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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5-27 07:57
[사회대전환, 노동 ④] 발전노동자, 석탄과 함께 연소되고 있다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04  
태안화력에서 일을 시작한 건 2021년이다. 2018년 12월 발생한 고 김용균님의 끼임 사고 이후 발전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이 논의되던 시기였다. 연료·환경설비 운전업무는 발전사 직접고용 대상이 됐다. 한전산업개발의 입사 경쟁률은 폭증했다. 2021년에 입사한 나 역시 ‘20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태안화력에 배치됐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 회사 입사 경쟁률은 폭락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지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미 보령화력 1·2호기와 호남화력 1·2호기가 폐지됐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계획이 확정되고 실제로 폐지가 진행되면서 발전소는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했다. 결국 나의 일터는 입사하려는 사람이 점차 줄고 있고 입사한 사람들도 살기 위해 빠져나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내가 취업을 준비 중이었다면, 내가 가장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한전산업개발 입사를 고려하지 않거나 이직을 선택했을 것 같다.

2038년까지 40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하겠다는 것이 지금까지 확정된 계획이다. 당장 올해는 나의 일터인 태안화력에도 변화가 생긴다. 올 연말, 태안화력 1호기가 문을 닫기 때문이다. 보령화력 1·2호기가 문을 닫았을 때는 회사에서 보령화력에서 일하던 동료들을 충남에 있는 다른 발전소로 전환배치했다. 서천에 대체발전소가 지어지고 있었기에 그때까지만 힘들지만 참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줄줄이 석탄화력발전소 폐지가 예정된 지금은 전환배치로는 우리의 일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인식, 잘리는 게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동료들 사이에서 만연하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지되면 지역도 함께 무너진다. 전국 58개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모두 2만2천여명이 일하고 있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했을 때 석탄화력발전소 1개 호기당 400여명이 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통 한 지역에 석탄화력발전소 4~6개 호기가 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지역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석탄화력발전소가 무너지면 지역경제가 무너진다고들 한다. 내가 사는 태안군 역시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따른 지역경제 위기를 우려해 최근 해법 모색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전산업개발노조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따른 고용불안과 지역 붕괴를 해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입법 활동이다. 국회의원을 만나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및 폐지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탄생했다. 현재 국회에는 비슷한 이름이지만,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이 14개나 발의된 상태다. 속상하게도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지난 2021년 제정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는 기후대응기금을 통해 노동전환을 지원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기금을 통한 금전적인 지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원책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해고 절벽이 아니라 안정적인 일자리로의 전직이 필요하다. 내가 입사할 때 한전산업개발의 입사 경쟁률이 높았던 이유는 직접고용·재공영화가 약속됐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재생에너지 시장을 지금의 화력발전처럼 공공영역에서 해야 한다는 최근의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 논의는 반가울 따름이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우리는 언제 일터가 사라질지 몰라 불안하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회사 밖으로 내몰려 내쉰 한숨이 석탄과 함께 연소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안타깝기도 하다. 매일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 불안과 공포를 함께 고민해 주길, 우리 발전소 노동자의 손을 잡아주길 국민과 동료노동자들에게 요청한다.

정수현 한전산업개발노조 태안지부 조합원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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