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25 08:06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500일 넘어도 해결 안 된 것, 이해 안 가”
|
|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75
|
눈이 오고 해가 떴다가 다시 비가 오길 반복하니 천막이 삭았다. 벌써 499일을 함께 한 천막이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날씨가 무더우면 무더운 대로 오래 쳐놔 걱정이 생긴다. 하늘을 가릴 게 없으니 직사광선을 그대로 쬔다. 이렇게 질긴 인연일 줄 몰랐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고공농성 500일을 하루 앞둔 20일 박정혜(39)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더위를 마주했다고 했다. 천막 걱정이 앞섰다. 서울 하늘은 구름이 끼었다는 말에 그는 “구미는 다른 지역과 다르게 이미 32도까지 올라갔다”며 “천막도 덥다”고 말했다. 그나마 아직 저녁에는 시원하다고 한다. 덕분에 건강을 위해 아직은 저녁에 걷는다고 했다.
“뻔뻔한 자본 보면서 마음 다잡아”
다행히 건강은 괜찮다고 한다. 다만 괜시리 기운이 없단다. 박 수석은 “크게 아픈 곳은 없는데 자꾸 몸에 기력이 없어진다”며 “어지럼증도 있다”고 털어놨다. 식사는 하루에 두 끼만 먹는다. 세끼 다 챙겨 먹는 것이 되레 몸에 부담이라고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밀키트나 레토르트 음식도 자주 접한다. 아무래도 지회 조합원들이 대부분 서울이며 도쿄·오사카 등 곳곳으로 원정투쟁을 다니기 때문이다. “연대동지들이 반찬도 보내줘서 먹는 게 불편하진 않지만 건강하게 먹는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오죽할까. 이제 500일을 오롯이 혼자 마주할 그 심경을 가늠하기 어려워 대뜸 물었다. “(고공농성을) 같이 했던 동료가 몸이 안 좋아져 내려가니 마음이 아픈 것도 있고, 우리가 이렇게까지 몸을 버려가며 투쟁을 해야 하는가 싶은 회의도 있어요. 위에 있는 시간, 혼자 있을 시간이 무섭기도 했어요. 소리에도 더 예민해지더라고요. 그렇지만 자본이 뻔뻔하게 나오는 것을 보니 여전히 화가 납니다. 위에 남아 있기 때문에 뭐라도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겠죠.”
높은 곳에 서면 흔들리기 마련이다. 사회에 대한 원망도 품는다. “한 명의 노동자로 회사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잘못은 회사가 했는데…. (피해는) 노동자가 다 짊어져요. 이게 부당하다고 싸우는데 내 편은 없고 다들 자본 편에만 섰네요.”
높고 텅빈 공장의 고립감
높은 곳에 혼자 서면 또 외롭기 마련이다. “텅 빈 공장을 보면 고립감을 느껴요. 우리가 우리 상황을 알리지 않으면 안 돼요. 구미에서도 여전히 우리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1년 넘게 구미사거리에서 선전전을 하고, 구미시청도 찾아갔는데. 시간이 가면 잊히기 마련이니까,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요. 잊히면 끝장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옥상에 올랐을 땐 일했던 곳을 한참 쳐다보기도 했다. 4층짜리 공장에서 그는 2층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일하던 모습을 생각하다 보면 화재 당시, 그리고 화재 이후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처음 올랐을 때 공장에서 일하던 생각도 났어요. 회사를 위해 일한 공간인데 그 공간에서 이렇게 싸운다는 게…. 충분히 재건할 수 있었는데 이걸(공장을) 이렇게 버려두고 가야 했는지. 공장을 위해 일한 노동자가 느낀 배신감이 커요.”
500일을 앞뒀지만 그 숫자나 ‘최장기 고공농성’ 같은 기록이 싫다고 했다. 500일 넘게 외쳐도 해결이 안 된다는 것에 회의감을 품기도 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일까. 옳은 이야기, 정당한 이야기를 하는데 왜 변하는 게 없을까.” 답하기 어려웠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