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Home|자유게시판|자유게시판

 
작성일 : 25-03-31 08:00
설계도만 그리다 만 다면적 교섭모델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38  

노동시장의 불평등 해소와 관련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주목한 것은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였다.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나 성별 임금격차 이상으로 심각했으나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한 문제였다. 대안도 풍부하지 않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는 크게 두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지불능력의 격차고, 다른 하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 교섭력 격차다. 이를 기반으로 경사노위가 제안한 것은 ‘다면적 교섭모델’이었다.

이는 세 가지 교섭전략으로 구성된다. 첫째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 교섭(자본 내부교섭), 둘째 산별교섭 체제 내에서 연대임금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대기업 노조-중소기업 노조 간 교섭(노조 내부교섭), 셋째 노사 간 교섭이다. 노사 간 교섭은 기업별 교섭과 산별교섭, 그리고 원청기업-하청 노조 사이의 교섭을 포함한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대기업 노동자가 임금인상분의 일부를 취약 노동자를 위해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모자란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인상 자제가 어떻게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인상으로 연결되는지, 대기업 노동자가 내놓는 임금인상분이 취약노동자의 임금상승에 얼마나 보탬이 될는지도 불확실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노동시장 양극화를 초래한 대기업이나 원청사업자의 책임을 면제하고 대기업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청기업 단체결성을 통한 원청기업과의 집단교섭

기업 규모별 임금 차는 단순히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중소기업의 임금 지불 능력을 높이지 않고서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한다는 것은 물 없는 우물에서 물을 긷는 거랑 진배없다. 경사노위가 주목한 건 하청 중소기업이 단체를 결성해 원청기업과 집단교섭을 함으로써 원-하청 간 불공정 거래를 개선하는 방안이었다. 힘없는 노동자가 노조로 뭉쳐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사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노동시장의 문제이면서 생산물 시장에서의 대-중소기업 격차의 문제이기도 했다.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관계를 확립하려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수평적 네트워크를 활성화해 교섭력을 강화해야 한다.”(전병유 교수 등, 2018)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이 중소기업 단체나 가맹점주 단체 등을 통해 대기업과 집단으로 교섭할 수 있도록 단결권·교섭권·협약체결 요구권 등을 법적·행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교섭 대상에는 이익(성과) 공유제, 납품단가 조정, 수수료 협상 등이 포함된다.

이와 관련해 당시에 주목한 해법은 김남근 변호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제안한 ‘원하청 기업 간 사회적 교섭 법제화’였다. 하청기업들이 자유롭게 단체를 결성해 원청과 사회적 교섭을 진행함으로써 거래조건을 개선하고 거래 관계에서 지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변호사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대기업과 본사가 분담하는 방안, 납품대금이나 가맹수수료 조정, 편의점 업계의 최저수익 보장제, 외식 프랜차이즈업계의 물류구매 협동조합 등을 포함한 다양한 교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김남근, 2019) 그러나 현행 공정거래법은 이러한 행위를 담합으로 간주해서 금지하고 있다.(19조)

산별교섭 체제를 향해

두 번째 교섭은 노사 간 교섭이다. 기업 차원의 단체교섭뿐 아니라 대기업 원청업체와 중소 하청업체 노조 사이의 대각선 교섭을 포함한다. 이러한 단체교섭 구조는 결국 산별교섭 체제를 지향한다. 산별교섭 체제가 단체협약의 효력을 동종 산업의 미조직 노동자에게 적용하는 것과 맞물릴 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효과는 증대된다.

산별교섭 체제는 법 개정보다는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령 공공기관에서 선도적으로 산별교섭을 도입하고 이를 민간부문으로 확산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공공기관 노조는 오래전부터 정부를 상대로 한 중앙집중식 교섭(산별교섭)을 주장해 왔다. 따라서 실질적인 사용자인 정부가 의지를 가지면 곧바로 정부-노조 간 교섭을 위한 협의를 시작할 수 있다. 공공기관 내부의 임금격차를 줄이고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위해서도 중앙집중적인 임금교섭은 불가피하다.

세 번째 교섭은 대기업 노조와 중소기업 노조 사이의 조직 내부교섭(intra-organizational bargaining)이다. 이는 연대임금 전략을 실현하는 핵심 요소로서 산별교섭 체제가 전제돼야 한다. 연대임금 전략은 하후상박 임금인상은 물론 직무급 도입(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과 같은 임금체계 개편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는 사회적 대화의 역할을 들 수 있다. 이 경우 사회적 대화의 역할은 한편으로는 다면적 교섭 실현방안을 협의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를 위해 사회임금을 개선하는 일이다. 사회임금은 국민연금·실업수당·건강보험급여·보육지원금·기초생활보장급여 등과 같은 사회복지의 일환으로 가계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결과적으로 다면적 교섭모델은 설계도로만 남았다. 기존의 기업별 교섭 이외에는 어떤 교섭모델도 자리를 잡지 못했고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 해소도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다면적 교섭모델과 함께 당시 경사노위가 추구한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회적 대화를 포용적 형태로 다시 구축하는 일이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오늘의 방문자 1 | 총 방문자 381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