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6-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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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통상임금사건의 최종 승소판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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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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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별사건을 꺼내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12·3 내란사태 이후 불안하고 심란한 날들이었다. 6·3 대통령선거로 내란정권에 마침표를 찍게 되면서 조금은 숨을 내쉬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노동사건은 내란사태에도 변함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상담은 끊임이 없고, 오늘도 나는 사용자들을 상대로 한 소장을 제출하고 있다. 그동안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에 관련된 많은 사건이 있었다. 대법원판결을 비롯해서 주목할 만한 법원판결 선고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최근에 선고된 현대제철 통상임금사건 판결이다. 원고 노동자들의 소송대리인으로서 10여년 동안 소송을 진행하고서 확정판결로 최종 승소한 것이니 소감이 없을 수 없다.
2. 6월1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판결이 나왔다. 인천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던 것은 2013년 4월22일이었다. 그때로부터 12년이 지나서 마침내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소장을 제출할 때는 원고 조합원들도 나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해당성을 두고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로 등장하면서 한국지엠, 기아 등 여러 사업장에서 통상임금소송을 제기했거나 추진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제철에서도 노동조합이 통상임금소송을 기획해서 인천공장과 포항공장에서 근무하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소송 참여자를 모집했고, 나는 원고 조합원들의 소송대리인으로서 사용자 현대제철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당초 소장에는 변동분까지 포함하는 정기상여금 전액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여 미지급된 연장, 야간, 휴일 근로수당 등 각종 법정수당 등 임금 및 퇴직금을 청구했었다. 소장을 제출할 때만 해도 정기상여금이 재직 중인 자에 한하여 지급하는지, 15일 등 일정근무일수 이상을 근무해야 지급하는지, 변동분을 제외하고 고정분에 한정해야 하는 것인지 등 이러한 지급기준에 따라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여부가 법원에서 달리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12년여가 지나고서 돌아보니 정말 예상하지 못하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 첫 번째 일이 일어난 것은 2013년 말이었다. 2013년 12월18일, 대법원은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전원합의체판결을 선고했다. 갑을오토텍 주식회사를 상대로 해서 노동자들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해서 각종 법정수당 등 미지급 임금을 청구한 사건이었는데, 대법원전원합의체재판에서 원고 노동자들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나는 정기상여금은 소정근로에 대하여 지급하는 임금이라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대법정에서 구술변론까지 했었다. 이 갑을오토텍사건에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판결을 통하여 통상임금 판단기준에 관한 판례 법리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내 주장처럼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대가 임금이라고 대법원은 판단하면서도,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이라는 개념징표를 가지고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살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인데, 졸지에 소정근로의 대가로 파악되어야 할 통상임금은 개념징표에 의해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개념징표 중 특히 문제는 고정성이었다. 재직자에 한하여 지급하는 재직자조건의 상여금, 15일 등 일정일수 이상을 근무해야 지급하는 일정근무일수조건의 상여금 등은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많은 사업장에서 정기상여금을 사용자들이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으면서 크게 논란이 됐다. 갑을오토텍사건에 대한 대법원전원합의체판결이 나온 직후, 현대제철에서도 고정성을 내세워 사측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현장이 많이 소란했다. 지급일 이전 2개월 동안 지급한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지급하는 현대제철의 정기상여금은 연장, 야간, 휴일 근로수당 등 변동분의 임금까지 포함하고 있어 고정성을 결여했다는 것이 사측 주장이었던 것인데, 이런 사측 주장에 넘어가 일부 조합원들이 통상임금소송을 취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고들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적어도 정기상여금 중 고정분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노동조합에 전달했다. 이에 따라 소송은 취하되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아찔한 순간이었다.
인천지방법원에서 1심 판결이 선고된 것은 2018년 10월25일이었다. 소장이 제출된 지 5년 반이 지나서였다. 원·피고 간 주장 공방으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 청구금액 계산 때문이었다. 원고별로 급여자료를 피고로부터 받아내서 원고 개개인의 청구금액을 산정해서 청구해야 했던 것인데, 사측의 검증과 오류사항의 수정 등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재판의 결과, 판결은 예상대로 정기상여금 중 고정분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인정하여 미지급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3. 그리고,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판결이 선고된 것은 이 1심판결 선고로부터 3년이 조금 지난 2022년 1월22일이었고, 대법원에서 3심판결이 선고된 것은 2심판결이 선고되고서 2년이 지난 2024년 1월25일이었다. 이렇게 오랜기간 재판이 진행되면서 통상임금에 관한 노사합의가 있었다. 그 합의에 따라 많은 조합원들이 소송을 취하했다. 이러한 일은 현대제철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많은 사업장에서 노사합의와 이에 따라 대대적으로 소취하했다. 특히 같은 현대차그룹 소속인 기아 등에서 했던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노동조합은 노사합의에 앞서 그 내용에 관하여 원고 소송대리인의 검토 의견을 구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노사합의에 따라 소취하한 원고들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을 대리해서 소송을 계속해야 했다. 노사합의를 둘러싸고 노동조합 내부의 정파적 논란은 그대로 원고들 소송대리인에게 전해졌다. 그때마다 불똥이 튀기지 않도록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노사합의 후 선고된 법원 판결에서 노사합의에 따라 지급받은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인정하게 되면, 현장에서 다시 한번 노사합의를 둘러싸고서 시끄러워진다. 현대제철뿐만 아니라, 기아, 현대트렌시스 등 내가 대리했던 많은 사업장에서 그랬다. 어떤 때는 그 불똥이 소송대리인에게도 튀기도 한다. 왜 노조가 추진하는 노사합의에 강하게 반대 의견을 밝히지 않았느냐고, 강력히 반대의견을 밝혔더라면 자신들이 노사합의에 따라 취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원망하는 말을 듣기도 한다. 여기서 한마디 해야겠다. 원고소송대리인으로서 노조가 노사합의를 추진하는 것 자체를 강하게 반대하기는 어렵다고 말이다. 노조가 노사합의하기 전에 그 내용을 검토해달라고 요구하거나 노사합의한 내용을 검토해달라고 요구하면 나는 당연히 법적으로 그 시시비비를 밝힐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중간에 소가 취하되면, 당장 원고소송대리인으로서는 성공보수 등 변호사선임료를 받아내는 일도 큰일이다. 확정판결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면 사건위임예약서에 정해진 보수를 받으면 되는데 말이다. 현대제철에서도 그러했다.
4. 2024년 1월25일에 선고된 대법원판결은 일부 원고들에 대해서는 상고를 기각해서 확정되었지만, 일부 원고들에 대해서는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평균임금 산정에 연차휴가수당을 포함해서 미지급 중간정산 퇴직금을 청구해서 항소심 서울고등법원에서 인정받았던 것인데, 대법원이 이를 제외해야 한다며 그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하게 됐다. 이에 대하여 지난 6월1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원고 승소판결을 선고했던 것이다. 이로써 장장 12년 넘게 진행해 온 현대제철 통상임금사건이 마무리된 것이다. 하지만, 이상은 어디까지나 1차 통상임금사건에 대한 것이다. 1차사건에서 청구하지 않은 후속기간에 대한 청구는 2, 3차 등으로 추가 소송을 제기해서 진행 중에 있다. 후속사건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주휴수당소송 등 앞으로도 현대제철 노동자들의 임금권리를 위한 주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 지난 10여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나는 노동자의 대리인으로서 법정안팎에서 그 주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5. 이상과 같이 현대제철 통상임금사건의 최종 승소판결에 대한 소감을 쓰고 있자니, 미국의 이란 공습 등 전쟁 소식과 아직 심판하지 못한 내란세력의 계속되는 준동에 내가 한가하게 끄적이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12·3 내란사태로 내란세력을 진압해서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으로 바로 세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21대 대통령선거로 이재명 정부의 출범으로 이제는 노동을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내란세력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고 타협하고 협력해서 엉거추춤 멈출까’ 불안하고 심란하다. 그럼에도 이제는 다시 나는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말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꾹꾹 눌러 쓰고 있다.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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