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6-02 08:06
폭염 속에서 죽지 않을 권리 방해하는 규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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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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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폭염은 기록적인 피해를 남겼다. 역대 세 번째로 많은 폭염 일수, 2018년 이후 가장 많은 온열질환 산재자. 건설현장, 물류창고, 급식실, 택배터미널…. 땀이 아니라 목숨이 흘러내리는 현장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쿠팡 물류노동자의 투쟁, 급식노동자의 눈물, 건설노동자의 죽음을 딛고 싸웠다. 그 결과 산업안전보건법 39조에 ‘폭염 예방 조치 사업주 의무’가 새로 포함됐고, 이달 1일 시행됐다.
하지만 법은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다. 세부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법은 시행했지만, 노동자는 공백 속에 있다.
법은 바뀌었지만 현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용노동부는 올해도 보도자료를 통해 매년 반복해 온, 폭염작업시 “그늘 제공” “휴식 보장” “작업시간 조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지금 어디까지가 ‘의무’이고 어떤 내용을 어기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구체적인 기준은 없다.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이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안전보건규칙 개정안이 규제개혁위원회의 벽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위는 이름 그대로 법과 제도 속 과도한 규제를 걷어내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 규제개혁위가 하는 일은 ‘검토’가 아니라 ‘가로막기’다. 폭염 속에서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마저 기업의 눈치를 보며 지연하고 있다. 폭염 속 휴게시간 보장도, 온습도계 비치도 “기업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고, 사업주를 범법자로 만드는” 것이라며 멈춰 세우고 있다. 규제개혁위에 되묻고 싶다. 어떻게 이것이 규제가 될 수 있는지, 죽음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법이 아닌지.
이번 규제개혁위 검토는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정치적 알박기’나 다름없다. 새 정부 출범 전에 무언가를 미리 막기 위한 알박기 시도다. 규제개혁위가 노동자의 생명을 포기한 순간, 우리는 그 존재 자체를 규탄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규정을 ‘규제’라고 말하는 규제개혁위의 존재를 되물을 수밖에 없다. 법은 자본·기업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책임을 회피한 노동부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노동부는 지난달 28일 “5월30일부터 ‘폭염 특별대책반’을 운영한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폭염 고위험 사업장 6만개소를 점검하고, 근로자건강센터는 직접 현장을 방문해 기저질환자에게 건강지원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소규모 사업장에는 냉방조끼 같은 온열질환 예방용품을 지원하겠다고도 한다. 듣기에는 근사하지만 법적 권리가 아닌, 임의적 시혜에 불과하다. 사업주가 폭염대책을 지키지 않으면 노동부가 제재와 같은 강제력을 행사겠다는 약속이나 책임은 찾아볼 수 없다.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자주 물 마시기” 캠페인이 아니다. 노동자가 일할 수 없는 조건에서는 작업을 멈추도록 하는 법적 의무를 사업주에게 강제해야 할 때다.
폭염 산재의 49.2%는 건설업에서, 61.9%는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55.5%는 50대 이상 고령 노동자에게서 발생했다. 법은 가장 위험한 현장에서 가장 먼저 작동해야 한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급식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로 급식 메뉴를 짜는 현실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여전히 케이블을 연결하기 위해 전봇대에 오르는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보호 대책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안전보건규칙이 없는 상태에선 어느 곳에선가 누군가 죽어갈 것이다.
노동부는 지금 당장 개정 안전보건규칙을 공표해야 한다. 모든 사업장에 적용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 책임 조항, 체감온도 기준에 따른 강제적 휴식시간을 명시해야 한다. 온·습도 측정과 게시 의무를 부과하고, 노동자의 생명을 규제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노동자는 매일 땀과 고통으로 생명을 지탱한다. 규제개혁위의 방해와 노동부의 무책임을 받아들일 수 없다.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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