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4-21 08:06
‘이승만’은 간 데 없고 ‘4·19’ 깃발만 나부껴
|
|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0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서울시의회 앞에는 ‘4·19혁명의 중심지’라고 쓰인 표지석이 있다. “1960년 3월과 4월, 수만 명의 학생들이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의했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매번 이 문장을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자유당 정권을 좌지우지한 독재자 이승만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 텔레비전으로 4·19 혁명 65주년 기념식을 지켜봤다. 이승만이라는 이름이 몇 번이나 나올지 유심히 봤다.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45분간 진행된 기념식에서, 4·19 혁명이 타도한 파시스트 독재자 이승만의 이름은 단 한 차례, 4·19민주혁명회장 연설의 한 대목에서만 언급됐다. “4월26일 이승만 하야 성명으로 마침내 자유당 정권이 막을 내리고…”라는 문장이 전부였다. 예상대로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는 자신의 연설에서 이승만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기념식은 사회자부터 연설자까지 하나같이 “부정과 불의에 대한 항거”라는 추상적 표현을 반복했다. 그러나 정작 그 부정과 불의의 실체였던 이승만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번뿐이었다. 이날 기념사는 언제나처럼 ‘희생’과 ‘정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미사여구로 채워졌지만, 그 말들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나왔는지, 누구를 겨냥했는지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특히 12·3 내란 사태가 가까스로 종결된 직후였기에, 올해의 기념사는 더욱 공허하게 느껴졌다. 국민의 뜻을 기린다고 했지만, 정작 국민이 누구를 향해 분노했고, 누구를 거리에서 몰아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혁명은 역사 속으로 밀려났고, 남은 건 의미를 잃은 찬사뿐이었다.
우리는 기억한다. 1960년 3월15일, 이승만과 이기붕 당선을 위해 자유당 정권은 노골적인 선거 조작을 자행했다. 투표함 바꿔치기, 사전 기표 등 온갖 부정행위가 총동원됐다. 국민은 참지 않았다. 대구와 마산에서 시작된 저항은 전국으로 확산했고, 결국 이승만 정권은 시민들의 분노 앞에 무너졌다. 이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닌,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 포장한 독재 권력에 대한 전 국민적 심판이었다.
21세기 들어 극우세력은 이승만 복권에 집착해 왔다. 그를 ‘건국 대통령’이라 칭송하며 곳곳에 그의 동상과 기념관을 세우려 했고, 심지어 4·19 혁명의 중심지인 광화문광장을 ‘이승만광장’으로 바꾸자는 반역사적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이제 4·19의 정신은 여전히 기념사에서 언급되지만, 그 분노의 정신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는 사라지고 있다. “부정”과 “불의”라는 말은 계속 등장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행위였는지, 어떤 체제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지는 말해지지 않는다. 이승만 이름 석 자는 역사에서 지워지고, 공허한 수사만이 기념사를 채운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1960년 2월부터 대구, 대전, 마산을 거쳐 마침내 4·19 혁명으로 전국 곳곳에 울려 퍼진 함성이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자유와 민주, 정의를 상징하는 그날의 정신은 헌법의 토대가 됐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운 원동력”이라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정작 그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이승만과 그의 정당인 자유당에 대해선 침묵했다. 그의 기념사는 혁명의 기억을 축소하고, 역사적 불의에 눈감은 기회주의적 태도였다.
4·19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기리는 일이 아니다. 당시의 부정과 지금의 부정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며, 이승만 정권이 남긴 파시스트 체제의 유산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인식하는 일이다. 간첩 조작, 반공주의, 중국 혐오, 대북 군사주의, 언론 통제, 민주주의 억압 등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고리다. 오늘 우리가 맞닥뜨린 민주주의의 위기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역사는 단지 기념하는 대상이 아니다. 역사는 책임을 묻는 과정이다. 4·19를 진정으로 기념하고자 한다면, 민중이 누구와 싸웠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맞섰던 권력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야 한다. 이승만은 한국 민주주의가 처음으로 몰아낸 독재자였다. 그의 이름을 뺀 4·19는 존재할 수 없다. 그 이름을 지운 순간, 혁명은 교과서 속 미화된 상징으로 퇴색할 뿐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고 있는가. 혁명의 정신인가, 아니면 형식적 기념인가. 진실을 지운 기념은 위험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추상적 찬사가 아닌 구체적 직면이다. ‘이승만은 간 데 없고 4·19만 나부끼는’ 기념식을 멈추고, 그날 혁명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를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만 4·19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살아 있는 기억이 될 수 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