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3-25 08:04
진짜 ‘오요안나 방지법’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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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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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으로 어수선한 국회에 지난달 18일 또 하나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제출됐다. 전 MBC 사장인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당 법안은 다수 언론에서 ‘오요안나 방지법’으로 보도됐다. 지난해 9월 사망한 고 오요안나 전 MBC 기상캐스터가 남긴 유서 등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고인이 생전 직장내 괴롭힘으로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언론은 이례적으로 방송계 프리랜서 문제를 다룬 기사를 연일 쏟아냈다. 정치권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전면 확대하는 법안부터 근로기준법상 직장내 괴롭힘 금지 조항에만 중점을 둔 개정안들도 연이어 발의됐다. 김 의원의 발의안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김 의원의 발의안을 살펴보면 ‘오요안나 방지법’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보다 핵심적인 내용들이 눈에 띈다. 직장내 괴롭힘 정의 규정에 ‘지속성, 반복성’을 포함하고, ‘허위 신고자’에 대해 사내 조사위원회가 징계를 의결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김 의원의 발의안 이전에 제출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76조의2) 개정안 9개는 ‘객관적 조사를 위한 각종 보완 장치 마련’ ‘예방 교육 강화’, ‘사용자의 셀프 조사 의무 삭제’ 등을 제안했다. 그동안 행정당국과 국회, 일부 학계 등에서 꾸준히 필요성을 언급했던 지속성, 반복성 요건이 실제로 법률안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문제는 이 같은 내용이 제안된 배경이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조금씩 직장내 괴롭힘 신고 건수가 늘어나자 기업들은 ‘허위, 과장, 거짓 신고에 따른 기업의 비용 증가 및 조직 내 갈등 심화’를, 고용노동부는 ‘진정 접수 증가에 따른 행정력 낭비’를 부작용으로 끊임없이 부각했다. 실제로 노동부는 2023년, 2024년 2차례 발주한 직장내 괴롭힘 연구용역에서 직장내 괴롭힘 해당 요건에 지속성, 반복성을 포함시킬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직장에서는 신고 이후 조사 결과 ‘괴롭힘이 아니라고 판명된 신고’ ‘단순히 갈등이나 고충으로 보이는 사안에 대한 신고’ 등을 허위신고로 통칭하기 시작했다.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신고한 행위가 일회성이기 때문에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반복성을 핵심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급기야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퉈 허위신고 등 제도 악용 사례 발생시 제재(징계 등)가 가능한 조례를 신설했다.
필자가 활동하는 사단법인 직장갑질119에 상담을 요청하는 이메일 대부분은 ‘이런 일들을 당했는데 신고해도 될까요?’라는 조심스러운 질문으로 시작한다. 누가 보더라도 심각한 괴롭힘이 명백해 보이는 데도 말이다. 그만큼 대다수 피해자들은 신고를 주저한다.
보수언론 등이 소개하는 극단적 사례, 이를테면 하급자가 노조와 공모해 상급자를 무고한 가해자로 만들었다거나, 실제로 있지도 않았던 허위사실을 꾸며 악의적으로 신고했다는 사례 등은 현실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정작 마땅히 신고해야 할 피해자들이 신고조차 할 수 없는 무수한 현실들은 드러날 수 없다.
김 의원의 발의안은 이 같은 흐름을 거쳐 제출됐다. 해당 발의안에서는 “직장내 괴롭힘 판단 요건을 명확하기 위해 지속적, 반복적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고 설명했으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존 노동부의 연구 용역에서도 언급했듯이 ‘얼마나 오랜 기간 지속돼야 하는지’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할 수밖에 없을 텐데, 각 신고 대상 행위별로 발생 경위, 맥락, 조직의 상태 등이 천차만별인 직장내 괴롭힘 행위의 특성을 고려하면 해당 요건으로 인해 오히려 객관적인 판단이 한층 어려워지고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허위 신고자에 대한 징계 조항 역시 신고자에게 증거가 거의 없거나, 조직의 취약성으로 인하여 객관적 조사가 어려울 경우 신고인에 대한 부당한 징계 처분을 용인하는 근거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그렇기에 해당 개정안은 직장에서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진정한 오요안나 방지법으로 보기 어렵다. 가뜩이나 어려운 신고를 한층 어렵게 만드는 지속 반복성 요건이나 허위 신고자 제재 근거가 존재하는 한 ‘고용형태와 무관하게 누구나 신고할 수 있다’는 조항은 실효성이 없다. 진정한 오요안나법은 일하는 사람 누구나 직장내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전제 아래 적어도 법 취지에 역행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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