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6-24 10:06
|
미국의 이란공습, 세계사적 의의와 한국의 진로
|
|
|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349
|
미국이 기어이 이란을 폭격했다. 팔레스타인의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가자전쟁이 헤즈볼라, 시리아, 이라크 등의 이란 프록시(proxy) 조직들에 대한 전쟁으로 확대되더니 이제는 미국이 직접 이란의 핵시설을 공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유엔헌장 제51조에서 규정하는 자위권의 발동을 말하지만 이 조항은 자위권의 발동 조건을 명백하게 무력공격을 당했을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예방전쟁'에 해당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미국의 피트 헤그세스 장관의 브리핑을 보면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증거나 근거는, 적어도 미국측이 그것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말 그대로 '의혹'만으로 (초)강대국이 주권국가를 공습하는 초유의 사태가 다시 벌어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번 이란 공습을 두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떠올린 건 이런 맥락이다. 나토(NATO) 동진과 우크라이나의 이탈이 서방에 의한 러시아의 체제전복 시도라는 '의혹'을 내세우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과 동일한 논리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 '반복'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란 무엇일까. 헤겔은 세계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은 여러 차례 반복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우연적인 사건으로 보이던 것도 반복을 통해 비로소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기에 나폴레옹은 두 차례에 걸쳐 패배해야 했고, 부르봉 왕조도 두 번이나 폐지되어야 했다. 이번 '반복'은 우리에게 미국 자유주의적 헤게모니의 한 시기가 끝났다는 걸 보여준다.
1991년 소련 패망 이후 2001년 9·11 테러를 기점으로 본격화됐던 미국의 자유주의적 헤게모니는 2020~2021년의 이라크·아프간 철수를 통해 그 한 시기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 시기 미국은 단일패권의 주도자로서 주변부에 자유주의적 제도를 강제하고자 했다. 30년에 걸친 미국의 자유주의적 헤게모니가 쇠퇴하자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화되면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복수의 강대국들이 지배하는 세력권으로 분열하고 있다. 이번 이란 공습은 미국 스스로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며 지역 내의 세력균형을 위해 개입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 단일패권자로서의 역할을 거두고 19세기 영국이 그러했던 것과 같은 세력균형의 조정자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앞선 칼럼에서는 이런 변화를 두고 '21세기는 19세기의 고차원적 재현'이라 표현했다. 19세기 제국주의가 자급자족적 경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력권을 형성하려 했다면 반대로 21세기 지역적 자본주의는 세력권에 기초해서 형성된다. 여기서는 안보와 경제가 일치된다. 즉, 과거 냉전기에 안보와 경제 중 안보를 중시하는 ‘안보>경제’의 관계가 나타났다면, 탈냉전기에는 ‘안보<경제’가, 그리고 현재에는 ‘안보=경제’가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세계전략은 겉보기에는 경제적 이해만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안보적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린란드 병합 시도는 사실상 독점에 가까운 중국의 희토류(rare earth) 생산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희토류는 첨단 무기, 전기차, AI칩 등에 필수적이다. F-35에는 약 260킬로그램의 희토류가 필요하고 핵잠수함에는 4천200킬로그램이 필요하다. 이 중요한 희토류 생산의 약 70%를 중국이 담당하고 있기에 대중견제를 위해서라도 그린란드가 필요하다. 이처럼 그린란드를 장악하고 러시아를 끌어들여 북극해를 개발하고, 이란 핵합의를 통해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중동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꾀하는 트럼프의 세계전략에는 대중견제라는 안보적 목적이 결합돼 있다. 현재의 난맥상은 독자적 세력권을 형성하려는 지역패권국가들과의 세력균형을 모색하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탈냉전기 30년 동안 한국은 대북견제를 이유로 미국의 세계전략에의 참여에 소극적이었다. 미국의 후퇴로 생기는 공백을 유럽과 일본의 재무장으로 채워야 하는 상황이지만 한국은 여전히 '고립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좌파들이라도 먼저 ‘생존’을 기치로 내걸고 역내질서 재편을 고민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우리는 왜 대통령만 바라보았는가> 손민석 작가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