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22 08:24
괴롭힘 수단으로서의 인사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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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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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특정한 유형의 사건이 유독 많이 들어온다. 바로 인사발령 사건이다. 노동청 사건을 진행했거나 노조를 만드는 등 인사권자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한 노동자를 다른 업무, 다른 부서로 인사발령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인사발령 사건을 상담하게 되면 일단 ‘쉬운 사건은 아니다’라는 말로 답변을 시작하게 된다.
법원은 인사발령에 대해 원칙적으로 인사권자인 사용자의 권한에 속해 사용자가 상당한 재량을 가진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근로계약서에 업무내용·근무장소가 한정되지 않고 포괄적으로 적혀 있다면 노동자의 동의가 없더라도 업무내용이나 부서를 변경할 수 있다. 대신 법원은 이 경우 업무상 필요성과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을 비교·교량하고 노동자와의 협의 절차를 거쳤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고 있다. 문제는 사용자쪽의 업무상 필요성은 업무능률·직장질서 등 사정이 폭넓게 인정되는 반면, 노동자의 생활상 불이익은 대체로 임금 하락, 원거리 출퇴근 정도가 아니면 인정받기 매우 까다롭다. 심지어 노동자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부당하다고 판단되지 않는다.
예전에 진행했던 한 사건에서 사용자는 인력 효율화라는 추상적인 목표만 얘기하면서 경력 노동자를 보통 신입사원들이 하는 업무로 발령했다. 당연히 협의는 전혀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위원회는 업무상 필요성은 사용자의 재량으로 폭넓게 인정되고, 임금 수준이 변하지 않아 정당한 인사발령이라고 판단했다.
노동위원회에서 업무상 필요성에 최소한의 객관성은 갖춰야 하며, 이 인사발령은 사실상 강등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로 인사발령 상담을 할 때는 그 당시의 답답함이 떠오르며 ‘쉬운 사건은 아니다’라는 말로 답변을 시작하게 된다.
결국 사용자가 노동자를 기피부서에 발령하면서 기존의 임금 수준을 맞춰 준다면 노동자는 법적으로 인사발령이 부당한 것이라고 인정받기 어렵게 된다. 반대로 사용자에게는 유용한 괴롭힘 수단이 될 것이다. 최근 인사발령 사건이 우후죽순 들어오는 추세도 이러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법원도 업무상 필요성은 좀 더 엄격하게, 생활상 불이익은 좀 더 폭넓게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추상적, 일반적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형태의 전보발령이 정당화될 수 없고” “인원배치를 변경할 필요성이 있고 변경에 어떠한 근로자를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 하는 인원 선택의 합리성이 있어야” 업무상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0다253744 판결 등). 조직개편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상급 직책의 노동자를 통상 신입사원이 하는 업무로 발령하는 것은 인원 선택의 합리성이 없어 업무상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생활상 불이익 또한 경제적 불이익뿐만 아니라 정신적·사회적 불이익 등 인정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법원은 “생활상 불이익이라 함은 경제적 불이익에 한정되지 않고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불이익 나아가 조합활동상의 불이익까지 포함한다”고 했고(서울고법 2010. 11. 4. 선고 2010누12721 판결), 업무상·직무상 불이익도 생활상 불이익이라고 봤다(서울고법 2017. 4. 19. 선고 2016누67242 판결).
그렇지만 노동위원회는 이러한 추세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심판 정당한 인사발령은 업무상 필요성 또한 객관적이어야 하고 인원 선택의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는 판정이 나오기 어렵다. 정신적·사회적 불이익 등이 있어 부당한 인사발령이라고 인정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현대트랜시스 자회사 트라닉스는 금속노조가 지회 설치를 위해 노조가입서를 받은 2일 뒤 대대적인 인사발령을 실시했다. 이 인사발령으로 지회 설립의 초동주체였던 노동자들 대부분이 직책해임되거나 다른 공장으로 발령됐다. 설사 인력 효율화라는 추상적인 업무상 필요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이 대부분 지회 설치의 초동주체였던 노동자들이었어야 할 인원 선택의 합리성이 없다. 심지어 직책수당은 삭감돼 경제적 불이익이 명백하고 수십 년 반장·조장으로 일했던 노동자들이 일반 사원이 돼 사회적 불이익, 조합활동상 불이익까지 인정된다.
이번에는 노동위원회가 인사발령이 사용자의 유용한 괴롭힘 수단이 아님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최연재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충남사무소)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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