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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3-10 08:23
[싸우는 여자들 ①] 연대와 환대의 선순환, ‘말벌 동지’와 조선 하청노동자들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66  
성 중립 숙소·평등수칙 속 ‘차이’ 인정·존중

대학교 휴학생 박수연(24)씨는 12·3 비상계엄 이전까지 자기계발에 몰두해 있었다. 원래 빈 시간이 생기면 책을 읽든,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해 왔던 박씨는 그날 이후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박씨는 “‘갓생(God+인생,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삶)’ 살기 위해 일찍 일어나서 아침부터 공부했는데 요즘은 투쟁사업장 일정이 빼곡하다”고 말했다.

박씨처럼 윤석열 탄핵집회 이후 투쟁 현장 곳곳을 찾아가 농민·장애인·노동자들과 연대하는 2030 여성들은 ‘말벌 동지’라 불리고 있다. 방송 인터뷰 도중 말벌을 잡으려고 쏜살같이 뛰어간 모습이 유명해지면서 생긴 별칭 ‘말벌 아저씨’에서 파생된 말이다. <매일노동뉴스>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지회장 김형수) 파업과 상경투쟁에 지속적인 연대와 끈끈한 동지애를 이어 오고 있는 2030 여성 5명을 인터뷰했다.

‘갓생러’였던 대학생, 계엄 뒤 투쟁현장 매일 ‘출근’

탄핵광장이 열리기 전까지 이들의 공통된 감각은 ‘부채감’이었다. 간호사로 일하다 퇴사한 30대 여성 ‘레어(활동명)’씨는 “박근혜 퇴진집회 때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는 점이 늘 부채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야생맘마먹음이보존협회’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간, ‘맘마 동지’라고 불리는 송아무개씨는 “퀴어퍼레이드 외엔 집회에 나간 경험이 없었다”며 “(비상계엄 직후 나온 ‘저항하라, 금속노조는 선봉에 선다’라는 제목의) 금속노조 성명을 보고 용기를 얻었고, 이제 더 이상 (사회 문제를) 회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광장의 경험이 조선소 하청노동자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진 것은 다소 우연적이었다. ‘말벌 동지’ 가운데 2022년 옛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파업을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지만, 몰랐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만남의 시작은 지회의 초대장이었다. ‘남태령에서 온 소녀’ 등 후원의 물결은 전태일의료센터·전농뿐만 아니라 지회에도 이어졌다. 지회 간부들은 원래 예정돼 있었던 새해맞이 1박2일 행사에 ‘남태령에서 온 소녀가 궁금하다’며 청년여성들을 경남 거제로 초대했다.

만남은 환대의 기억이 됐다. 연대자들이 요청한 성 중립 숙소를 지회 관계자들이 수용해 마련했다. 박수연씨는 “바로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는 기대도 안 했고, ‘다음 기회에 만들어 보겠다’ 정도만 돼도 만족을 했을 것 같은데 진짜 만들어 주셨다”며 “받은 걸 갚기 위해서라도 계속 연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위계·우열 대신 ‘평등’의 연대

새해맞이 행사 이후 일주일 정도가 흐른 뒤 지회 조합원들이 상경하면서 만남은 지속됐다. 지회는 1월7일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시민들과 함께 배 조형물을 공동 제작하는 ‘무지개 조선소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제작 과정은 험난했다.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매서운 한파로 물감이 얼어서 뜨거운 물 혹은 핫팩 등으로 녹이면서 작업을 해야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2030 여성과 ‘조선소 아저씨’들 간 만남의 깊이와 폭은 깊어지고 넓어졌다.

조선소라는 남성성이 강한 조직에서 일하는 ‘50대 아저씨’와 ‘MZ 여성’의 간극은 분명히 존재했다. 성별·연령부터 지역, 하는 일 모든 게 다른 이들은 서로를 ‘OO(이름) 동지’로 부른다. 새해맞이 행사에서 신뢰의 매개가 성중립숙소였다면 무지개 조선소에서는 평등수칙이었다.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작업 공간이 되려면 서로가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레어씨는 “조합원 동지들이 평등수칙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게 보였다”며 “하루하루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보다 오히려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형수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우리랑 차별받는 거는 비슷하네’라고 말하며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성평등 문제 등에 더 크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김 지회장은 “연대는 일방적인 게 아니라 상호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무지개 조선소에서 제작한 ‘연대투쟁호’가 서로를 계속 연결시켜 주는 매개가 될 수 있도록 잘 활용해야 할 것 같다. 퀴어퍼레이드에 함께 이 배를 끌고 나가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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