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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6-30 10:22
북아일랜드의 오늘을 보여주는 ‘힙한’ 힙합 영화 <니캡>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14  
<니캡>은 북아일랜드의 음악 영화다. 아일랜드 음악 영화라고 해서 <원스> 같은 잔잔한 영화를 연상했다면, ‘경기도 오산’ 되시겠다. 분위기가 완전 딴판이다. 일단 장르가 힙합이니 비트부터 다르고, 배경이 북아일랜드라 정치적 긴장이 상존하는 데다, 힙합을 아일랜드어로 하니 독특한 소수자성이 발생한다.

‘니캡’은 2017년 결성된 실제 힙합 그룹이다. 영어와 아일랜드어를 섞어서, 북아일랜드의 현실을 담은 랩을 한다. 힙합이 원래 흑인들의 저항을 담은 장르였음을 상기한다면, 본질에 부합한다고 하겠다. 2025년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마거릿 대처에 대한 조롱과 ‘팔레스타인 해방, 이스라엘 반대’를 외쳐 코첼라쪽에서 ‘니캡’의 라이브 영상을 내렸다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니캡>은 극 영화지만, 실제 뮤지션들이 직접 배우로 출연해 자신들의 음악을 직접 들려준다. 음악 영화로도, 저항 정신을 담은 극 영화로도 재미와 활력이 뛰어나다.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1. 북아일랜드의 휴전세대

영화는 시작과 더불어 “벨파스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전부 이렇게 시작하지”라는 대사와 함께 시가지 폭탄 테러를 보여준다. 그러고는 분위기를 싹 바꿔서, <니캡>이 전혀 다른 영화임을 강조한다. 지금 벨파스트는 폭탄 테러가 일어나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벨파스트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에게 역사는 생물학이 되었노라 말한다. 즉 과거의 폭탄 테러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유전자에 손상을 주어, 주의력 결핍 장애(ADHD)가 됐다고.

그래서 그들은 의사한테 가서 약을 탄다. 향정신성의약품이다. 그 외에도 두루 약을 접한다. 엑스터시, 케_타민, 마약 등등. ‘휴전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폭탄 테러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줄어들었을 뿐, 경찰의 공권력을 피해 다니기는 마찬가지라고 심드렁하게 말한다. 영화는 북아일랜드의 과거 이미지만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오늘이 어떤 모습인지 선명하게 알려준다.

이쯤에서 북아일랜드가 어떤 곳인지 짚어보자.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가 20세기에 치열한 독립전쟁을 거쳐 아일랜드 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때 영국계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던 북아일랜드 6개 주는 영국 땅으로 남게 됐다. 미완의 독립이자, 분단이었다.

식민지적 차별에 대한 불만이 터지면서 1972년부터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IRA(아일랜드 공화국군)를 중심으로 무장투쟁이 이어졌다. 1981년에는 영국 경찰에 구금된 수감자들이 정치범으로 인정해달라고 단식투쟁을 벌여 바비 샌즈 등 10여명이 아사했다(영화 <헝거>). 당시 30년간 희생자가 3천700명에 이른다. 이런 상황이 1998년 벨파스트 협정으로 종식된다. 협정의 골자는 북아일랜드를 영국령으로 인정하되, 영국 정부는 북아일랜드의 자치를 허용하고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물리적 국경은 없앤다는 것이다.

북아일랜드에는 190만명이 살고 있는데, 영국계 개신교 주민(왕당파·연방주의자)과 토착 아일랜드 가톨릭 주민(공화파·분리주의자)이 공존하고 있다. 두 집단의 갈등을 영국계들은 신·구교간 ‘종교분쟁’이라 하고, 아일랜드계는 ‘탈식민지 항쟁’으로 본다. 아일랜드계 주민들은 ‘북아일랜드’라는 명칭도 싫어한다. 그냥 ‘6개 주’라고 부른다. 내전 같은 30년을 보낸 두 집단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2007년 세인트앤드루스 협정으로 공동자치정부를 구성하게 됐다. 이로써 북아일랜드 분리독립 투쟁은 종료됐다. IRA도 2005년에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하지만 과격 독립주의자의 테러는 간간이 일어나고 있었다.

2. 브렉시트와 아일랜드어라는 뇌관

근근이 유지되던 평화가 2016년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영국은 유럽연합(EU)을 탈퇴하지만, 아일랜드는 EU 회원국이다. 만약 북아일랜드도 EU를 탈퇴하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는 그때까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국경과 통관 문제가 발생한다. 벨파스트 협정 위반이다. 그렇다면 영국과 EU의 경계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까. 고심 끝에 2019년 북아일랜드 의정서에는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들어오는 물품에 통관절차를 밟도록 규정했다. 즉 북아일랜드가 사실상 영국령이 아니라 아일랜드와 함께 EU 회원국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러자 북아일랜드 내 영국계 연방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그때까지 유지되던 양당제 공동정부의 균형이 크게 흔들리면서, 2020년 선거부터 신페인당이 급부상했다. 신페인당은 아일랜드 통일을 내세우는 민족주의 정당으로, IRA의 정치조직으로 출발했다. 현재 북아일랜드의 총리는 신페인당 소속이다.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이 정국 주도권을 잡자, 아일랜드어를 영어와 동등한 공식어로 인정하라는 요구가 높아졌다. 2023년 윈저 프레임워크로 영국 본토와의 통관절차는 완화됐다.

그러나 브렉시트가 북아일랜드의 분리독립 요구에 기폭제가 된 건 분명하다. 신페인당은 10년 이내에 아일랜드와의 통일 문제를 투표에 부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아일랜드 경제가 발전하면서 삶의 질이 북아일랜드를 앞지르고 있다. 영국령으로 남겠다는 북아일랜드 내 여론이 처음으로 절반 아래로 떨어지고, 아일랜드와 통일하자는 여론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3. 예술 청년이 이어 가는 새로운 시대의 저항

<니캡>은 1998년 이후 테러가 잦아든 벨파스트에서 유년기를 보낸 니시와 리암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두 소년이 니시의 아버지에게 아일랜드어를 배우고, 가톨릭 성당을 다니고, 지금은 백수 청년이 돼 술과 약에 찌들어 클럽을 드나든다. IRA의 공식 해체를 상징하듯, 니시의 아버지가 ‘공식적으로는 죽은’ 과거 IRA 요원으로 등장한다. 그가 <헝거>에서 바비 샌즈 역할을 맡았던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인 것도 절묘하다.

영화는 이들이 우연히 아일랜드어 힙합 그룹을 결성해 뮤지션으로 인기를 얻고, 얼떨결에 아일랜드 민족 저항의 중핵으로 떠오르는 과정을 발랄하게 보여준다. 라디오 선곡에서 금지되면서 ‘검열’이라는 ‘어그로’가 제대로 끌려서 공연이 미어터지는데, 실제로 종종 벌어지는 아이러니다. 급진 공화주의 단체(RRAD)가 마약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니캡’이 그 위선을 까발리는 모습도 풍자적이다. 니캡은 “점령된 6개 주” 투어 공연을 이어 간다. IRA의 시대는 갔지만, 힙합 하는 예술 청년이 유튜브 시대의 세계인과 호흡하며,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저항을 이어 간다는 것이 21세기의 정신에 걸맞다.

영화는 2022년 아일랜드어 법안을 둘러싼 갈등을 주요 배경으로 삼는다. 법안은 결국 통과됐다. 현재 아일랜드어 사용자는 8만명이고, 북아일랜드에는 6천명이 산다. 40일마다 토착어가 하나씩 소멸하고 있지만, 민족어를 보존해야 한다는 절박함만으로는 모국어를 지킬 수 없다. 성스러운 모국어를 더럽힌다고 비난받던 ‘니캡’이 아일랜드어를 현재화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식민의 역사를 경험한 민족으로서, “모든 아일랜드어 단어는 자유를 위해 쏘는 총알이다”라는 말이 저릿하게 느껴진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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