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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5-19 09:13
게으른 깍두기의 ‘건강증진 프로그램’ 참여 관찰기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87  
“채리 팀장이 체지방을 3키로(킬로그램)나 줄였다며?”

“사무처장님이 근육량 제일 많이 늘렸다는 거 실화임?”

“이상하네, 상준 PL은 오히려 살이 더 쪘대.”

일주일 전 월요일 아침. 일환경건강센터 인바디 측정실이 들썩였다. 8주간 진행한 건강증진 프로그램의 마지막 검사일이기 때문이다. 근육량은 늘리고 체지방은 줄이는 것이 참가자에게 주어진 과제. 성적표를 받듯 측정표를 받은 참가자들의 표정에 희비가 엇갈린다. <무사안일> 서른한 번째 사연은 ‘노동자 건강증진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관찰 기록이다.

외톨이야 외톨이야 다라디리다라뚜~

건강증진 프로그램 시행을 알리는 사내공지가 뜨자 센터 임직원 13명 중 11명이 참가를 신청했다. 딱 두 명만 빠졌다. 이미 자기관리에 철저한 똑순이 간호사, 그리고 이도저도 아닌 나. ‘객관화 필터’를 끼고 보면 나야말로 다이어트가 시급한 상태였으나, 만사가 귀찮다 귀찮아.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업무용 메신저에 프로그램 참가자만을 위한 대화방이 만들어졌다. 여기저기서 킥킥킥. 자기들끼리만 즐거운 세상이 열렸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수다공간의 기류도 달라졌다. 누가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둥, 누가 올린 식단 레시피가 좋다는 둥 저들만의 대화 속에서 나는 물잔 속 기름방울처럼 겉돌았다. 나 외톨인가?

대화에 끼고 싶다는 열망이 불타올랐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생각. 그래, ‘깍두기’를 하면 되겠네! 흙바닥에 작대기로 줄 긋고 뛰어놀던 시절,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지만 어디에나 낄 수 있었던 매직멤버 깍두기 말이다. 상금이 걸린 경합에는 참여하지 않는 대신(애당초 열심히 할 생각이 없었음), 프로그램 전 과정에 느슨하게 결합하면서 그 과정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끼워줘.” 게으른 깍두기의 참여관찰이 시작됐다.

소리 없는 손실 ‘프리젠티즘’을 막아라

미국인 의사 맥마이클 박사는 1970년대 직업역학 연구에서 “공장 노동자가 일반인보다 더 건강한 것처럼 보이는 건, 건강한 사람만 공장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고 밝힌 바 있다. 선택편향의 일종인 ‘건강 근로자 효과(Healthy worker effect)’에 대한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취업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한 사람이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심각한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은 노동시장에 참여하기 어렵다. 따라서 노동자 집단과 일반인구 집단을 비교하면, 노동자 집단의 질병률이나 사망률이 더 낮게 나타날 수 있다. 직무환경이 안전하거나 건강에 유익해서가 아니라 ‘선택된 건강한 사람’이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건강하다고 해서 무쇠는 아니다. 2023년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연간 2천930만명의 노동자가 직업 관련 질환으로 사망했다. 아파도 참고 일하는 노동자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짐작된다.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은 아파도 일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아픈 상태로 출근해 결국 업무를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정의한다(Johns, 2010). 높은 업무 압박, 성과 중심의 조직문화, 병가 사용에 대한 부정적 시선, 결근 시 소득 감소, 유급 병가제도 부재, 건강관리 지원 부족 등이 프리젠티즘의 원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프리젠티즘은 조직 차원의 예방적 개입을 필요로 하는 일터의 유해·위험요인이다. ‘노동자 개인의 건강 악화 → 생산성 감소 → 조직의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 소리 없는 손실을 줄일 방법이 어디 없을까. 노동자 건강증진 프로그램은 이 같은 질문에 적절한 해답을 제공한다.

게으른 깍두기가 달라졌어요

노동자 건강증진 프로그램의 효과를 증명하는 연구는 차고 넘친다. 2010년 하_버_드_대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 건강증진에 1달러 투자할 때 평균 3.27달러의 비용절감 효과가 발생했다. 건강증진 활동을 통해 생산성 증가, 사고 저하, 의료비 절감, 이직률 하락 같은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건강증진 활동을 통해 노동자 결근율이 28% 감소하고, 생산성이 10% 이상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정신건강에 대한 개입효과도 뚜렷하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 따르면 노동자 정신건강 개선 프로그램을 통해 프리젠티즘 지수가 34% 개선되고, 정서적 피로는 25% 감소했다.

국내 성공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디스플레이업계 ㄱ기업이 12주간 비대면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참가자 평균체중이 4킬로그램 줄고 병가율은 16% 낮아졌다. 제조업계 ㄴ기업은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노동자의 작업 중 실수가 18% 줄고 이직률은 9% 낮아졌다.

일환경건강센터의 건강증진 프로그램도 순항했다. 참가자는 3월24일부터 5월12일까지 근육량과 체지방량 변화를 인바디로 측정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식단과 운동사진을 찍어 올렸다. 요가·필라테스 스튜디오나 피트니스센터에서 전문가의 코칭을 받는가 하면, 주말을 이용해 마라톤대회에 나가거나, 자녀와 공을 차며 건강과 육아를 함께 챙겼다. 20층짜리 아파트 계단을 15번이나 걸어서 오르는 의지의 한국인도 등장했다.

혼자였다면 이내 포기하고 말았을 게으른 깍두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TV를 보면서 하루 한 시간 이상 실내자전거를 타고, 1만보 이상 걸으려 동네를 쏘다녔다. 다른 직원들이 올린 운동사진을 보면서 “다들 개고생 중이군” 묘한 위안을 얻었다. 나는 이 느낌을 ‘동기 부여’라고 부르기로 했다.

건강증진, 개인 몫인가 사회 몫인가

대망의 성적 공개의 날. 인바디 측정실에 평소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수영장과 피트니스센터를 오가며 의욕을 불태운 이용건 심리상담사가 난데없이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0.1그램이라도 더 줄여보겠다는 눈물겨운 노력에 박수를.

이날 참가자 모두의 기록을 집계한 결과 평균 1.42킬로그램의 체지방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게으른 깍두기도 1.5킬로그램의 체지방을 감량했다. TV 홈쇼핑에 자주 나오는 지방 덩어리 1개 이상 덜어낸 것이다. 1등의 영광은 마지막 순간까지 팔굽혀펴기를 하던 이 상담사에게 돌아갔다. 그는 무려 4.1킬로그램의 체지방을 태워 없앴다.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얻은 건 개선된 체성분 수치뿐만이 아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서로를 독려한 구성원들의 정서적 거리가 한층 가까워졌다. “운동과 식이는 본래 개인적인 일이지만 함께 실천할 때 훨씬 강한 지속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내 분위기가 한층 건강하고 따뜻해진 것 같아요.” 프로그램을 총괄한 반진우 물리치료사의 평가다.

노동자 건강증진은 개인의 몫일까, 사회의 몫일까. 건강의 책임을 오롯이 노동자에게 물어선 곤란하다. 교대근무나 장시간노동·업무강도 같은 근무조건은 노동자의 선택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일터가 건강을 위협하는 구조라면, 그 책임은 조직과 사회가 져야 한다.

일환경건강센터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방법은 어렵지 않다. 기업은 구성원이 함께하는 건강증진 노력을 독려·지원하고, 일터의 한 축인 노조는 건강 문제를 중요한 노동조건으로 인식하면서 건강증진 활동에 힘을 합쳐야 한다. 일터의 경계가 불분명한 특수고용직이나 플랫폼노동자의 건강형평성 확보 차원에서 정부의 개입도 필요하다. 거창한 해법이 아니어도 된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스트레칭이나 건강 상담, 식단 개선에서 출발하자. 비록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할 것이다.

구은희 일환경건강센터 PL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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