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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5-20 09:01
민주에게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90  
민주야, 안녕. 한참을 머뭇거리다 늦게나마 편지를 보내. 추운 겨울과 초봄, 너를 지켜야 한다고 모두가 외칠 때 문득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그런데 뭐랄까, 당시에는 무엇 하나 자신할 수 없었어. 널 반드시 구하겠다느니 잘될 거라느니 같은, 나조차 확신 못할 말을 쓰고 싶지 않았거든. 한편으론 평소 너를 당연시하고 신경도 안 썼기에 면목 없기도 했고. 그렇게 삼켰던 말들이 여전히 마음속에서 아우성치는 탓에 이제야 펜을 들어.

민주야. 사라진 너를 찾겠다고 사람들이 모이던 날들의 풍경을 나는 오래 잊지 못할 것 같아. 집회에 나가 맨바닥에 옹그려 앉아있다 온몸이 뻐근해지면 잠깐 일어나 군중의 가장자리에 서곤 했어. 그럼 앞만 볼 땐 몰랐던 풍경이 펼쳐져. 색깔과 모양은 다르지만 음악에 맞춰 힘차게 흔들리던 깃발들. 추위와 피로라는 물리적 상황은 차치하고,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과 얼굴들. 티 없이 맑은 그 얼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져. 네가 그 풍경을 봤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웃었을까 아니면 울었을까. 나는 늘 궁금하곤 해.

탄핵 판결 이후 그래도 세상은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보여. 사람들은 간절히 원하던 일상을 되찾았고,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정권에 대한 기대도 엿보여. 내란 재판도 진행 중이고, 서부지법 폭동에 대한 처벌도 이뤄지고 있어. 한편으론 내란 세력을 비호하고, 정치적 잇속만 생각해 거뜬히 너의 가치를 저버릴 만한 세력들도 여전해. 그런 것들이 여전히 널 위협하기에, 우리가 너를 지켜냈다고 확언해도 괜찮은 걸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해.

그러다 오월의 광주에서 결국 우리는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을 가졌어. 1980년의 광주를 2025년의 사람들이 노래와 연극으로, 주먹밥을 나누며 기억하고 있었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 역시 환하게 웃고 있지. 너를 구하다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하며 눈물 흘릴지라도, 그들은 다시 웃어내곤 해. 난 다시 한번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어지지만, 사람들의 희생과 용기, 연대를 기억하는 한 많은 이들이 언제든 너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무릅쓸 거란 확신을 가졌어.

쓰다 보니 분명해진다. 나는 너를 지켜내던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서 네게 편지를 쓴 거야. 함께 웃으며 두려움을 희망으로, 공포를 나눔으로 이겨낸 순간들을, 그렇게 우리가 네가 되고 네가 곧 우리가 되던 순간들을 꾹 눌러 적어 새기려 해. 그 기억들로 네가 다시 위기에 처한 순간에 내가 도망치거나 비겁해지지 않도록,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웃으며 맞서려 해.

6월3일 이후, 우리는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늘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래도 한 뼘 더 성장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조우하길.

한국노총 정책2본부 박주현 선임차장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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