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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3-10 08:28
[싸우는 여자들 ③] 눈 감을 수 없는 ‘우리 안의 백래시’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69  
광장·노동운동에도 존재하는 여성혐오 … “광장에서 본 작은 변화, 희망 잃지 말아야”

“아무래도 여자들이 많이 오니까 신경쓰는 것 같긴 했는데, 김건희 여사를 여성으로 혐오하는 구호가 터져 나오니까 시위에 더 많은 기대를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윤석열 대통령 탄핵광장의 주인공으로 칭찬받는 2030 여성 박산(가명·30)씨는 거리에서 늘 긍정적인 감정만 느끼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내란으로 나라를 어지럽힌 권력에 대한 비판이 여성·장애인·동물과 연결돼 나올 때, 탄핵광장 이후의 세상을 말하는 여성들의 선언과 다짐이 부정당할 때 회의감을 느꼈다.

광장에 돌 던진다고? 이건 데자뷰다. 여성들은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때도 같은 경험을 했다. “나라 망친 건 계집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 등 행위가 아닌 성별을 향한 비난이 있었다. 정권이 바뀐 뒤 ‘탄핵이 민주주의’라던 구호가 구호일 뿐이라는 것을 체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성혐오는 계속됐으며 민주주의는 일터와 일상으로 완전히 스며들지 않았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도 여성혐오는 잔존했다. 그래도 평등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번 광장 이후는 다를까.

‘실수’라기엔 지나쳤다

12·3 내란사태 이후 국회 앞으로 달려간 여성들은 또 불편해야 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한 발언자들은 일부 참가자들에게 야유와 삿대질을 받았다. 발언을 시작하자 끌어내리라며 소리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윤 대통령 탄핵 이후 만날 세계를 이야기하려던 여성들은 ‘여기서도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광장에서 모든 사람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했다. “쥴리 계엄” “김건희가 술을 먹여 윤석열을 조종했다”는 말이 구호로 만들어졌다. 김 여사가 진짜 유흥업소에서 일했는지와 무관하게, 여성 비하 발언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집회에서의 여성혐오 양상이 재현된 셈이다.

성범죄도 발생했다. 지난달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찬성 집회에서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얼굴이 담긴 딥페이크 영상이 상영됐다. 한 시민은 차량을 이용해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얼굴을 수영복을 입은 인물에 합성해 수차례 재생했다. 해당 영상은 주최측인 윤석열정권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송출 허가를 받지 않았고, 시민의 제보로 현장에서 중단됐다.

‘성차별 광장’은 ‘성차별 세상’의 결과

광장이라서 특별히 이런 일들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광장은 여성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냈고, 목소리가 모여 힘을 얻어 특별히 안전한 순간이 잦았다. 집회에 결합한 수많은 활동가들의 공도 컸다. 권수정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평등하고 안전한 집회를 위해서 수칙을 만들고 동영상을 틀고, 민주노총뿐 아니라 비상행동의 많은 조직들이 굉장히 노력을 하고 있는데 전체가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광장이) 살균 소독한 비닐하우스가 아니지 않나. 민주노총만 해도 조합원이 120만명인데 혐오와 폭력, 위계가 지금도 현장 여기저기서 날마다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혐오와 차별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깊은 단체 중 하나다. 중앙에서는 지속적으로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자고 설득한다. 그런데도 현장의 온도차는 천차만별이다. 언론이 주시하는 대형 사업장의 ‘백래시’ 사례는 여럿 알려졌다.

지난해 금속노조 HD현대중공업지부에서는 “페미들은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받게 하고 약물 처방으로 격리시키면 된다”는 내용을 담은 소식지가 게시됐다. 엘라이(지지자)를 자청했던 언행과도 불협화음을 냈다. 제주 퀴어프라이드에 참가해 “생산과 역사의 주인인 퀴어노동자의 자긍심은 나의 자긍심이며 120만 민주노총, 2천500만 노동자의 자긍심”이라고 한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지역본부장의 발언은 민주노총 기관지인 <노동과세계>에서 수정돼 민주노총과 퀴어를 분리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2023년에는 양대 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이 GAME업계 폐미니즘 사상검증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넥슨 본사 앞에서 진행하자, 화섬식품노조 넥슨지회가 입장문을 내고 “지회와 전혀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내용에 동의할 수도 없었다”며 상급단체 가입을 다시 생각하겠다고 밝히는 일도 있었다. 당시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한 하청업체 노동자가 넥슨의 GAME 홍보영상에 집게손가락을 그려 넣었다고 주장하며 인터넷에 신상을 공개해 모욕했다.

더디지만 계속 두드리는 수밖에

혐오가 오래된 만큼 고민은 성숙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 퇴진광장이 열린 뒤 활동가들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비상행동 활동가들은 상황실 내 행사기획팀을 꾸리고 집회마다 반응을 살펴 다음 집회에 반영했다. 평등수칙을 만들어 집회에서 환기하고, 발언문을 미리 받았다. 광장에서의 발언에 혐오를 담지 말자는 의미를 담아 기존 ‘시민 자유 발언’에 ‘자유’도 뺐다.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집회마다 피드백을 확인하고 단체들 안에서 평가하고, 다시 회의하는 과정들이 2·3중으로 있었고 비상행동 내부에서도 과거에 비해 (백래시에) 상당히 예민해지고 엄격해진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사무처장은 이어 “이번 광장을 통해 서로 더 배우고 익히게 된 것도 있다 생각한다”며 “더디지만 조금씩 바뀌는 노력을 서로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노동계 생각도 다르지 않다. 김민정 금속노조 여성국장은 “노조는 대중 조직이고 내부에 많은 의견이 있어 응원봉 동지들이 바라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한계는 당연하지만, 느리더라도 노조는 토론이 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며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일터에서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작고 소중한 희망’ 봐줬으면

활동가들은 <매일노동뉴스>에 이번 광장에서 각자가 본 희망을 공통적으로 말했다. 이 사무처장은 “발언문을 보냈다가 평등수칙을 보고 ‘이 부분은 적절하지 않으니까 수정해서 다시 보내겠다’고 말했던 시민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권수정 부위원장도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퀴어들이 많아 깜짝 놀랐다”며 “윤 대통령 탄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이 어떤 것인지 많이 이야기됐다”고 말했다.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여성들이 집회에 참석해 대통령이 탄핵된다고 여성혐오가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일터와 일상에서 혐오를 마주하고, 항의와 침묵을 놓고 선택을 고민하는 나날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광장을 밝힌 빛을 끌 수는 없다. 앞으로도 같을 것이라고 포기하기에는 모인 빛이 많았고, 보낸 밤이 길었다.

신혜정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는 여성들이 백래시에 지치지 않길 소망했다. 그는 “(광장의 성평등 감수성에 대한 긍정적이면서 부정적인) 두 개의 평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게 이상하다거나 한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래도 작은 변화와 부족한 점을 함께 읽어 가야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으니까, 그럴 힘이 우리에게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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