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14 07:46
[건설재해자의 딸들 ①] 늦둥이 딸의 눈물 “소중한 생명, 산재현장은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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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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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우종합건설 고 문유식씨 비계 추락사 … 현장소장 1심 실형에 ‘피해자 책임 전가’ 주장
혜연씨(34)씨는 늦둥이 딸이었다. 위로 9살 터울의 오빠가 있어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아버지 문유식씨(사망 당시 72세)는 평소 무뚝뚝했지만, 딸을 향한 눈빛에는 ‘꿀’이 뚝뚝 떨어졌다. 혜연씨는 아버지가 평소 식사를 할 때도 딸을 한참 쳐다봤다고 기억한다. “아버지는 공사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도 단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그날이 있기 전까지 일상은 평범했다.
지난해 1월22일 간호사인 혜연씨는 휴무일이라 늦잠을 자는 중이었다. 일용직 건설노동자였던 아버지 문씨는 이날도 새벽 일찍 현장에 나갔다. 그런데 어머니가 정오께 산책하다가 들어오면서 눈물이 범벅된 표정으로 혜연씨에게 “아빠 많이 다쳤대. 전화 좀 받아봐”라며 휴대전화를 건넸다. 119 구급대원에게 아버지 상태를 묻고는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서울 마포구 공사현장에서 추락한 문씨는 외상성 뇌손상을 입고 서울 중구의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송 중이었다. 혜연씨가 병원에 갔을 때 아버지는 의식이 없었다. 문씨는 일주일간 생사를 헤매다 1월29일 끝내 숨을 거뒀다. 머리 부위의 둔력 손상이 직접적인 사인이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던 혜연씨는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경찰과 노동청에 자료를 샅샅이 요청했다.
안전모·안전대 없이 작업, 노동청은 ‘법 위반 아냐’
30년 경력 베테랑 미장공 문씨는 부산 소재의 상시근로자 11명인 ‘인우종합건설’에서 2023년 9월부터 일했다. 사고 당시에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근린생활시설 신축공사(공사금액 약 20억원)에 투입돼 미장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2023년 1월 공사가 시작돼 이미 90% 이상 공정이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사고 당일 문씨는 건물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참에서 약 1미터 88센티미터 높이의 이동식 비계에 올라가 미장 보수 작업을 하다가 추락했다. ‘쿵’ 소리를 들은 동료 작업자 김아무개씨가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문씨는 안전모와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동식 비계에는 안전난간도 없었다. 170센티미터 높이의 비계는 6센티미터 높이의 벽돌 3장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었다. 발판 2개와 합판 3장이 작업발판의 전부였다. 동료 김씨와 현장소장 박아무개씨는 비계에 아웃트리거(전도방지용 지지대)가 없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노동청에 냈다. 안전모와 안전대 등 보호구를 지급하도록 정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 위반될 소지가 컸다. 하지만 노동청은 최초 조사시 비계 높이가 안전보건규칙의 2미터 이상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직전, 대표는 ‘면죄부’
더 큰 문제는 부실한 수사 자료였다. 혜연씨가 받아 본 사고 관련 서류는 △중대(산업)재해 발생 현장 조사 보고서 △산업재해 조사표 △검찰 공소장에 불과했다. 안전보건공단의 재해조사의견서는 작성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혜연씨는 “노동부에서 아예 의견서 자체를 의뢰하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나마 지난해 10월 서울서부지검이 현장소장 박씨를 기소하면서 작성한 공소장을 통해 사고개요와 의무 위반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소장 박씨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모 지급과 안전난간 설치 등 안전조치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건설사 대표는 처벌을 면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50명 미만 사업장(건설공사금액 50억원)으로 확대 적용되기 5일 전에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이다. 혜연씨는 “아버지가 일주일을 버티셔서 회사 대표가 기소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고 시점으로 봐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1심 재판이 열리는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연일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다른 산재 유족들이 함께하는 기자회견도 수차례 열었다. 2019년 경동건설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한 고 정순규씨 아들 정석채씨의 도움이 컸다. 현장소장의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전단을 돌렸고, 1만6천명이 넘는 시민들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징역 1년 구속 현장소장 “작업중지 지시 무시해”
그 결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는 이례적인 ‘실형’이 선고됐다. 1심은 현장소장 박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인우종합건설 법인에는 벌금 2천만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소규모 건설현장이라는 핑계를 대고, 인우종합건설은 회사의 사정을 이유로 피해자 유족들과 합의하지 못하고 유족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박씨는 결심 공판에서 처음으로 유족에게 인사했다. 재판장에게 고개숙이며 했던 사죄는 받지 못했다. 사고 이후 얼굴을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혜연씨는 “회사가 변호사를 통해 합의금 액수를 말했고, 법원에서 합의 의사가 있는지를 들은 게 전부였다”고 분개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1심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던 현장소장은 구속되자 항소심에서 피해자 문씨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시작했다. 박씨측은 “문씨가 현장소장의 작업중지 지시를 무시한 채 작업했다”고 주장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미장 작업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문씨가 ‘평소 술을 자주 마셨고 안전모는 작업자가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당연히 지급되는 회사가 납부한 산재 보험금도 지급이 ‘결정’됐다고 했다. 박씨측은 2심에 이르러서야 3천만원의 형사 공탁을 했다.
2심 선고 앞두고 수천 명 탄원 “반드시 발자취 남길 것”
혜연씨는 “김용균재단의 유가족 안내서를 보면서 피해자 탓을 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며 “아버지도 그냥 수천 가지의 사건 중 하나였다”고 허탈해했다. 유족쪽 법률대리인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음주했을 가능성만 막연히 지적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는 2차 가해”라며 “피해자와 동료 직원들에게 영하 10도라서 돌아가라고 지시한 것도 근거가 없는 것은 물론, 작업하지 말라고 지시한 게 사실이더라도 건물 규모가 지상 5층에 연면적 합계 257평에 불과해 피해자가 작업하고 있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2심 선고는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검찰은 박씨에게 1심과 같은 징역 1년6개월을, 인우종합건설에는 벌금 2천만원을 구형했다. 2심에서도 1만609명이 탄원서에 서명했다. 혜연씨는 어버이날인 이달 8일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제는 아버지 사건이 아닌 ‘건설산재 엄중 처벌’을 외칠 생각이다. 혜연씨는 생명이 소중한 것을 외면하기 때문에 산재가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아버지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안전모 줬는데 자신이 안 썼겠지’ 등 현실을 모르는 글이 많았어요. 안전모와 추락방지망만 설치돼도 건설현장에서 죽는 현실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한번에 바뀌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의 산재 현실에 반드시 발자취를 남기고 싶습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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