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4-28 07:42
신으로 불리는 노동자의 ‘우주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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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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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처럼 신분이 상승했다
“귀족” 소리를 들은 것이 2000년대였다. 노조가 못마땅한 사람들과 몇몇 언론이 ‘귀족노조’라는 말을 집요하게 퍼뜨렸다. “귀족이 노동을 합니까. 게다가 주야 맞교대로 심야노동을 하는 귀족이 어딨습니까” “노동자는 귀족처럼 살면 안 됩니까” 이런 반론 많이 했다.
“킹산직”이라는 말을 2020년대에 들었다. ‘킹+생산직=킹산직’이라는 말을 들으니 생산직 노동자가 귀족을 지나 왕의 서열에 올랐다. 한쪽에서는 무권리 사각지대 노동자가 늘었으나 대공장 생산직은 노동권도 누리고 연봉도 노동시장의 상위 10% 안에 든다. 중견업체 노조에도 상위 10%에 드는 노동자가 꽤 있다.
“신”이라는 얘기를 요즘 듣는다. ‘갓(God)+생산직=갓산직’이라든가 ‘갓+회사이름=갓○○○’이라는 단어를 듣는다. 냉소적으로 쓰는 말이다. ‘연봉도 많고 힘도 쎈’ 생산직 노조원을 비꼬며 쓴다. 의도야 어쨌든 단어만 보면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던 생산직 노동자가 귀족과 왕을 거쳐 신이 된 기적을 이룬 것이다.
노동자가 신이 된 역사는 이미 있었다. 먹는 음식, 입는 옷, 사는 집, 이동을 위한 열차, 자동차, 비행기, 배를 비롯해 세상 만물을 만드는 것은? 노동자다. 그래서 창조자인 노동계급이 세계를 흔들었다. 고전경제학을 지나 ‘노동 창조론’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그야말로 노동의 경전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가 역사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떨쳐 일어난 것은 인류사에 보기 드문 거대한 자존감 상승 프로젝트였다. 물론 19~20세기 일이다. 지금 일부 생산직을 신으로 부르는 것은 맥락이 사뭇 다르다.
신과 졸부 사이
“여러분이 신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분 나쁘더라도 긍정적으로 받아서 신처럼 활동하면 되죠.” 한 제조업 노조 간부들이 모인 곳에서 이렇게 말했다. 욕을 욕으로 듣지 않으면 욕이 아니다. 신은 자신를 돌보는 데 급급하지 않다. 세상을 두루 살핀다. 뭐 그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만든 단체협약 6장의 임금보다 먼저 3장에 등장하는 ‘사회적 책무’를 잊지 않으면 된다.
그들의 압축성장을 봤다. 노조가 생긴 지 불과 5년 안팎의 사이에 연봉은 대략 두 배, 고용이 대략 3천명 정도 늘어난 사례다. 그들은 안팎의 논란 속에 압축적 변화를 이뤘다. 압축성장은 이중적이다. 빠른 변화로 자신감이 생기지만, 외형만 크고 내면은 빈약한 졸부심도 생긴다. 졸부의 심리에 갇히면 ‘돈돈’거리며 으스댈 것이고, 자부심이 충만하면 어려운 주변을 챙기며 신이라 불릴 만큼 멋지게 활동할 것이다.
그들은 전국에 있던 하청 업체를 뛰어넘어 처우도 개선하고 권리를 확장하는 ‘통합’을 향해 달려왔지만, “지금은 통 큰 목표와 중심이 없다”고 했다. “조합원은 돈밖에 몰라.” 기성노조에서 들었던 말을 그곳에서 들었다. 서로를 경제적 동물로 여기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돈주머니만 아니라 ‘마음 주머니’도 있다. 우리는 서로 어울려 정을 나누고 연대의 자부심을 느끼며 삶을 풍성하게 누리고 싶다. 그런 자부심을 일으키지 못하는 간부는 돈으로 때우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채워지지 않는다.
공포 장사의 기억
비전 없는 간부는 공포로 조합원을 통제한다. “고용이 위험해.” 공포를 자극해 전투에 동원하는 것이다. 자주 봤다. 애초에 고용불안은 노조가 아닌 자본의 책략이었다. 연봉이 오르고 고용이 늘어난 것은 사회적으로 좋은 일이지만, 경영자 눈에는 비용 증가다. 그럼 이제 고용불안을 퍼뜨려야 할까. 트럼프까지 등장해 산업이 요동치니 ‘고용의 늪’으로 끌고 갈 기회일까. 국제적 통상 조건과 산업 상황을 보면 그들의 압축성장은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마냥 성장하지 않으며 성숙의 시기가 온다. 그러나 미숙한 노사는 불안을 이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안정적이던 대기업에서도 외환위기나 부도위기나 매각 분위기를 타고 해고 바람이 불면, 노사 신뢰는 최악으로 떨어지고, 노동자의 생존게_임은 격해지고, 노사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후유증은 오래 남았다. 실업의 공포가 쓸고 간 자리에 협력의 자긍심보다 경쟁의 이기심이 퍼졌다. 노동자 내면에 만물을 생산한다는 자긍심은 사라지고, 언제 또 잘릴지 모르니까 ‘있을 때 챙기자’는 탐욕이 퍼졌다. 그렇게 빈 마음은 사측과 담합, 비리, 도_박, 가정불화, 자살 증가로 이어졌다. 그런 노조를 보고 밖에서 ‘이기적 집단’이나 ‘귀족노조’라는 냉소가 퍼졌다. 뼈아프게 배웠다. 내면의 결핍은 외면의 고립을 낳는다.
무엇보다 ‘해고의 늪’은 노사 모두의 사회성을 바닥으로 처박았다. 기업은 해고와 외주화로 비정규직을 늘려 사회적 책임을 저버렸다. 노조는 잘릴 때를 대비해 비정규직을 늘리고 차별하면서 이기적 집단으로 찍혔다. ‘물량나눔’이나 ‘고용연대’ 같은 질적 혁신을 못한 노사는 양적 축소를 둘러싸고 부딪치는 ‘고용의 늪’에 빠졌다. 무능한 노사는 1차 정규직과 2차 비정규직의 노동시장 양극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갈린 산업 양극화, 차별과 격차를 만든 사회 양극화 공범이 됐다.
딱 어울리는 ‘우주정리’
극복 노력도 있다. 노조가 ‘사회연대기금’을 만들거나 노사가 함께 ‘사회공헌기금’을 만들었다. 사회성을 높이려고 개발한 하나의 브랜드다. 기금의 규모는 크지만, 그만한 사회적 의미를 발휘하지 못한 사례도 있고, 기금 규모는 작지만 매우 쏠쏠하게 쓰여 조합원이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사례도 있다. 얼마 전 만난 그 노조 간부들은 조합원들에게 아직 생소하지만 사회연대기금이나 사회공헌기금을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정의하는 리브랜딩’을 줄이면 ‘우주정리’다. 브랜드(brand)는 어떤 제품이나 집단의 이름·기호·도안이다. 기업의 브랜드 관리는 물론 개인의 브랜드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대규모 조직에 성공한 IT산업 노조들은 그들의 감각에 맞게 언어, 이벤트, 선물, 노조 이름, 로고, 시위 문화를 바꾸는 리브랜딩(Rebranding)에 노력했다고 한다. 리브랜딩은 좁게는 부정적인 노조 이미지를 바꿔 가입률을 늘리고, 넓게 보면 노조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것이며, 더 넓게 보면 해당 산업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얼마 전 만난 그들은 재벌그룹에 계열사를 탄생시켰다. 노사관계에서 만든 결과는 늘 ‘공주(공동 주도)’다. 어떤 이들은 그런 기업의 탄생을 ‘저주(저들 주도)’라며 의미를 부인하지만, 노조가 요구한 ‘우주(우리 주도)’였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날 강당을 꽉 채운 노조 간부들 앞에서 발표를 맡은 한 간부의 얘기였다. 본인들 처우도 개선했지만, 수직 공급사슬에서 수평적 산업으로 가는 작지만 하나의 경로였다. 이런 의미를 조합원이 공유하고 스스로 만든 회사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낄까. 못 느끼면 졸부처럼 자기 주머니만 채우려 급급할 것이고, 느끼면 그들이 일하는 제조업을 탄탄하게 만들며 ‘제조강국’을 촉진할 수도 있다.
선진국들은 제조업을 해외로 빼돌렸다. 대신 금융을 키운 영국은 잘나가고 있나. 왜 금융 세계화를 주도하고 빅테크에 열광해 온 미국이 다시 제조업 강화에 애쓸까. 노조의 노력 없이 기업도 산업도 탄탄할 수 없다. 고용안정협약서를 쓰는 것보다 탄탄한 고용안전 장치는 기업과 산업을 긍정적으로 자극하면서 높아지는 노조 브랜드 가치다. “단결하는 노동자는 패배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날 외친 구호에 빗대면 ‘탄탄한 브랜드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질한 졸부가 ‘돈돈’거릴지라도 신으로 불리는 존재에게 어울리는 것은 ‘우주정리’다. 어떤 브랜드를 만들 것인가.
조건준 아무나 유니온 대표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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