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30 15:28
[사회대전환, 노동 ⑥] 교사의 정치기본권, 진짜 민주주의의 시작
|
|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84
|
올해 4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생중계를 아이들과 함께 수업 중 시청하라는 공문이 여러 시도교육청을 통해 학교 현장에 전달됐다. 아마 교육청은 민주시민교육의 일환이라는 뿌듯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소위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방송을 시청하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교사 개인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들이 “선생님,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잘하는 일인가요”라고 묻기라도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어떤 보호자가 “방송을 튼 걸 보니 탄핵을 찬성하신 건가요”라며 항의를 하고, 반대로 “방송을 틀지 않은 걸 보니 선생님은 탄핵 반대파군요”라며 민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교사 행위의 교육적 타당성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도, 교사의 해석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교사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원론만 남긴 채, 행위에 대한 해석과 책임은 오롯이 교사의 몫으로 남겨졌다. 정치기본권이 없는 교사는 어느 방향으로도 안심할 수 없는 선택지 앞에 서야 했다.
대선을 앞둔 5월 어느 날, 정치적 의사 표현조차 금지된 수많은 교사에게 특정 후보의 선대위 ‘교육특보’ 임명장이 날아왔다. 지지 선언은커녕 교육공약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평하는 것조차 금지된 교사들이었기에, 이 임명장은 조롱이자 모욕으로 다가왔다. 임명장을 보낸 후보는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해 온 인물이었고, 교사의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해 임명장을 발송한 정황도 드러났다.
헌법이 보장한 정치기본권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다. 그러나 유독 대한민국의 교사는 여전히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받고 있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그럴듯한 미명 아래 교사는 정당에 가입할 수 없고, 공공장소나 온라인에서 정치적 견해를 말하는 것조차 조심해야 한다. 선거 기간 중에는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 제시조차 금지된다. 관심이 있지만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 현장의 교육정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정치기본권이 없다는 이유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박탈은 단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교육정책 전반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교육정책이 아이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교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필요한 예산과 지원 없이 아름다운 이상만 좇은 정책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도 있었다. 정권에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교육으로 아이들이 고통받을 때, 교사는 이를 비판하고 학생 중심의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소리높여 외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침묵을 강요당할 뿐이다.
정치기본권 배제 문제는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양성하는 정치교육과도 직결된다. 교사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가르치지만 정작 교사 자신은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박탈돼 있다.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민주시민교육은 껍데기만 남고, 아이들은 유튜브와 온라인 공간에서 왜곡된 혐오 정치와 팬덤 정치를 익히고 있다.
사회를 바라보는 올바른 눈을 키우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회구성원과의 이해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교사의 부재는 민주시민교육으로 양성해야 할 아이들을 극단적인 정치성향과 혐오와 차별과 갈라치기에 익숙한 세대로 만들고 있다. 교사의 입을 막고 있는 것이 결국 학생들의 귀와 눈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하는 학교 안의 모든 것이 정치적 결정의 결과이다. 교육정책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예산·교사 정원 확보·교육활동보호·학급당 학생 수·급식·돌봄·방과후 프로그램·각종 사업 등 그 어느 것 하나 정치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의 삶은 곧 정치이며, 정치를 통해 우리의 삶도 교실도 변화시킬 수 있다.
대한민국 교사는 1960년대 군사정권 시기부터 정치중립을 강요당했고, 64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정치 중립이라는 목적으로 정치기본권을 박탈당한 채 살고 있다. 세계는 변했지만, 대한민국 교사는 지금도 ‘말할 수 없는 시민’으로 남아 있다. 교사는 공무원이기 전에 시민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시민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
장은미 전국특수교사노조 위원장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