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27 07:54
저출산과 인구감소가 보이지 않는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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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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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차에 걸친 대선후보 토론을 보며 저출산 문제에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시급하게 다뤄져야 할 저출산 문제가 내란종식, 경제성장, 세대갈등, 미중대립, 연금개혁 등의 다른 문제에 가려져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저출산과 그에 따른 인구감소가 나머지 문제들을 포괄할 수 있는 총론격에 해당하는 주제인데도 불구하고 대선후보들 모두 각론에만 집중하고 있다.
저출산과 인구감소는 단순히 아이가 적게 태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장 일본과 유럽연합만 보더라도 이들의 장기불황은 인구 고령화의 진행과 시기가 겹친다. 1970년에 고령화 사회로 분류된 일본은 1992년 버블 붕괴와 함께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사회로 이행하며 좀처럼 저성장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 또한 마찬가지이다. 2008년 이후 1인당 GDP(국내총생산) 성장이 정체하거나 심지어 후퇴해 '잃어버린 17년'을 보내고 있는 유럽연합은 이제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이처럼 저출산과 인구감소는 사회적 역동성을 줄인다.
상당수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1인당 GDP가 3만~4만달러 수준에 도달한 직후 고령화로 정체하기 시작한 것과 달리 미국이 계속해서 성장해 8만달러에 도달한 건 이민자 유입이라는 인구보너스 덕분이라 봐도 무방하다. 초고령사회인 독일이 나름대로 성장 잠재력을 과시하며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높은 외국인 이민자 비중 덕분이다. 독일은 2023년 기준 28%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노령인구의 적극적인 활용까지 결합돼 생산가능인구를 최대한으로 유지하며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민자의 대규모 수용은 일부 국가들만이 할 수 있는 대책일뿐더러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결국 노동력의 재생산 기제를 새롭게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인류사는 일부일처제적 가족공동체를 경제적 단위로 삼아 발전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서는 이러한 경제적 단위를 '소경영생산양식'이라 부른다. 자본주의 이전의 인류사의 전개는 바로 이 소경영이 하나의 경제적 단위로 자립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소경영이 발전시킨 생산력에 기초해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역사적 대변혁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난 세기 동안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전 세계를 포섭할 수 있었던 건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상당수를 소경영에 떠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상당수를 여성착취에 기초한 가부장제적 가족공동체에 떠넘김으로써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의 전 세계적인 저출산 기조는 여성해방을 포함한 가족의 재생산 비용이 상승하여 소경영의 재생산이 점차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맥락이 다소 다를지라도 세계체제론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자본주의가 '비용증대'로 종말에 이르게 된다고 할 때 그는 임노동이 가계(household)의 주요한 수입원이 되는 '프롤레타리아트화'가 그 원인이라 지적했다. 가계의 재생산 비용의 상당부분을 이제 자본주의가 책임져야 하고 그에 따라 이윤이 줄어들면서 자본주의적 경영은 더 이상 효율적인 생산방식이 아니게 된다는 게 월러스틴의 주요 논지다.
이제 일부일처제적 가족공동체, 소경영생산양식이 모든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떠맡는 시대가 저물어 간다. 1960년 66.4%를 차지했던 전 세계 농촌인구의 비중은 2020년 43.8%까지 감소했다. 인류사 최초로 비농촌 인구가 과반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제 세계자본주의는 인류의 절반 이상의 재생산을 책임져야 하지만 아직 그러지 않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저출산과 인구감소다. 저출산과 인구감소를 극복하는 일은 단순히 민족공동체의 장래를 책임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류사와 자본주의의 발전단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전무후무한 작업이다.
한국 정치는 이런 과제를 떠맡을 준비가 돼 있는가. 노동력 재생산 기제를 더 이상 가족에 맡기지 않고 공동체가 책임지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정치인에게는 이 질문에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손민석 <우리는 왜 대통령만 바라보았는가> 작가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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