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12-09 14:04
[다시 고개 드는 후선역·C플레이어] 노동부 '음성적 퇴출프로그램' 제도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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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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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개 드는 후선역·C플레이어] 노동부 '음성적 퇴출프로그램' 제도화하나
저성과자 인사조치 기준·절차 마련 … 취업규칙, 사용자 마음대로?
성과가 낮은 노동자를 전환배치하거나 해고할 수 있게 취업규칙을 바꾸는 것이 과반수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불이익 변경'에 해당할까. 정부가 취업규칙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근 "취업규칙을 사회적 통념에 맞게 바꾸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취업규칙 개정과 관련한 논란이 일고 있다. "법·제도를 바꾸지 않고도 실질적으로 해고를 쉽게 만들려 한다"는 비판과 "부당해고 논란의 여지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해명이 엇갈린다.
'저성과자' 규정 활용에 노동자 추풍낙엽
노동계와 학계는 취업규칙을 손보려는 노동부의 의도를 떠나 악용 여지가 크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7일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노조활동을 하거나 회사에 바른말을 자주하는 근로자들에 대해 보복징계를 하면서 성과부진자로 조작하는 식으로 악용될 수 있고, 근로자들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권리를 차단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기업에서 인사규정을 통해 저성과자들을 전환배치·해고하거나, 퇴출을 위한 부서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금융권의 경우 97년 외환위기 이후 성과가 낮은 직원들을 업무 후선에 배치하는 후선역 혹은 후선보임 제도가 우후죽순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되풀이하는 실정이다. 후선업무를 보게 된 노동자들은 간혹 원직으로 복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모욕감을 못 이겨 스스로 그만두거나 해고 대상에 오른다.
KB국민은행은 2011년 초 희망퇴직 규모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200명 이상을 성과향상 추진본부로 발령한 뒤 ‘영업할당-복귀 또는 해고’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시행했다가 노사갈등 끝에 폐지했다. 한 시중은행도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10여년 전에 없어졌던 후선역 부활을 언급하면서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MB정부 초기에는 서울시를 시작으로 공직사회에서 퇴출프로그램을 광범위하게 운영해 분란을 일으켰다.
음성적으로 은밀하게 시행되던 퇴출제도가 양지로 나올 개연성도 높다. KT의 퇴출제도가 대표적이다. KT는 특정 노동자를 퇴출대상자로 정해 놓은 뒤 영업직에서 기술직으로 발령하면서 업무부진 등 명목상의 해고사유를 만들었다. 이른바 'C-플레이어'로 불리는 부진인력 퇴출프로그램이다. 올해 4월 대법원은 KT에 퇴출프로그램 피해자가 당한 피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잣대 느슨해져”
이처럼 노사합의 없이도 사측이 퇴출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마당에 취업규칙에 저성과자에 대한 조치를 명문화하면 사업주들은 날개를 달게 된다. 문제는 퇴출프로그램 신설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느냐다. 당연히 동의를 받아야 할 사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용자들이 일방적으로 개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성과부진자에 대한 전환배치나 해고를 불이익 변경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취업규칙 변경이 사회적 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동의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고 판시해 왔다. 예컨대 퇴직금 누진제도를 없애면서 노동시간단축과 임금인상을 동시에 실시한 경우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고 본 판례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부가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게 되면 법원 판결에 영향을 줄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노동부가 사회적 통념을 언급하면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정책을 내게 되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느슨하게 만들어 사용자의 일방통행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부 “부당해고 논란 줄이자는 것”
노동부는 이기권 장관의 취업규칙 관련 발언에 대해 "해고요건 완화와 거리가 멀다"고 해명했다. 이 장관이 지난 4일 노동시장구조개선 관련 토론회에서 언급한 내용은 고용유지와 관련돼 있다는 주장이다. 당시 이 장관은 “저성과자들을 직업훈련·전환배치 등을 통해 적합한 일을 찾아 주고, 이런 노력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직급 등 근로조건 조정을 통한 고용유지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회를 줘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해고가 가능하고, 이를 위해 절차를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혁태 근로개선정책관은 “명확한 기준이나 절차에 따르기보다는 노사 간 힘의 논리에 영향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노사가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사회적 통념에 맞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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