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25 08:07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새 정부, 국민·노조와 함께 의료개혁 추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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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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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파면됐지만 의료대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정부는 의대증원을 되돌려 의사단체에 백기를 들었고, 각종 특례로 전공의 복귀에 매달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또다시 의대증원은 실패했다.
증원은 무산됐지만 ‘올바른 의료개혁’에 관한 논의는 이어졌다. 의료대란을 계기로 필수·공공·지역의료의 필요성은 높아졌고, 현장을 지킨 보건의료인력 부족 현실도 조명됐다. 21대 대선후보들도 저마다 생각하는 의료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대란 초기부터 “올바른 의료개혁”을 강조하며 필수·공공·지역의료 강화와 인력기준 마련의 중요성을 주장해 왔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회관에서 최희선(54·사진) 위원장을 만나 대선을 앞둔 보건의료 노동자의 우려와 바람을 들었다.
“병원 현장 우선 과제는 인력충원”
- 임기 절반을 지나며 총선과 대선을 모두 거쳤다.
“지난해 1월1일 임기를 시작해 2월20일부터 의사 집단사직이 본격화했으니 임기 시작이 곧 의정갈등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병원 현장이 붕괴될 위기에 놓여 노조도 상당한 에너지를 투입했다. 전공의 공백을 진료지원(PA)간호사가 대신했다.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한 병원은 이들을 무급휴직·임금체불·무급휴가로 내몰았다.
노조는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과 의사 집단행동을 모두 비판해 왔다. 올바른 의료개혁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단순히 의사수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별 의사배치 전략과 함께 공공의료 재건을 강조했다.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대립 속에서 노조가 동시 쟁의조정신청에 나서 여야의 극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의료개혁이라는 정치적 대립 한가운데 우리 노조는 올바른 의료개혁이라는 원칙을 지켜온 것 같다.”
- 노조는 최근 대선 정책요구안을 발표했다. 우선순위를 꼽자면.
“현장을 다니며 ‘인력 좀 충원해 달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병원에 가 보면 의사·간호사가 바빠 말조차 붙이기 어렵다. 또 코로나19와 의료대란 현장을 지킨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보건의료인력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노조는 사회에 필요한 인력의 총량뿐 아니라 직종 간 업무범위, 의료기관에 따른 직종별 정원을 법제화하자고 주장해 왔다.
지난달 개정된 보건의료기본법은 우리 사회 전체에 필요한 보건의료인력 직종별 총량을 수급추계위에서 산출하도록 한다. 국회는 보건의료인력 직종 간 업무범위 기준을 세우는 업무조정위원회 법제화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제도만으로는 현장의 노동강도 문제를 해결하기 부족하다. 사회적 필요 총량과 직종 간 업무 범위, 법적 인력기준을 연계해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병원에는 70여개 직종이 있다. 의사·간호사·임상병리사·방사선사 등 모든 보건의료인력 직종에 대한 인력 기준이 필요하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도 중요하다. 가족이 아파 간병인이 필요할 때 직장을 그만두거나 간병비로 파산하고, 간병살인을 하는 비극은 막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나.
이런 문제들을 아울러 의료개혁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2021년 9·2 노정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정부와 협의 틀을 복원하자고도 요구해 왔다. 이제는 선언이 아니라 제도화가 필요할 때다.”
- 주 4일 근무제 등 교대제 개선을 위한 과제도 눈에 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면 인력 충원이 필요한데.
“간호사들이 병원을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불규칙한 야간·교대근무 때문이다. 한 병동에서 한 달치 근무표가 나오면 간호사들은 각각 데이·이브닝·나이트에 배치된다. 그런데 근무조에서 누가 아프거나 휴직을 하면 다른 조에서 충원해 근무표가 매일·매주 바뀐다. 생활을 계획할 수도 없고 자기계발을 위해 공부할 여력도 없다. 삶의 질이 바닥을 치다 결국 이직하는 현실이다. 미국처럼 대체간호사 제도를 두고 규칙적인 교대제를 운영해 이직을 막아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월·주 단위로 평균 노동시간을 책정해 인력을 산정해야 한다. 정부도 교대제 개선을 위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는데, 일차 목표는 불안정한 근무체계를 안정화하는 것이다. 인력 확충은 근본 목표보다는 안정적으로 교대제를 운영하고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수단이자 조건이다.
결국 교대근무 개선, 인력기준 마련, 총노동시간 단축은 연계돼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노조는 그래서 주 4일제 도입을 요구한다. 곧 국립중앙의료원 주 4일제 시범사업도 실시할 계획이다. 교대근무자뿐 아니라 병원 안 모든 보건의료 노동자에게 해당한다. 주말·야간·긴급 상황에서 근무가 많은 병원 특성상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니 노동시간 단축은 이들 삶의 질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정책이라고 본다.
주 6일에서 주 5일제도 주 5.5일제를 거쳐 단계적으로 시행했다. 사용자들은 나라가 망한다고 했지만 생산성은 높아졌다. 간호사의 잦은 이직은 환자들에게도 좋지 않다. 대학을 졸업해 간호 면허를 가진 사람 중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절반뿐이다. 교대제 개선이나 노동시간 단축은 이러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공공병원은 소방서, 재난 대비해 있어야 하는 것”
- 지난달 25일 간호법 하위법령이 입법예고됐다.
“간호법은 의료현장 구조적 문제를 푸는 중요한 법이다. 간호사가 불법의료 논란 속에 해온 진료지원(PA) 업무를 법제화하고, 업무 범위와 훈련 체계를 규정화하는 게 목표다. 또 지역돌봄과 간호서비스를 어떻게 연계하고 일차의료에서 간호 역할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법적 토대이기도 하다.
노조도 하위법령 구체화 과정에서 (보건복지부가 꾸린) 자문단에 참여해 의견을 제시했다. PA문제를 앞장서 공론화해 왔고, 현장 실태를 잘 알기 때문이다. 입법예고 내용은 다소 유감이다. 진료지원업무의 구체적인 내용·기준·교육과정이 없고, 간호정책심의위원회에 노동계 참여도 보장하지 않았다. 노조는 간호정책을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이끌어 왔다. 간호사 처우개선, 야간전담 간호사, 교대제 개선 시범사업, 교육전담 간호사 제도는 노조가 제시한 정책이다. 정부가 주요 협의체에 노조 참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데에 문제제기할 예정이다.
물론 아직 전공의가 현장에 모두 복귀하지 않아 업무범위 등의 조정이 어려울 수 있다. 정부는 현장에 1만7천명, 대한간호협회는 4만명의 PA간호사가 있다고 본다. 의정공백 동안 우후죽순 늘어난 이들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 이달부터 산별중앙교섭을 시작했다. 7월까지 교섭을 마무리짓지 못하면 산별총파업도 예고한 상황이다. 올해 교섭의 핵심 쟁점.
“적정인력기준 법제화다. 병원 안 부서별·직종별로 적정한 정원을 제도화하고 충원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병원이 별도 기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사람을 배치해 왔다. 그러다 보니 PA간호사 같은 여러 분야에서 심각한 문제가 누적됐다.
비정규직 정원 기준도 없다 보니 비정규직 비율도 부서별 차이가 크다. 부서별 정원이 없으면 얼핏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병원 안 직종끼리 융합하기 어렵다. 어떤 직종은 상시업무인데도 비정규직 비율이 지나치게 높고, 비정규직은 거의 없는데 이직률이 높은 직종도 있다. 현장의 불균형과 불안정만 고착화하는 형태다. 병원 고용구조를 개선하고 좋은 일자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정원 기준이 필요하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적정 인력기준이 제도화하면 직종 간 팀워크를 강화해 치료 질을 높일 수 있다. 병원 사용자는 인력 확충을 이야기하면 수가 인상만 주장한다. 수가를 올리려면 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하는데 인력기준은 제시하지 않으면서 수가만 높이자고 하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까.
임금 요구도 주목할 점이다. 4만5천명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노조는 임금총액 6.9% 인상안을 요구했다. 응답자의 62%는 생계비가 올라 임금인상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21%는 노동강도와 시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필요해 임금이 인상돼야 한다고 했다. 이런 요구는 사용자와 맺는 교섭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정부 정책과도 깊이 연결돼 있다. 병원 정원을 법제화하는 것은 의료체계 전반을 설계하는 과제다.
‘노조는 왜 맨날 파업을 하냐’는 질문도 받는다. 파업 그 자체가 목표인 사람은 없다. 해결책 없이 맴돌기만 하는 요구안을 관철하기 위해 총파업을 제기했다.”
- 산별중앙교섭을 앞두고 임원들이 전국 순회간담회를 진행했다.
“조합원들은 너무 지쳐 있다. 의정갈등이 길어지면서 적자 문제로 힘들어하는 지방의료원은 임금체불을 경험했다. 그러면서도 공공병원이 무너지면 안된다는 절박한 생각들을 갖고 있다.
최근 간호사의날 토론회때 어떤 조합원이 ‘저는 가해자이기도하고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말을 했다. 인력이 부족한 현 의료시스템에서 자신은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내가 더 돌봤더라면 상태가 더 호전됐을 환자에게는 자신이 가해자라는 의미였다. 우리 노조는 국민 건강권을 위해 투쟁한다고 말한다. 노동자가 행복해야 환자에게 더 좋은 의료를 줄 수 있다고 본다. 우리 노동환경을 개선한다면 환자에게 이롭고, 환자를 이롭게 하는 건 사회에게도 이롭다고 생각한다.”
-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가 최근 성남의료원 적자를 비판했다.
“지방의료원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얼마나 역량을 쏟아붓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공공병원은 당연히 적자일 수밖에 없다. 민간병원이 수익을 이유로 하지 않는 의료를 공공병원이 하기 때문이다. 지금 공공병원이 큰 적자를 낸 건 코로나19 때 전담병원을 맡아 입원해 있던 환자를 내보내고 코로나 환자만 봤기 때문이다. 나간 환자들은 이미 민간병원에서 치료받아 돌아오기가 어렵다. 적자만을 이유로 공공병원을 없앤다면 공공병원은 제 기능을 못한다. 성남의료원은 심지어 수년째 병원장도 공백이었다. 이 후보가 성남시의 투자 부족을 파헤치지 않고 특정 후보 트집을 잡으며 지방의료원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나쁜 목적의 정치공세다.
공공병원은 소방서와 마찬가지다. 불이 안 나면 소방서를 없애나. 화재를 대비하는 게 소방서다. 홍준표가 경남도지사 때 진주의료원을 없애 코로나19 때 의료공백이 심각했다. 물론 경영효율화를 고민할 측면도 있지만 공공병원에 진짜 필요한 건 투자다.”
- 새 정부에 전할 말이 있다면.
“윤석열이 실패한 의료개혁과 의대증원을 새 정부는 다시, 제대로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의대증원을 의사와만 협상했다. 의료인력의 문제는 보건의료 노동자·시민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공론화 과정을 거치자고 수급추계위까지 만들자는 것 아닌가.
의료개혁이 추진되지 못해 결국 환자와 보건의료 노동자가 모든 책임을 떠안았다. 코로나 때부터 5년 동안 혼란과 부담을 견디고 있다. 새 정부는 올바른 의료개혁을 미루지 말고 실질적인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국민을 단지 의료를 이용하는 수혜자가 아니라 올바른 의료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주체로 봐달라.”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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