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2-20 09:03
[지금 이미 과로 ①] 노동시간 개별 동의? 현실은 가당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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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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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반도체특별법 논의에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적용 예외에 선을 그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기업 발전과 노동권 보호는 양자택일 관계가 아니다”고 썼다. 그러면서도 “노동총량은 유지하되 유연한 근로시간 조정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노동시간 연장이 아닌 노동시간 유연화 논의는 여전히 열어 놨다.
그의 언명을 종합하면 노동시간 연장 내지 유연화에도 적절한 조건만 부가하면 문제될 것이 없지 않느냐는 입장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근로자의 ‘본인 동의 여부’를 중요한 명분 중 하나로 강조했다. 그러나 평범한 노동자가 하루하루 보내는 일터에서 ‘본인 동의’라는 말이 과연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 53조에 규정된 기본적인 연장근로가 현장에서 어떻게 실시되고 있는지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연장근로는 근로기준법 조문에 ‘당사자 간 합의’가 있어야만 12시간 한도로 실시할 수 있다고 명확히 규정돼 있다. 그런데 근로자의 합의 여부는 개별적인 연장근로를 지시할 때마다 확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법원은 근로계약서를 쓸 때 근로자와 사용자가 포괄적으로 미래의 모든 연장근로에 대해 미리 ‘합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즉, 근로계약서에 ‘회사의 연장근로 지시에 따르겠다’ ‘연장근로의 구체적 시간과 장소는 회사에 일임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가도 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법이 보장한 연장근로 동의 권한을 근로계약서를 통해 근로자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특정한 일자리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노동자가, 구직 성사 마지막 단계에서 근로계약서의 ‘연장근로 의무’ 조항을 빼자고 사용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현실에서 가능한가.
그 결과 연장근로가 자주 이뤄지는 기업들에서는 ‘사전적, 포괄적 연장근로의 합의’를 담은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 단체협약이 난무한다. 노동조합이 강한 경우, 개별 근로자들이 원하지 않으면 연장근로에서 빠지는 것이 현실에서 가능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연장근로는 평소 근무시간(소정근로)과 꼭 마찬가지로 의무 노동시간이다. 연장근로를 원치 않으면, 불가피한 개인 사정이나 질병·부상 등 사유를 읍소해 사용자나 관리자에게 ‘열외’를 허가받아야 한다.
근로기준법 53조3항에 따르면 “상시 3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자”는 1주에 8시간의 추가 연장근로를 “근로자대표와의 서면으로 합의”해 실시할 수 있다. 근로자대표는 추가 연장근로 외에 선택적 근로시간제나 탄력적근로시간제, 재량근로시간제 등 다양한 근로시간 제도에서 동의의 주체로 등장한다. 그러나 근로자대표 역시 많은 사업장에서 날림으로 정해지기 일쑤다. 많은 근로자들은 자신의 대표가 무슨 권한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용자가 추천한 인물에게 형식적으로 투표한다. 얼마 전 김앤장의 주니어 변호사들조차 재량근로시간제 도입 과정에서 회사가 지정한 대표 후보들에게 사용자 앞에서 기명 투표를 해야 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평범한 노동자들이 겪을 현실에 대해서는 더 길게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주 40시간 제한을 두고 있음에도 우리가 현실에서 ‘주 52시간제’라는 말을 더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는 것은, 이런 현실을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개인이 노동시간을 진정한 의미에서 선택하고 조정할 수 있다면, 연장근로를 하지 않더라도 고용과 소득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사회라면, 노동자들의 삶은 지금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노동자들이 소망해 온 한국 사회의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재명 대표의 언행에서 겹쳐 보이는 것은 ‘그런 식으로 하면 기업 못 한다’고 법정에서 언성을 높이던 사용자측 변호사의 모습이다. 대권을 목전에 뒀다는 그는, 이제 누구 편에 서려 하는가.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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