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2-20 09:04
[지금 이미 과로 ②] 현행법, 연구자 ‘주 52시간’ 넘겨도 책임 안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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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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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특별법 토론회를 다시 봤다. 도입요구쪽의 첫 발언은 이렇다. ‘기술개발의 중심에 연구자가 있다. 그런데 연구자들 어느 순간 시간의 기준으로 일을 하게 됐다. 제가 보기에는 시간을 기준으로 연구개발을 할 때 성과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3가지가 이상하다.
첫째 인력 관리, 인재 보호, 기술유출 방지, 영업비밀 보호의 측면에서 정말 기술개발의 중심에 연구자들이 있다면, 연구자들을 좀 더 아껴야 하는 것 아닌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이상이면 업무시간이 뇌심혈관질환과 정신질환의 발병, 악화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 52시간은 산재인정의 기준이다. 성과만 나면 연구자들에게 뇌심혈관질환과 정신질환이 발병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일까.
둘째 “어느 순간 시간의 기준으로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근로기준법은 1997년에 제정됐고 이때부터 1일 근로시간은 8시간, 1주 근로시간은 44시간을 초과할 수 없었다. 근로기준법 위반 자백일까.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가 안되던 1990년대 노동기준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인가. 오히려 2021년 1월부터 3개월 이내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그리고 적용의 제외)가 시행돼 업종에 상관없이 서면 합의로 주 64시간, 혹은 그 이상 근무할 수 있다.
셋째 “시간을 기준으로 연구개발을 할 때 성과내기 쉽지 않다”고 한다. 동의한다. 나도 쓸 문장이 생각나지 않는 날이 있다. 보통 2~3일 못 자면 그렇다. 전무 말대로 시간을 기준으로 일한다고, 그러니까 근무시간을 늘린다고, 성과가 나지 않는다. 설마 같은 법률을 적용하는데 삼성 노동자가 하이닉스 노동자 보다 무능하고 나태해서 그랬겠는가.
공통적으로 반도체산업 특수성을 말한다. 기시감이 든다. “연구개발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해야 하고, 항상 문제 해결을 해야 하고,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단다. 반도체 연구개발만 그런가. 변호사일도, 아마 경영자도, 정치인도, 축구선수도, 학교급식노동자도 그럴게다. 같은 이유로 IT업계의 많은 노동자들이 이미 과로사, 과로자살 당했다. 크런치 모드를 무슨 성공 사례처럼 소개하는 게 무섭다. TSMC가 박사급 인력을 3교대로 24시간을 돌렸다고 말하는데, 야간교대근무는 국제암연구소가 인정한 1급 발암요인이다. 24시간 대기는 온라인업계와, 고객의 납기(아마도 단축) 요구는 건설업의 공사기간 단축 요구와,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 이구동성으로 “생산과 개발은 구별”해야 한다고 하다. 지금 근로기준법상 생산과 개발은 구별되고 있다. 근로기준법 58조3항은 업무 수행 방법을 근로자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업무를 대통령령에서 정하도록 한다. 시행령은 이를 △신상품 또는 신기술 연구개발 또는 인문사회·자연과학 연구 업무 △정보처리시스템 설계 또는 분석 업무 등으로 정했다. 반도체 기업은 개발자들에게 재량을 주고 서면 합의를 하면 합법적으로 장시간 근무가 가능하다.
그런데 왜 기업은 이를 도입해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을 시키지 않을까. 토론회에 나온 기업 쪽은 ‘근로 이후 연속 11시간 휴식을 지키기가 어려워 도입하지 않았다’ ‘초반 연장근로를 시키면 후반에 연장근로를 시킬 수 없다’ ‘법이 업무수행 수단 및 시간 배분의 구체적 시간 배분을 금지해 준수가 어렵다’ ‘특별연장근로 신규 이후 연장시 기간 및 시간 적정성, 근로자의 적정성 등 요건이 필요해 어렵다’고 한다.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하다. “유연성을 확보하고 개인의 선택권을 더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정하자면서 실제 내용은 총 근로시간을 늘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이유뿐이다. 집중근로 이후에 휴식시간을 11시간은 줘야 퇴근해 밥 먹고 자는 최소한의 생존이 가능하다. 초반에 연장근로를 시키면 후반에 쉬게 해야 유연근로다. 근로시간만 연장하고 근로자에 대한 기존의 경직적 지휘·명령 체계를 유지해 근로자에게 재량·유연성·선택권을 줄 수 없다면 재량근로가 아니다.
특별법 도입 요구쪽은 TSMC 사례를 들어 “성과를 노동계와 합리적으로 공유해 이후 어느 정도는 신뢰관계가 구축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말대로다. 지금 문제는 노동자나 법률이 경직돼 생긴 게 아니다. 성과는 기업과 독재정권과 재벌이, 고통은 사회 모두가 분담했던 과거를 우리는 기억한다. 반도체 기업 경영인들이 떠올릴 수 있는 직업성 암으로 죽어간 전자산업근로자의 이름이 있을지 의문이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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