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이후 집회 주도자에 최고형
법원 “민중집회때 폭력 선동”
민주노총 강력 반발 “민주·인권 짓밟은 판결”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에게 법원이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규모 집회 주최자에게 선고된 가장 무거운 형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심담)는 4일 민중총궐기 등 총 13건의 집회에서 불법행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 위원장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죄 등을 적용해 징역 5년과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일부 시위대가 밧줄로 경찰 버스를 묶어 잡아당기고 경찰이 탄 차량 주유구에 불을 지르려 시도하는 등 민중총궐기 당시 폭력적인 양상이 심각했다. 한 위원장이 불법행위를 선동해 큰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집회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민주노총 쪽에 제한적으로나마 집회에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도 민주노총은 이를 거부했다. (따라서) 경찰이 최종적으로 집회 금지를 통고한 것은 적법하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의 변호인은 “경찰이 민주노총이 신고하는 도심 집회를 원천 금지해 불법 집회가 될 수밖에 없었고, 한 위원장은 집회 현장에 있지 않아 집회 때 발생한 돌발 상황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민주노총이 사다리와 밧줄을 미리 준비하는 등 시위를 준비한 정황이 있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찰의 차벽 설치와 살수차 사용도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적법했다”고 인정했다.
김남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는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 권리가 형사상 범법행위로 간주되는 것 자체가 문제이고, 집회장에서 벌어진 일부 폭력에 대해 집회 주최자라며 책임을 물으면 대규모 집회는 앞으로 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판결은 민주·인권·노동을 짓밟은 판결로 기록될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한상균 위원장은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고 서울 조계사에서 수배생활을 하던 중 12월10일 자진 퇴거해 경찰에 체포됐다. 검찰은 한 위원장이 주도한 불법 집회로 경찰관 116명이 다치고 경찰버스 44대가 파손되는 등 국가에 피해를 입혔다며 한 위원장을 지난 1월 기소했다.
집회의 자유 옥죄고 경찰 차벽·물대포엔 면죄부
“불법폭력 집회 엄벌” 검찰주장 수용
사전차단·폭력진압 ‘적법하다’ 판단
‘최대한 보장’ 집시법 취지 어긋나
사실상 서울 도심 집회자유 차단
법원 “불법행위 직접 지시 안했어도
한 위원장 암묵적 범행 공모”
법원이 4일 이례적으로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한 것은 집회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보다 공공질서를 중시하는 공권력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재판부가 경찰의 물대포 사용의 위법성 등을 일부 인정했음에도 폭력시위의 책임을 민주노총 지도부에게만 물은 것에 대해서는 균형을 잃은 판단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판부는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면 교통이 마비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경찰의 민중총궐기 집회 금지 통고가 적법하다고 보았다. “민주노총이 예상한 참가자 수 3만명은 주변 차로에 심각한 교통장애를 초래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경찰의 물대포 사용과 차벽 설치 역시 적법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경찰이 쏜 직사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씨 사고와 관련해 물대포 사용의 위법성은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일부 시위진압 행위가 위법하다고 해 경찰의 살수차(물대포) 운용에 관한 공무집행 전체가 위법하게 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시민들이 차벽을 끌어내는 행위 등이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개최의 권리를 지키고 경찰의 위법행위에 저항하는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평화적인 시위만이 헌법에 규정된 집회의 자유로 보호된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집회에서 벌어진 불법행위들을 한상균 위원장이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범죄가 파생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데도 합리적 조처를 취하지 않아 실제로 예상했던 범행이 발생했다면 암묵적인 범행공모가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며 한 위원장에게 집회장에서 벌어진 폭력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특히 경찰이 집회 개최 전에 시위대의 행진 시간과 행진로 등에 대해 일부 협조할 뜻을 밝혔음에도 지도부가 이를 거부한 것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면,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가 서울과 같은 대규모 도심에서는 원천 차단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위원장 쪽은 재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광화문 미사 때도 광화문 일대 교통이 마비되었지만 경찰은 이를 허가했다.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집회를 금지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평화적인 시위만이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재판부의 논리 역시 비판이 제기된다. 집회가 폭력성을 띠는 건, 원천봉쇄와 차벽 설치 등 경찰의 강경대응 또한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윤성봉 변호사는 “집회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에 집회 금지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 최대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게 헌법의 취지”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찰이 한 위원장의 형량을 높이기 위해 그가 주도한 집회를 탈탈 털다시피 수사해 적용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검찰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방해 등 6건의 혐의를 적용했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 말고도 2012~2013년 평택 송전탑 점거농성, 2014년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추모집회 등 모두 13건이 병합됐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는 형량이 2~4년이지만, 반복적인 범행인 경우 형이 가중돼 3~6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검찰의 노림수가 이번 판결에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이날 선고로 한 위원장은 가장 긴 옥살이를 하는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2001년 정리해고제 도입 등 노동법 개정에 반발해 시위를 벌인 혐의로 재판을 받은 단병호 전 위원장은 2003년 1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최종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를 주도해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석행 전 위원장은 2014년 6월 서울중앙지법 파기환송심에서 최종 벌금 500만원 형이 확정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