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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5-28 11:29
‘살아내느라’ 광장 동경한 어느 콜센터 노동자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17  
그는 일하기 가장 적절한 곳을 찾다가 콜센터에 안착했다. 전화기 너머 온갖 욕설이 넘어오고, ‘콜수’를 방어하느라 입안이 헐도록 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만한 직장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오랜 희귀난치질환자이고, 언제나 생활 환경을 잘 ‘관리’해야만 노동과 일상적 삶이 가능하다. 퇴근하면 자신의 질병을 돌봐야 하고, 연로한 엄마를 돌봐야 한다. 퇴근 이후 질병이 심해지지 않게 식단을 짜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도시락을 싸고, 질병 관리에 도움 되는 운동 등을 한다.

엄마와 살기 시작한 것은 4년 전부터였다. 처음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뒤 임시로 엄마와 살림을 합쳤다. 살림이라고 해봤자 각자 원룸에 살았기 때문에 보증금을 합쳐서 투룸을 구한 정도였다. 함께 산 지 2년만에 엄마는 인지저하증(치매) 진단을 받았다. 혼자 식사를 챙기고 가벼운 집안 일을 하는데 아직은 무리가 없지만, 점점 자신의 손이 필요한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 콜센터는 “절망 속 베스트 직장”이었다. 야근이나 출장이 없고, 정시 퇴근이 가능한 곳. 그래서 규칙적 생활패턴을 유지할 수 있고, 저녁마다 일상적으로 해야하는 건강보조 요법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하루를 노인복지관에서 보내고 늦은 오후 집에 오는 엄마를 오랫동안 집에 혼자 있지 않게 할 수 있는 직장이다. 게다가 직장 구성원 전원이 여성이다. 그래서 지난번 직장처럼 일상적인 ‘언어 성폭력’을 고객으로부터 전화기 너머로 들을지언정, 얼굴 마주보고는 듣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알려졌다시피 콜센터 노동은 몸과 마음이 타들어 갈 만큼 스트레스가 많은 곳이고, 견디는 게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보다 나은 곳을 구할 수 있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 지난 10년 간 가장 안정적이고 최적화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12·3 계엄 선포 이후 광장에 가고 싶은 날이 매일이었으나, 결국 스치듯 지나갔을 뿐 한번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그에게는 광장에 갈 ‘시간’과 ‘체력’이 조금도 허락되지 않았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대학 시절 토론동아리에서 사회과학 서적도 제법 읽었다. 그는 퇴근 이후 인문사회 강의도 듣고 싶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일상은 언감생심이고, 직장 이외 유일한 사회생활은 트위터(현 X)다. 트위터에서 다양한 사회문제나 제도 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토론하며 제법 많은 팔로워와 교류하고 있었다.

그에게 광화문을 비롯한 광장은 쏟아지는 분노를 표출하는 가장 멋진 공간이었고, 단결된 힘으로 거대한 저항을 만드는 설레는 역사의 장이었다. 그리고 ‘2030여성’으로서 꼭 가보고 싶은 ‘힙한’ 공간이었다.

광장을 거의 가지 못했던 그는 직장 동료들이 광장 경험을 말하는 것을 조용히 듣거나, 트친(트위터 팔로워)들이 광장에서 보고 느낀 일을 적은 글을 보며, 여러 ‘공부’가 됐고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논의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출퇴근 길에 유튜브에 남아 있는 광장 생중계 영상도 틈틈이 봤다.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었고 “전화만 받는 머_저리”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광장에 다녀오는 직장 동료들을 보며 소외감을 느꼈고, 트친들의 논의는 점점 따라가기 어려웠다. 특히 트친들 사이에서 진보적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의견을 냈는데, 지금은 오히려 보수적 위치가 된 자신을 발견했다. 트친들이 흥분 속에 말하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12·3 계엄 이후 광장의 경험을 통해 상당한 의식적 성장을 경험하고 삶이 확장됐다. 그런데 자신은 제자리이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정치적 의식이 후퇴한 것 같았다.

그는 광장에서 쏟아지는 정보나 토론은 따라갔으나, 광장에서의 연결감과 힘은 경험하지 못했다. 책이나 유튜브로 할 수 없는 어떤 경험이었다. 그는 질병이, 빈곤이, 돌봄 책임이 자신을 보수화 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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