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4-29 07:50
경제성장의 마법은 사라졌다
|
|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13
|
탄핵으로 열린 조기대선을 시작하며 새삼스럽게 ‘경제성장’ 공약이 인기다. 여론조사에서 가장 앞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쪽에서 ‘345 성장전략(3% 잠재성장률, 4대 수출강국,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를 제시했고 ‘초격차 기술주도 성장’(홍준표), ‘성장하는 중산층 시대’(한동훈) 등 집권여당 후보들도 저마다의 성장론을 들고나왔다.
2010년 이후 한국 대선의 최고 주제였던 ‘복지’가 어느새 완전히 뒤로 밀려나고 거의 20년 만에 다시 ‘성장’이 화려하게 부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성장률 목표가 반토막이 났다는 것이고 성장 방법이 ‘AI 중심 혁신성장’으로 바뀐 정도다.
물론 충격적인 내란 사태 이후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까지 4개월 동안 초유의 정치적 불안에 더해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변덕스런 관세정책으로 경제성장 전망이 반토막난 현실적 배경이 있다. 시급히 무너진 내수를 추스르고 극도로 불확실한 대외 경제여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정치 지도자들의 절박함이 경제성장 카드를 꺼내게 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우외환의 경제난국 돌파 해법이 당연하게 ‘3% 성장’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들이 기대하는 건 대체로 일자리와 소득의 안정성이다. 그런데 최근에 고용지표와 성장률이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 지난 3년 동안 경제성장률은 2.7%, 1.4%, 2.0%로 역대 가장 저조했지만, 양적인 고용 상황만 놓고 보면 연속 3년 동안 3% 미만의 낮은 실업률과 62% 이상의 높은 고용률을 유지했다.
21세기 25년 동안 가장 양호한 수치다. 이 숫자만 보면 더 이상 고용을 이유로 성장률을 높일 이유가 없다. 물론 일자리 양적 규모 이면의 일자리 질로 눈을 돌려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하지만 고용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경제성장이 아니다. 급한 것은 무너진 고용규칙을 다시 세우고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여 일자리 질을 확보하는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규제를 통해 불안정한 플랫폼노동 양산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
경제학자 장하준(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 정도로 성장했으면 성장률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잘 나누고 도우면서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경제성장은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더 이상 경제성장 목표에 집착하지 말고 왜 경제성장을 하려는지 성찰해보자는 적절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대선후보들의 성장 목표도 문제지만 성장 방법도 그냥 넘길 수 없는 허점이 있다. 여야와 정견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대선후보는 ‘전폭적 AI 지원을 통한 혁신성장’을 강력히 지지한다. 이를 위해 100조원, 200조원 투자 공약도 쏟아냈다. 그런데 정말 인공지능 혁신이 차기 대통령 임기 안에 경제성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까.
하루가 다르게 성능이 업그레이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 혁신 추이를 보면, AI가 당장이라도 산업 생산과 서비스 전체에 걸쳐 상당한 생산성 효과를 낼 것 같다. 하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아세모글루는, 향후 10년 동안 인공지능으로 인한 총요소 생산성(TFP)이 고작 0.53%, 그리고 GDP 성장률은 10년간 총 0.93~1.16% 범위에서 완만하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비슷하게 경제학자 다이엔 코일 역시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AI의 경제적 영향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AI 산업 자체는 빠르게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단기 또는 중기적으로 GDP 성장률을 크게 끌어올릴 거라고 기대할 이유는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은 AI가 자칫하면 소득 불평등과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AI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혁신은 미래의 산업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중대 과제다. 하지만 당장 AI에 투자한다고 곧바로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설령 2~3% 경제성장이 된다고 해도 고용과 소득의 양과 질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경제성장이 ‘모든 배를 들어 올리는 마법’은 사라진 지 오래다. 누구도 경제성장 주문으로 사라진 마법을 되살릴 수는 없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