제한 것은 법률 위반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2021년 제정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의 입법 취지와 조문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 법의 2조는 기후정의를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의사결정과정에 동등하고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3조는 기본원칙으로 “탄소중립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 추진 과정에 모든 국민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도록 했다. 4조는 국가와 지자체가 기후정의 원칙에 따르도록 의무를 규정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구 기획실장은 “화력발전소 폐쇄는 2017년부터 제기된 문제인데 지금 위원회를 가동해도 늦다”며 “노동자나 시민은 정책이 결정된 뒤에서야 사후적으로 논의에 참여시키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발전비정규직 87.8% ‘유휴인력’ 탈석탄시 실직 불가피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이 중요한 까닭은 일자리 때문이다. 지금 발전비정규직은 발전소 폐쇄에 따른 실직을 목전에 뒀다. 현재 2021년 기준 석탄화력 발전부문 발전 5사 정규직은 1만2천명, 1·2차 하청업체 노동자는 8천여명, 자회사 노동자는 2천500명 정도 재직 중이다.
우리나라는 2036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59기 중 28기를 폐쇄한다. 올해 12월 태안 1호기가 폐쇄된다. 내년에는 태안 2호기와 하동 1호기, 보령 5호기가 문을 닫는다. 각각 48명, 70명, 43명, 19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지난해 11월 한전산업개발노조와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대표자회의가 발전 5사의 자료를 모아 구성한 ‘석탄화력발전소 28기 발전비정규직 재배치 현황’을 보면, 비정규 노동자 2천328명 중 87.8%인 2천46명이 유휴인력으로 분류됐다.
이들 일부는 그래도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로 전환을 기대해 볼 수는 있어 보인다. 정부는 탈석탄을 추진하면서 석탄화력발전소 일부를 LNG발전소로 전환할 계획을 세워 추진 중이다. 태안 1호기와 2호기, 하동 1호기와 보령 5호기 등 2036년까지 폐지되는 석탄화력발전소는 모두 LNG로 전환된다.
문제는 ‘일부’라는 대목이다. LNG발전소는 석탄화력발전소에 비해 운용인력이 70% 수준이다. 일부만 전환되거나, 모두 고용하는 대신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태성 집행위원장은 “발전비정규직이 하는 일을 고려하면 정비파트만 LNG발전소에서 일할 수 있어, 열 명 중 일곱 명은 못 간다”며 “LNG는 답이 아니다”고 했다.
게다가 이런 영향은 발전비정규직에 집중된다. 실제 한국노동연구원의 2022년 ‘석탄 화력발전소 폐지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폐쇄된 발전소 10기에서 근무하던 정규직 740명은 전원 재배치됐지만, 자회사나 1·2차 하청업체는 고용유지율이 89.3%로 노동자 10명 중 1명은 정년퇴직하거나 일자리를 잃었다. 정부도 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1년 연구용역에 따르면 폐쇄 발전소 중 일부를 LNG발전소로 전환해도 4천911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공정의 특성상 발전사 정규직 중 46%는 일자리 전환이 어렵고 하청업체 노동자는 69%가 전환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단계적 발전소 폐쇄와 함께 발전사 비정규직의 단계별, 대규모 실직을 피하기 어렵다.
재생E 전후방 녹색일자리 주목받는데 우리만 ‘원전’
대안으로 주목받는 건 재생에너지다.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경우 석탄화력발전소보다 일자리 창출효과가 더 높고, 여기에 공공이 개입해 일자리의 질을 높게 유지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구 기획실장은 “LNG로 전환해도 발전비정규직 3분의 2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공공재생에너지 요구에 대한 논의도 빠르게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의 발전산업 전환 대안 가능성은 국제적으로도 높게 점쳐진다. 비영리법인 기후솔루션(SFOC)과 국제 기후 과학정책 전문 연구기관인 클라이밋 애널리틱스(Climate Analytics) 분석에 따르면 석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경우 일자리 창출 잠재력은 2.8배다. 건설·설치와 운영·유지보수 일자리, 에너지원의 장비 제조와 관련한 일자리 등이 포함된다. 한재각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은 “2038년에 풍력발전은 1만2천여명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민간 기업의 이윤 극대화 논리에 질 낮은 일자리가 될 가능성을 공공재생에너지 전략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반대로 갔다. 윤석열 정부는 원자력발전에 올인했다. 집권 후 발표한 10차·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은 이를 방증한다. 10차 전기본에서 원전 발전 비중을 전체의 32.4%, 신재생에너지는 21.6%로 잡았다. 문재인 정부와 비교해 원전 비중은 8.5%포인트 올랐고, 신재생에너지는 8.6%포인트 내렸다. 기조는 11차 전기본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2038년까지 원전 발전량 35.2%, 재생에너지 29.2%로 잡았다. 당초 대형 원전 3기와 이른바 ‘차세대 미니 원전’으로 불리는 소형모듈형원자로(SMR) 1기 건설 계획도 담았으나 야당과 환경단체 반대에 부딪히자 대형 원전은 1기만 짓기로 했다.
원전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됐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충격과 방사능폐기물 매립 위험이 계속 상기됐다. 최근엔 송전선로 부담도 거론된다. 재생에너지는 태양과 바람처럼 자연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변하는 변동성이 특징이다. 원전은 다르다. 한 번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쉽게 끄기 어려운 경직성을 가진다. 생산한 전력을 운반하는 송전망은 전기 주파수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두 전력원을 운영하게 되면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보통 재생에너지 스위치를 내린다.
대선의제, 비정규직 참여 거버넌스 구축 논의는 빈약
차기정부는 어떤 방향을 택할까. 발전비정규직 참여 거버넌스를 약속한 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다. 권 후보는 이해당사자 참여를 확대한 대통령직속 탈탄소사회전환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국회 안에 상설 기후경제위원회를 설치해 입법권과 예산심사권까지 부여하고, 재생에너지 전문 국책연구기관도 설립한다. 정부조직 내에 기후와 에너지 산업을 총괄하는 별도 부처를 설치하고,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당사자 참여 거버넌스로 재편하는 셈이다.
권 후보는 기존 정부 계획보다 빠른 2035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되 발전노동자의 총고용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탈석탄법 제정도 약속했다. 원전에 대한 입장은 ‘탈핵기본법’을 제정해 2040년 탈핵 달성을 목표하겠다고 밝혔다.
유력한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와 정의로운 전환 실현을 약속했다. 정의로운 전환 특구를 지정하고, 고용전환과 신산업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두 후보는 대체로 재생에너지 강화에 대해 한 목소리를 냈다. 환경운동연합과 에너지전환포럼 등 시민사회 연대체 ‘기후시민프로젝트’가 대선 후보들에게 정책 제안 질의서를 보낸 뒤 받은 답변에 나와 있다. 민주당은 “재생에너지를 우선으로 하는 전력대책 수립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민주노동당은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전체의 60%로 늘리고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4%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응답하지 않았다.
나머지 후보들에서는 에너지 전환이나 고용대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공약집에 ‘기후’단어도 없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환경부를 기후환경부로 바꿔 선제적 대응을 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원전 확대와 산업용 전기료 인하를 강조해 정의로운 전환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인식을 보였다.
정의로운 전환의 가능성을 고려하면 정치권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더 비중을 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천호 대기과학자는 “에너지 전환은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이고 제도는 정치가 만든다”며 “제대로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정치가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민이 더욱 목소리를 내 정치권을 압박하고 그래도 안 된다면 시민의 힘으로 정치 자체를 바꿔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발전사 노사·비정규직까지 “해상풍력 발전공기업” 한목소리 ***
탄소중립을 위한 정부 역할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상향에 그치지 않고 직접 생산을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공공부문이 직접 생산에 역할을 해야 빠른 재생에너지 발전이 가능해 에너지 민영화를 막을 뿐만 아니라 발전노동자의 일자리 역시 직접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산업에는 민간 기업들의 이른바 선행투자가 이미 이뤄져 있다. 일각에선 알박기라며 비판한다. 재생에너지 중 한국에서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해상풍력을 보면 지난해 8월 말 기준 풍력발전소 사업 허가의 93%는 민간사업자가 소유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풍력산업협회 추산이다. 이 중 외국자본 비중은 66%(발전용량 기준)다. 재생에너지가 민영화 형태로 귀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그래서 시민사회와 노동단체 등은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을 요구한다. 재생에너지 관련 개발·소유·운영·관리 주체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같은 공공부문에 한정하고, 민간이 개발에 참여하려면 정부나 지자체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게 뼈대다. 2030년부터는 재생에너지 발전량 중 공공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최소 50% 이상이어야 한다는 목표도 눈에 띈다. 에너지사업을 수행하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노동 부문의 정의로운 전환을 이행할 의무도 담겨 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를 공공재생에너지 기관이 우선 고용하도록 했다.
해상풍력 공기업을 만드는 방안도 거론된다. 현재 한전 해상풍력사업처와 발전 5사(서부·동부·중부·남부·남동발전)에서 92명이 각 기업에서 풍력발전 산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분산하지 말고 별도의 해상풍력 공기업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롤모델이 있다. 덴마크의 해상풍력 공기업 ‘오스테드’다. 오스테드는 전 세계 해상풍력 시장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1위 해상풍력 기업이다. 원래 석탄화력발전소였다가 덴마크 정부가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지원하면서 해상풍력 기업으로 전환했다.
전력업계 노사와 전환을 앞둔 발전사 노동자 모두가 필요성을 강조한다. 한전은 해상풍력 사업 특성상 공공부문이 이끌어가는 게 적합하다는 입장이다. 김상수 한전 해상풍력사업처 사업개발실장은 “시장 초기이고, 수익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수조 원의 대규모 자금을 단기에 투자해 20년 이상 장기간 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해상풍력 산업에는 공공 영역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발전사 노조가 모인 전력연맹도 동의하는 입장이다. 남태섭 연맹 사무처장은 “발전사 경쟁 체제와 경영 자율성 억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장기적 관점이 필요한 사업에 진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발전비정규직도 이에 동의한다. 31일 경남 창원과 충남 태안에서 예정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531 노동자·시민 대행진’ 슬로건은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와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이다.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 집행위원장은 “발전노동자들은 석탄발전소 폐쇄에 동의했다.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며 “사회도 우리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로 이어져야 하며, 해당 발전 노동자들의 고용을 정부와 우리 사회가 책임지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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