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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5-26 07:38
미·중 간 각축장 된 전 세계 반도체 산업 구조변화와 노동조합의 대응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82  
반도체 산업은 생산, 부가가치, 고용에서 자동차 산업과 함께 한국 제조업을 대표하는 산업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은 구조적 변화 압력에 직면해 있다. 바로 트럼프발 관세전쟁과 중국 반도체 산업의 부상이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다양하게 발달한 미국, 중국, 유럽과 달리 한국 반도체 산업은 오로지 ‘메모리’ 반도체 ‘생산’ 위주로서 위계적인 모노컬쳐(monoculture)적 산업구조를 띠고 있기에 산업 차원의 구조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영향은 고용, 즉 노동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에 이제라도 반도체 산업의 구조변화와 자본의 대응을 노동조합이 직시하고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반도체에 대한 25% 품목별 관세 부과는 현재 유예된 상황이지만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한국 반도체 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국 반도체 수출에서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7~8%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전자기기의 핵심 부품으로 활용되기에 주요 수출국은 전자제품 조립공정이 자리 잡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 홍콩,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이다. 하지만 유예된 국가별 상호관세가 시행될 경우 이들 국가에 메모리 반도체를 주로 수출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은 직·간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 전개 상황도 주시해야 하지만 관세 전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미국의 산업정책 의도·방향이 더 중요하다. 관세는 미국이 한국과의 교역 관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실현시켜 줄 여러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가 촉발한 관세 전쟁은 반도체 산업에 한정해 본다면 반도체 제조 내제(內制)화를 가속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최첨단 반도체를 한국(메모리 반도체)과 대만(시스템 반도체)에서 수입하지 않고 미국 내에서 만들겠다는 것이다. 반도체 제조 내제화 정책은 전임 바이든 정부 때부터 본격화한 정책이었다. 바이든 정부는 2022년 ‘반도체 및 과학법안’(CHIPS and Science Act of 2022, 일명 칩스법)을 통해 반도체 제조 내제화를 본격 추진했다. 바이든 정부의 칩스법은 지난 30여년간 지속돼 왔던 외주생산이라는 미국 반도체 산업의 정책 방향을 전면 변경한 것이며 트럼프 정부는 관세 부과로 이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바이든 정부는 당근을 주로 썼다면 트럼프 정부는 채찍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 내제화를 가속화하는 궁극적인 목표와 의도가 있다. 미국, 일본, 한국, 대만이 주도해 온 전 세계 반도체 산업 가치사슬에서 중국을 완전 배제하겠다는 것이며 관세보다도 이 측면이 오히려 한국 반도체 산업에 더 구조적으로, 더 크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미국의 반도체 제조 내제화 정책도 산업 측면에서 대중국 봉쇄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귀결된 정책이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의 핵인 군사적 측면을 넘어서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미국은 자국의 설계특허가 적용된 첨단 시스템 반도체부터 미국의 원천 기술이 활용된 반도체 제조 장비·설비까지 대중국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한국, 일본, 대만과 연합해 ‘칩4 동맹’을 구성해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구축, 즉 반도체 제조 내제화를 본격화한 것이다.

초기 단계라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구체적으로 예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반도체 가치사슬 체계가 가시화될수록 한국 반도체 산업의 구조조정 압력은 높아질 것이다. 특히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주목해야 한다. 중국도 지난 20여년간 반도체 국산화, 즉 내제화를 추진해 왔다. 2014년부터는 반도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반도체 제조기술 및 노하우 축적을 위해 로컬 파운드리 육성을 추진해 왔으며 대규모 선행 투자비용을 지원하고자 지난 10년 동안 두 차례 국가 주도의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해 왔다. 반도체 투자기금은 반도체 제조 역량 강화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으며 이를 통해 SMIC, Huahong 등 중국 반도체 사업체의 제조역량이 큰 폭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15나노~20나노 급의 구형(레거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중 간 가격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2023년 하반기부터 삼성전자의 반도체 실적이 저조한 주된 이유로서 과거 한·일 간 치열하게 전개됐던 반도체 치킨 게_임이 조만간 한·중 간에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배제에 맞서 중국 또한 반도체 제조 내제화를 통해 자족적인 반도체 산업 생태계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은 한국과 달리 시스템 반도체 영역의 팹리스(fablesss) - 설계와 판매만 담당하는 반도체 사업체 - 산업 생태계가 이미 다양화·활성화돼 있다. 미국의 제재·봉쇄에도 불구하고 최첨단 반도체인 7나노급의 시스템 반도체 생산에 성공했고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제조 기술은 존속적·적응적 기술이기에 시간이 문제일 뿐,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은 것처럼 언젠가는 중국의 따라잡기(catch-up)가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한국 메모리 반도체 수출의 50~60%를 차지하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내제화 정도가 높아질수록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직면하게 될 구조적 위험은 높아진다.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시장을 찾기도 어렵다. 주요 반도체 수요국들이 코로나19 시기 전자업종 공급망 어려움을 겪으면서 반도체 자급화 정책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 중심의 반도체 제조 내제화라는 지난 30여년간 지속된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에 구조적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 최대 시장인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자로 등장하고 있다. 구형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이 급부상함에 따라 삼성은 지난해부터 기흥사업장에 있는 구형 메모리 반도체 생산 라인의 가동률을 낮추고 인력을 화성사업장 중심으로 재편해 왔다. 메모리 반도체 위주의 사업구조 개선을 위해 지난 4년간 80조원을 투자할 정도로 야심차게 추진해 왔던 삼성의 파운드리 사업은 한 자릿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도 하다.

글로벌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미·중 간 반도체 산업 갈등이자 구조변화이기에 한국의 반도체 산업 노동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여지는 적은 편이다. 최우선적으로는 반도체 산업 노동자의 집단적 이해대변을 높여야 한다. 반도체 산업 내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노조를 견지해 왔던 삼성전자 내 반도체 부문 노동자 조직화는 아직은 초기 단계이며, SK하이닉스 노조 또한 철저한 기업별 노조주의에 안주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삼성전자 내 비생산직 노동자 조직화에서 일정 정도 교두보를 구축한 점은 의미 있는 성과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구조변화에 가장 크게 영향 받을 생산직-엔지니어 노동자 조직화 필요성은 점증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 조직 확대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를 기반으로 노동조합이 적극적인 경영참여를 요구해야 한다. 조직 확대와 더불어 단체협상과 노사협의회를 통해 반도체 자본의 경영 실태와 경영 전략을 파악해 노동조합이 선제적으로 고용의제를 던질 필요가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국의 반도체 제조역량 확대에 따라 팹 라인 정리가 필요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고용 문제 또한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던 일본 반도체 산업은 지금은 소재·부품·장비 위주로 축소됐다. 일본 반도체 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을 복기함으로써 향후 노동의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정부를 대상으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 구조조정에 대응하는 고용, 노동정책 요구를 노사가 함께 제기하도록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시기 수립된 반도체 산업 정책은 오로지 반도체 산업의 성장·지원 정책만 있을 뿐, 고용·노동 정책, 특히 산업구조 변화에 조응하는 고용정책은 없기 때문이다.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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