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4-03 07:54
승인된 죽음, 반얀트리 화재 참사와 행정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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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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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텔 신축 공사장에서 노동자 6명이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이미 지난해 12월19일에 준공승인을 받은 건물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사고 현장은, 법적으로는 ‘완공된 건물’이었지만, 실제로는 40여 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841명이 혼재작업을 하는 사실상의 건설현장이었다. ‘준공승인’이라는 법적 외피와 실제 공사 현장 사이의 괴리 속에서 산업안전, 소방안전 등 규범의 적용 범위는 모호해졌고,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할 안전장치는 작동을 멈췄다. 여기에 분양계약 일정을 맞추기 위한 무리한 공사 강행, 준공 이후 인테리어 공사에 대한 법적 규제의 공백, 행정기관의 부실한 감독이 더해지면서 참사는 필연적으로 발생했다.
현장을 들여다보면 안전망의 구멍들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스프링클러 밸브는 잠겨 있었고, 화재감지기와 유도등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한국소방기술사회장은 사고 현장 방문 후 인테리어 공사 과정에서 화재감지기와 스프링클러 등이 탈락하거나 제거된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한 방화문이 설치되지 않았거나 닫히지 않도록 괴어 두었으며, 도어클로저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치명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건물이 준공승인을 받을 수 있었을까?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은 소방시설 완공검사 증명서 발급 시 현장 확인을 의무사항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감리업체가 제출한 보고서만으로도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셈이다. 건축법상 준공승인 절차 역시 실질적 안전 확인보다는 서류상 요건 충족에 치중돼 있어, 기장군청은 현장의 실제 공사 완료 여부를 면밀히 확인하지 않은 채 준공승인을 내줬다. 당시 현장에는 화재 위험이 높은 가연성 내장재들이 곳곳에 무분별하게 보관돼 있었고, 비상대피로에도 자재들이 쌓여 있어 작업자들의 신속한 대피를 방해하는 상태였다.
준공 전 건설현장에서는 엄격한 안전관리체계 구축과 건설현장 화재안전 성능기준에 따른 임시소방시설 설치, 위험작업의 경우 작업허가 등이 요구되지만, 준공 후에는 일반 사업장 수준의 안전관리체계와 소방시설법에 따른 영구 소방시설 관리, 인테리어 등 추가 작업에 대한 완화된 관리체계로 전환된다. 준공 전후 안전관리 요구 수준의 차이와 현장 실태를 확인하지 않는 형식적 행정으로 인해 용접작업 시 필수적인 불티비산방지 덮개와 방화포 설치, 화재감시자 배치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들이 만연히 생략됐다. 시공사의 안전보건관리총괄책임자는 물론 하청의 현장소장도 참사 당일 현장에 없었고, 안전관리자는 2024년 12월 퇴사 후 새로 선임되지 않은 상태였다. 작업자들은 “관리자가 현장에 나와서 관리도 하고 중재도 해야 하는데,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분양계약 일정을 맞추기 위한 공기 단축 압박이 안전을 희생시키는 근본 원인으로 작용했다. 분양계약서 약관에 따르면 호텔 이용 예정일은 올해 2월이었고, 분양자들은 이용 예정일부터 3개월 안에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화재가 시작된 B동의 이름은 ‘카르마(Karma)’였다. 부산 반얀트리 호텔은 ‘심신의 안정과 치유’를 위한 고급 휴양시설을 표방했지만, 정작 그 건물을 짓는 노동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안전조차 보장하지 않았다. 화재감시자도, 불티비산방지 조치도, 작동하는 소방설비도 없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생명의 위협 속에 일했고, 시공사가 공기 단축을 위해 법의 허점을 틈타 안전 의무를 회피한 결과로 6명의 목숨이 희생됐다.
제2, 제3의 참사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준공승인 절차는 안전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이 아닌, 안전 확보의 과정이 돼야 한다. 건설현장에 대한 관계기관의 관리감독 정도는 준공승인 여부가 아닌 실질적 공사 진행 여부에 따라 이뤄져야 하고, 준공승인에 앞서 행정관청은 반드시 현장을 점검해야 하며, 소방시설 작동 정지는 엄격한 절차와 대체 안전조치를 전제로만 허용돼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분양계약 일정이나 공사 기간 준수보다 우선돼야 한다. 부산 반얀트리 화재 참사는 법 집행의 형식주의와 이윤 중심 사고방식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비극적 사례다. 준공이라는 법적 외피 속에 감춰진 안전 사각지대를 없애고, 실질적인 일터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안전행정이 제대로 기능하기를 바란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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