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19 09:17
[차기정부, 이것만은 ④ 아프면 쉴 권리] 올해 도입 약속한 상병수당·유급병가, 더는 미룰 이유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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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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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유행하며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확산했다. 이전까지 노동계와 전문가를 중심으로 논의되던 상병수당은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상병수당은 아파서 일하지 못해 수입이 줄거나 사라질 경우 아픈 기간 동안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정 수준으로 지급되는 급여를 말한다. 기존 사회보장제도가 ‘아프면 쉴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데서 상병수당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산재를 당한 경우 휴업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지만 산재 문턱이 높고, 업무 외 질병·사고는 고려되지 않는다. 구직급여는 구직 노력을 나라에 인정받아야만 지급받을 수 있어 제약이 있다.
시민들은 코로나19로 ‘아프면 쉴 권리’와 경제적 지원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2021년 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중 85.2%가 상병수당 필요성에 공감했다. 아플 때 쉬는 것은 감염병 확산을 막아 자신뿐 아니라 사회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코로나19로 피해 입은 시민을 위해 생활지원금을 지급했다. 시민들은 개인의 상병에 국가의 재정지원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또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파도 쉬지 못하는 노동자의 현실도 주목됐다. 직장갑질119가 2020년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는 유급병가가 없는 회사에 다녔다. 전교조 설문조사(2022년)에 따르면 법적으로 유급병가가 보장된 교사도 응답자의 55%가 아파도 병가를 쓸 수 없었다고 답했다. 특히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은 ‘불안정 노동자’에게는 아파도 참고 일하는 것은 재난을 넘어 일상적이었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가 2023년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 512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54.9%가 몸이 아파도 참고 일한 경험이 있었다. 쉬지 못한 이유는 소득 단절 같은 경제적 문제가 43.4%로 가장 컸다.
아플 때 결근율보다 출근율이 높은 한국, 유럽은 반대
상병수당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 사회 주요 의제가 됐지만 이전부터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질병으로 인한 실직 뒤 빈곤으로 치닫는 사람들이 알려지면서 상병수당이 대책으로 제시됐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벌어지면서 ‘상병수당이 있었더라면’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어머니가 퇴근 뒤 귀가 중 다쳐 일을 그만두며 수입이 끊기자 두 딸과 함께 숨진 이 사건은 질병과 빈곤·실직의 연결고리와 우리 사회 제도 공백을 드러냈다.
우리나라에서 상병수당 논의는 더디지만 꾸준히 제기돼왔다. 2000년 의료보험을 개혁하면서 상병수당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사회보장권을 강화하라며 상병급여를 법제화하는 내용의 건강보험제도 개선을 주문하기도 했다. 진보정당은 앞섰다. 2007년 대선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무상의료와 함께 상병수당 도입을 공약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때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정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협약’을 맺으면서 상병수당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2022년 치러진 대선에서는 윤석열·이재명·심상정 후보가 모두 상병수당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아파도 일하는 ‘프리젠티즘’ 경향이 외국보다 강하다는 측면에서 상병수당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9월에 발간한 이슈페이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아파도 출근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의 비율은 23.5%로 아파서 쉰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 9.9%보다 2.37배 많았다. 출근율이 결근율의 2.37배인데, 유럽 국가는 결근율이 출근율보다 0.81배 높았다. 이는 상병수당 제도화 여부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병수당 제도가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미국뿐인데, 무급을 포함한 법정병가와 상병급여 둘 다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최근 미국은 주별로 유급병가 법제화 흐름이 있고, 우리나라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낮은 153개국에서 유급병가와 상병수당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사회적 여론이 높아지면서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2022년부터 시작됐다. 지난해부터는 3단계 사업이 시작돼 현재 1·2·3단계 사업이 모두 진행 중이다. 그런데 국정과제였던 ‘한국형 상병수당’을 2025년 도입하겠다던 윤석열 정부는 두 단계나 시범사업을 해 놓고도 2027년으로 본사업 시행을 미뤘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달 대통령직에서 파면됐지만 당초 임기는 2027년 3월8일까지였으니, 제도 시행 의지는 사실상 없었다고 풀이된다.
ILO 최소 52주 지급기간 권고하는데
시범사업 지급기간은 최대 150일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정부는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에 수당을 지급하는 모형과 입원·진료일만큼 수당을 지급하는 모형으로 나눠 사업을 실시했다. 최대 보장기간은 90일·120일·150일로 대상 지역을 선정했다. 올해 복지부가 발표한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따르면 1·2단계 시범사업 상병급여 지급결과 총 1만3천252건, 평균 86만3천원, 평균 18.7일만큼 수당이 지급됐다. 주요 신청 질환으로는 손상 및 외인에 의한 결과(29.8%), 근골격계 질환(27%) 순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시범사업에서조차 소득보전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급금액은 너무 낮았다. 수당은 소득이 아닌 최저임금의 60%로 정해져 지난해부터는 하루 4만7천원꼴로 책정됐다. 상병수당을 도입한 해외는 소득의 60~70%를 보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룩셈부르크와 칠레는 100%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69년에 상병급여 권고에서 근로능력을 상실하기 이전 소득의 66.67%를 상병수당으로 책정하라고 밝혔다.
기간도 짧았다. 아팠던 모든 기간이 아니라 보장일수를 최대 150일로 제한했고, 최대 14일의 대기기간도 있었다. 대기기간보다 적게 아프면 상병수당을 받을 수 없다. ILO는 아픈 모든 기간에 급여를 지급하되 대기기간을 설정할 수 있다고 보지만 급여 지급기간은 최저 52주 이상으로 권고하고 있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시범사업을 바탕으로 본사업에서는 불안정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거나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혹은 고용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직군과 이주·고령노동자가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시범사업에서 급여 지급대상을 65세 미만으로 한정했고 이주노동자도 포함하지 않았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지난해 12월 펴낸 ‘불안정 노동자들은 왜 아파도 쉬지 못하나’ 보고서에서 면접조사를 통해 불안정 노동자는 아파도 참고 일하는 ‘프리젠티즘’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연구소는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계약직·일용직·간접고용·돌봄·작은사업장·이주노동자를 불안정 노동자로 묶어 조사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소득 단절이나 해고 같은 같은 불안감 때문에 아파도 버티며 일을 하고 있었다.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점도 문제로 꼽혔다.
연구소는 조사를 바탕으로 상병수당 본사업에는 다양한 일하는 이들의 조건을 주목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플랫폼·프리랜서가 정기적이지 않은 소득과 일감을 얻는 것을 고려해 소득 산정일을 충분히 길게 설정해야 하고, 계약서를 쓰지 못하거나 소득증명이 어려운 현실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또 쉼을 이유로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뿐 아니라 사업장 내 대체인력에 대한 지원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무엇보다 상병수당의 당사자인 노동자, 노조와 함께 정책을 논의하고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대 노총 “상병수당·유급병가 법제화해야”
양대 노총도 이번 대선을 맞아 상병수당 도입을 정책요구안에 포함시켰다. 내용과 기준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양대 노총은 5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을 결성해 상병수당과 유급병가 도입을 촉구해 왔다.
한국노총은 상병수당을 3대 사회수당에 포함해 2026년부터 전면도입하라고 촉구했다. 모든 연령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상병수당을 요구했고, 근로기준법상 유급병가 의무화와 법 바깥의 노동자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ILO 기준에 맞게 수당지급 기준을 설정하라고도 촉구했다. 급여의 66.7%를, 기본 180일에서 최대 360일까지, 건강보험료 납입만 확인되면 직장과 지역에 관계없이 지급해야 한다는 요구다. 또 업무 외 상병에 대해서도 유급병가 의무제공을 법제화해 병가를 써도 해고 같은 불리한 처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법 바깥의 노동자에게는 지방자치단체가 유급병가를 도입하라고 주문했다.
민주노총도 대선 핵심요구안으로 상병수당과 유급병가 도입을 꼽았다. 특히 상병급여 지급대상에 이주노동자를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사회보험 형식으로 국민건강보험법에 ‘상병급여’라는 규정을 신설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수당지급 대상에 특수고용 노동자와 임시노동자를 포함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하고 소득기준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급여는 근로능력을 상실하기 이전 6~12개월간 평균 소득의 3분의 2를, 최대 1년6개월까지 보장하도록 요구했다. 업무 외 상병에 대한 유급병가 역시 1년에 최대 60일, 통상임금의 100%를 보장하며 근로기준법에 이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5명 미만 기업에도 이를 적용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자영업자나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도 정부·지자체 차원의 유급병가 도입을 주문했다.
이재명 “아프면 쉴 권리 보장”
권영국 “전 국민 상병수당”
다음달 치러질 21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상병수당은 공약으로 등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관련 공약을 찾아볼 수 없다.
적용대상은 권 후보가 가장 넓다. 권 후보는 ‘전 국민 돌봄시대’를 열겠다며 국가가 책임지는 의료와 돌봄, 복지를 공약했다. 모든 국민에게 상병수당을 도입하는 ‘전 국민 상병수당’으로 질병과 손상으로 인한 소득손실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후보는 10대 공약 중 가계·소상공인 대책에서 상병수당 확대를 공약했다. 자영업자의 아프면 쉴 권리를 위한 상병수당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10대 공약에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지만 이 후보는 지난 1일 노동절에 자신의 SNS에 “저소득 취업자로 제한된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누구나 아프면 걱정 없이 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2021년 20대 대선을 앞두고는 이른바 보편적 상병수당을 도입하겠다며 “모든 경제활동 인구를 대상으로 상병수당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22대 국회에는 상병수당 도입 법안이 5건 발의돼 있다. 모두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으로 이수진·서영석·박범계·김태년·권향엽 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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