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2030 여성들은 광장을 메웠고, 바꿨고, 넓혔다. 형형색색의 응원봉 물결과 케이팝이 울려 퍼진 광장은 이전과 다른 축제의 장을 열었다. 다정한 불빛은 탄핵광장을 넘어 남태령 농민집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혜화역 시위,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을 밝혔고 ‘우리’는 확장됐다.
탄핵광장이 열리기 전에도 여성들은 광장에 있었다. 2015년 전후 페미니즘 대중화 흐름 속에서 청년여성들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2018년 미투 운동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혜화역 시위, 지난해 딥페이크 규탄 시위 등 줄곧 광장에 나섰다. 광장에서만이 아니라 일터와 일상 속에서도 크고 작은 젠더폭력과 백래시에 맞서 왔다.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광장에서, 일터에서, 일상에서 ‘싸우는 여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매일노동뉴스>는 이번 탄핵광장에서 ‘응원봉 시민’으로 불린 여성·퀴어를 모아 집담회를 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로 대표되는 반여성 정치를 거부하기 위해 광장에 나왔고, 탄핵 광장 너머 ‘다시 만난 세계’는 단순히 윤석열 퇴진으로 귀결돼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집담회 참석자는 윤석열 정부 임기 내내 여성 의제를 내건 여러 집회에 참여한 박산(가명·30)씨, 조선소 하청노동자와 고공농성 중인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곁에서 함께 투쟁하는 ‘말벌 동지’ 최다한(22)씨, 광장에서 퀴어 정체성을 밝힌 범성애자(젠더에 상관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자)로 정체화한 오민지(가명·25)씨 3명이다. 집담회는 지난달 28일 저녁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진행됐다.
광장에 나갔다, 반여성정치 퇴출하러
박산씨는 지난해 12월3일 밤 이후 “모두가 화낼 때가 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만큼 다수의 연합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후보 시절부터 여성을 지운 윤 대통령 임기 내내 박씨는 여성 폭력·혐오 규탄 시위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다. 그런데 젠더폭력이나 성차별 같은 보편적 문제를 제기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소수’였다. 집회 현장에는 꼭 위협을 가하거나 구호를 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따라붙었다. 박씨는 “아무리 부당하다고 말해도 공감받지 못하니까 약간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던 와중에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서울 도심에 헬기가 뜬 것을 목격했다. 박씨는 “여성혐오로 당선된 대통령이 스스로 내란수괴가 된 상황에서 가장 짓밟힌 여성들이 이 사람을 끌어내리는 데 앞장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30 여성들이 탄핵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데에는 윤석열로 대표되는 반여성정치에 대한 ‘심판’ 의미를 담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 폭력·혐오를 외면하고 여성을 지우려 윤 대통령의 말과 정책에 대한 전면적 거부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이를 ‘거부의식’이라고 명명했다. 신 교수는 “젠더의식과 정치적 민주주의 의식은 같이 가는 경향이 있다”며 “성평등을 삭제하고 인구·가족정책만 편 윤 정부에 대해 (젊은 여성들은) 굉장한 ‘거부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도 “윤석열 정권이 반여성주의를 내걸고 들어섰고, 이후 반여성정책을 꾸준히 추진한 맥락 속에서 여성들이 훨씬 더 크게 위협을 느끼고, 또 싸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라며 “실제로 광장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2015년 페미니즘 대중화 물결 안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운동을 조직한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라도 광주 출신 오민지씨에게 ‘계엄은 곧 학살’을 의미했다. 그날 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 친구들이 다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명이라도 숫자가 늘어나면 시민들이 폭력에 내몰릴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으리란 절박함을 안고 광장에 나갔다. 자신과 비슷한 연령·성별·문화·가치를 공유한 집단이 광장을 메운 것도 젊은 여성들을 더 광장으로 나오게 만드는 유인이 됐다. 최다한씨는 “계엄 이후 바로 나가지는 않았다”며 “광장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살면서 겪은 일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경아 교수는 “일상적 젠더폭력으로 인해 폭력에 상대적으로 더 예민하고, 동일한 문화나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이 다수를 차지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 그래도 만연한 성차별, 대통령이 기름을 부었다
실제로 젊은 여성들은 일터와 일상에서 성차별과 페미니즘 사상검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박씨는 지난해 말 한 법인 면접을 볼 때 ‘페미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숏컷 머리스타일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4년 전 한 연구소 면접에선 ‘남자냐, 여자냐’라는 질문을 받았고, 2년 전 공기업 면접에선 ‘머리 짧은데 사회생활 잘 할 수 있겠냐’라는 말을 들었다.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오씨는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앞두고 머리를 기르고 있다고 했다. ‘짧은 머리 여성은 취업이 어렵다’는 명제는 이미 청년여성들에게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학교에서도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존재했다. 최다한씨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자라서 죽었다’는 외침에 함께하는 내용의 부착물을 교내에 붙였다가 ‘분란을 일으키는’ 학생으로 찍혔다. 최씨는 10대 때부터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여러 곳에서 일을 했는데 일터의 표준은 남성으로 고정돼 있었다. 식품공장에서 일할 때 짧은 휴식시간으로 ‘월경하는 몸’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성 역할에 근거한 업무분장으로 억울할 때도 하루이틀이 아니었다고 한다. 고깃집에서 일할 땐 ‘여성=서빙’ ‘남성=고기 손질’로 정해진 탓에 시급부터 3천원가량 차이가 났고, 주휴수당 유무도 달랐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히 여성들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차별과 혐오의 총량 자체를 키웠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박산씨는 “눈치 보던 사람들도 당당하게 입 밖으로 혐오를 꺼낼 수 있는 신호탄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집게손가락 사태 때 여성의 일자리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다한씨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악플러1 혹은 유저1 수준의 발언이 윤 대통령이라는 마이크를 통해 권위 있는 발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민지씨는 “(여성이나 퀴어에 대한 혐오만이 아니라) 호남 출신에 대한 혐오도 더 거침없어졌다”고 전했다.
인정받은 여성들, 광장과 사회를 바꾼다
일터·일상 속 만연한 성차별과 맞서기 위해 광장에 나온 여성들은 광장의 문화를 바꿨다. 단순히 응원봉과 케이팝이 나타내는 이미지만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대표적인 게 ‘광장식 자기소개’다. 자기소개 내용은 이름, 나이, 사는 곳, 직업만이 아니라 소수자로서 정체성도 포함된다. 범성애자로 정체화한 오씨는 이번 집회 자유발언에서 ‘전라도 광주 출신, 노동자, 청년, 여성, 퀴어, 농민 손녀’로 자신을 소개했다. 하나의 정체성만으로는 스스로를 설명하기 어렵고, 이 모든 정체성의 총합이 비로소 본인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었다고 한다.
불특정 다수가 모인 광장에서 퀴어 정체성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씨도 광장에서 커밍아웃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장 밖 사회’에서는 친구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다가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 이번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에는 다른 동료 퀴어의 커밍아웃이 포함된 광장식 자기소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오씨는 “나(퀴어)도 여기 광장에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고, 다른 이들(퀴어)에게 당신도 안전하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변화는 광장 밖으로도 이어졌다. 전농 시위대 앞 경찰 차벽을 열었던 남태령 대첩이나 전장연의 혜화역 다이인(Die-in) 행동을 비롯해 약자들의 ‘작은’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움직임은 현재진행형이다. 집담회가 이뤄진 지난달 28일에도, 일면식이 없는 최다한씨와 박산씨는 같은 투쟁현장에 있다가 집담회 장소로 이동했다. 지혜복 해임교사 복직을 요구하며 서울시교육청 부지에서 시위를 하다 퇴거불응 등 혐의로 20여명이 무더기로 연행된 날이었다. 지혜복 교사 복직투쟁과 경찰의 무리한 연행에 목소리를 보탰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인정과 힘에 대한 긍정적 확인을 통해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신경아 교수는 “탄핵 부결 당시 기성세대는 좌절한 상황에서 (젊은 여성들이) 집회의 분위기를 바꾸는 모습을 보며 정치적으로 각성한 의식을 가진 여성들로 인정하기 시작했고, 탄핵 가결과 ‘남태령 대첩’을 거쳐 (비로소) 전면적으로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한강진 ‘키세스 군단’을 통해서는 투쟁력과 전투력을 보여줬는데, (외부의 시선뿐만 아니라) 이들 스스로도 사회적 책임감을 깨닫기 시작하고 자신들의 힘에 대한 긍정적 확인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만난 세계’는 ‘성평등 사회’여야
이번 탄핵광장과 지속되는 연대의 경험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사회적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박산씨는 “적어도 제가 이 투쟁에 결합했으니까, 제가 비슷한 고통과 탄압을 받고 있을 때 그 사람들이 와 주겠지라는 기대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최다한씨도 “이번에 우리가 원하는 바를 다 못 이룰 수도 있지만 우리가 서로를 지켜줬던 이 경험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주 먼 해방 세상에 도달하는 방법이지 않을까”라며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차별받는 경험 속에 있어도 서로 지켜줬던 그 마음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응원봉 연대의 목소리가 고립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확장되려면 제도권 정치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반영돼야 한다. 그런데 낙관보다 우려가 컸다. ‘나중에’라며 후순위로 밀리거나, 선거국면으로 접어들면 상찬은 사라지고 홀대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오민지씨는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도 (2016~2017년 촛불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퀴어 의제를 ‘나중에’로 미뤘던 사태가 또다시 벌어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다한씨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여러 의제를 내걸고 광장에서 외쳐 왔지만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며 “이번에 응원봉을 든 여성들이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 주류 기성 정치권에 ‘윤석열 탄핵’이 정치적으로 필요한 의제였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탄핵광장 너머 이들이 그리는 ‘다시 만난 세계’의 모습은 비슷했다. 차별과 혐오·배제가 아닌 소수자에게 따뜻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씨는 “법 밖에 있는 퀴어들은, 동성파트너가 어떠한 변고를 당했을 때 재산권은 물론이고 보호자 역할조차 할 수 없다”며 “생활동반자법과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이러한 차별들이 조속히 해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다한씨는 “공통된 소외감을 기반으로 해서 타인의 의제에 무관심한 게 아니라, 같이 무언가할 수 있는 인권감수성이 높은 사회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산씨는 “탄핵 인용 이후 대선 국면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지 비판·감시할 것”이라며 “유권자로서 한 표를 제대로 행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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