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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5-22 08:26
혐오의 내상과 상상하는 힘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88  
2025년 4월30일, 이화여대 내 아트하우스모모에서 한국퀴어영화제에 대관 취소를 통보했다. 씁쓸하게도 퀴어 행사에 장소 대관을 거부하거나 취소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장소가 아트하우스모모라는 것은 다소 놀라웠다. 아트하우스모모는 작년에도 한국퀴어영화제가 진행된 곳이고, 꼭 영화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상업 영화관에서는 찾기 어려운 퀴어 영화를 자주 상영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운영주체인 영화사 백두대간은 홈페이지 소개글에서 자신들의 대표업적으로 퀴어 영화인 <브로크백 마운틴> 수입·배급을 적고 있다(심지어 이를 ‘주옥같은 걸작’이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화여대와 아트하우스모모는 한국퀴어영화제에 대관 취소를 통보했나.

민원이라는 이름의 혐오

뻔하게도, 이번에도 보수 개신교의 이름으로 이뤄진 혐오세력의 항의와 민원이 핑계였다. 이들은 한국퀴어영화제가 이화여대의 창립이념인 ‘기독교 정신’에 반하기에 “어린 학생들의 교육공간”에 들어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화여대는 이를 받아들였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정당한’ 민원으로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혐오를 승인한 것이다.

민원이라는 이름의 혐오를 승인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2013년 고려대는 인권·법률청년단체 ‘두런두런’의 행사를 학부모 항의가 많다는 이유로 대관 취소했고, 서울여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14년에는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가 행사에 동성애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대관을 취소했고, 2015년에는 서울시 산하 청소년수련관과 숭실대가 퀴어 행사 대관을 불허했다. 2017년에는 동대문시설관리공단이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의 대관을 승인했다가 며칠 뒤 성소수자 행사라는 이유로 취소했다. 전국의 퀴어문화축제는 축제 공간을 둘러싼 치열한 투쟁의 결과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무수하게 많은 퀴어 관련 행사가 민원이라는 이름의 혐오에 막혀 공간 사용을 거절당해 왔다(이와 관련한 역사는 <퀴어한국사>를 참고).

혐오의 내상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정당한’ 민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그것은 혐오를 승인하고 유통시키는 일이다. 그렇게 유통된 혐오는 개개인들의 몸에 스며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각한 내상을 입힌다.

최근 스스로 꽤나 놀랐던 일화를 꺼내볼까 한다. 수습노무사들의 노동인권활동모임 ‘노동자의 벗(노벗)’에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노벗 안에서 내가 속한 퀴어노동권팀에 후원요청서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노벗 활동을 응원하는 한 노무법인에서 노벗에 몇년째 후원금을 보내주고 있는데, 퀴어노동권팀이 여기에 지원해보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고마운 제안이지만 나는 다른 팀에서 지원해보기를 권했다. 내심 두려웠다. ‘퀴어’라는 말에 반감을 가지면 어떡하지, 그 반감으로 괜히 노벗에 대한 애정까지 식게 만들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을 느끼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전까지 이런 식의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눈 앞에서 혐오세력의 폭언을 듣고, 심지어 물리적 폭력을 당했을 때도 이런 식으로 두렵지는 않았다. 그 두려움은 혐오가 할퀸 자리에 스며든 내상이었다. 그 내상과 마주했을 때, 혐오가 통용된다는 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권리조차 스스로 놓아버리게 만드는 것, 그것이 혐오가 사회적으로 인정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였다.

길들여지지 않기 위한 상상력

결과적으로 우리 팀은 지원금과 함께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 이것만으로 혐오의 내상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내상 위에는 새살이 돋아났다. 그 새살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말 그대로 힘이다. 길들여지지 않기 위한 힘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변화의 원동력이다.

이번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취소에 있어서도, 학교쪽이 다른 상상력을 가졌으면 어땠을지를 상상해본다. 퀴어영화제에 대해 누군가는 민원을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가 그것을 ‘정당한’ 민원이 아닌,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으로 인지했다면, 그래서 날것의 혐오를 맞닥뜨렸을 노동자와 학교 안팎의 구성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편견과 혐오에 대응하는 것이 이화의 정신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면 어땠을까. 혐오의 내상에 길들여지지 않을 더 많은 상상력을 원한다.

정희성(빛별) 노무사(퀴어동네 회원)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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