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3-10 08:30
[싸우는 여자들 ④] “응원봉 든 손으로 의사봉 들어도 되고,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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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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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
3·8세계여성의 날이었던 지난 8일 오전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광화문 앞에서 주최한 15차 범시민대행진 무대. 장혜영(37·사진) 전 정의당 의원을 포함한 24명의 여성이 무대 앞에 섰다. 마이크를 잡은 그들은 1만2천300명 여성을 대표해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여성 1만인 선언문’을 낭독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광장을, 정치를 바꾸는 여성들이다. 응원봉의 여성정치는 의사봉의 성평등정치로 이어져야 한다. 여성들이여, 단결하라!”
<매일노동뉴스>는 장 전 의원이 1만인 선언을 하기 전인 지난 4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21대 국회에서 성평등 의제 실현을 위해 힘썼던 2030 여성의원이자, 국회가 성평등 의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근거리에서 본 목격자다. 장혜영 전 의원은 “광장의 목소리가 국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내고 직접 정치를 해야 하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필요에 따라 존중되다 지워진 광장 여성
반복 막기 위해 1만인 선언 제안하고 실현”
- 여성 1만인 선언의 최초 제안자 173명 중 하나다. 선언을 제안하게 된 이유는.
“광장의 시간이 끝나고 정치의 시간이 시작될 때, 광장 여성의 목소리가 지워지는 걸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광장의 이름으로 된 선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봤다.”
- 광장의 주역인 여성 목소리가 지워질 것이라고 보나.
“그렇다. 이대로라면 광장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 사라질 것이다. 여성은 서울시 생활인구데이터를 통한 숫자와 응원봉이라는 비주얼 덕분에 빠르게 주목받았다. 광장의 여성은 정치적으로 필요하니까 존중받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정치적으로 필요 없어지면 그 존중을 거둘 것이다. 정치권은 여성을 정치공학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서 존중했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존중을 회수할 것이다.”
- 여성 목소리가 필요 없어지는 시기가 언제인가.
“광장의 시간 뒤에 올 정치의 시간이다. 2022년 대선에서 여성들은 안티페미니즘을 등에 업은 윤석열을 차마 찍지 못해서 페미니즘을 외면하던 이재명을 찍었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상황이 좋지 않다. 진보정당이 사실상 진영으로서 궤멸된 상황이다. 내란세력 심판선거에서 광장의 주역인 여성들이 달리 찍을 후보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2017년 촛불로 당선됐던 문재인 정부 시절의 페미니즘 외면이 재현될 수 있다.
이미 지금도 여성을 지우려는 움직임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여성을 언급하지 않는, 이상하고 불쾌한 장면들이 있다.”
- 이번 광장에서 여성은 ‘촛불 소녀’ ‘유모차 부대’로만 호명됐던 2017년 광장과 달리 분명한 주역으로 호명됐다. 그런데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란 말인가.
“예단하진 않겠다. 이전과 달라진 부분은 분명히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며 자신을 주권자로 선언한다던지, 평등 수칙에 입각해서 광장을 운영한다던지 하는 등이다. 이는 광장을 운영하는 주체와 우리가 만들어 낸 진일보한 성취다.
다만 이 지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성권력의 위계 구조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 여성을 동등한 주체로 보고 연대와 찬사를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권력의 위층에서 내려다보며 기특하다는 식으로 칭찬하는 방식이다. 위에서 내려주는 찬사는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든 회수할 수 있다.”
‘페미니즘 버려야 선거 승리’ 잘못된 제도권 정치 공식
“민주당은 백래시 대응 실패, 국민의힘은 반페미니즘 조직화”
- 문재인·윤석열 정부 시절 제도권 정치에 몸담았던 21대 국회의원으로서, 제도권 정치가 페미니즘을 외면하거나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페미니즘을 버려야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만들어 낸 잘못된 공식이 형성돼 있어서다.”
- 그 잘못된 공식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민주당이 백래시에 대응하지 못하고 페미니즘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실패한 가운데, 국민의힘이 반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조직화해 정치적 이득을 얻어 내면서 형성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탁현민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여성비하 논란이 불거졌을 때, 정현백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은 그의 사퇴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반려했다. 정 전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다. 문제제기한 사람을 문제 삼은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권력형 성범죄에서도 마찬가지 대응이 나왔다.
민주당은 단호해야 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입을 피해가 우려된 탓인지 페미니즘을 외면하고 말았다. 구조적 성차별의 무게를 체감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고, 남성 중심적 구조에 맞서 행동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이준석 의원은 백래시를 파고들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당시 ‘이대남’을 프레임화했다. 민주당은 페미니즘 때문에 진 것이라는 프레임도 양산했다. 페미니즘을 버려야 이긴다는 잘못된 공식이 생겼다. 이 의원은 사람들이 커뮤니티나 유튜브 영상 댓글들에서만 이야기하던 ‘집게손가락’ 이슈를 SNS를 통해 공론장으로 끌고 왔다.언론들에서 이를 받아주며 반페미니즘 정치가 확산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기 올라타 재미를 봤다.”
- 차기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대표는 젠더 통합 정책에 집중한다고 한다. 이전의 공식과 다르다고 볼 수 있나.
“아니다. 그의 말하기는 비겁하다. 성차별은 성차별이고 성폭력은 성폭력인데, 이를 젠더 갈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성이 겪는 일상적 차별과 폭력의 문제를 분명히 호명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안티페미니즘의 득세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한 쪽에서 차별을 하고 한 쪽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는데 이걸 둘이 싸운다고 말한다면, 차별하는 사람 쪽에 힘을 싣는 것이다.
성평등 정치의 귀환 없는 윤석열 퇴진은 필연적으로 반쪽짜리 퇴진일 수밖에 없다. 이를 외면한다면 상황은 반복된다. 이재명 대표가 ‘윤석열 퇴진이 반여성 정치의 퇴진’이라고 선언한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여성 목소리 반영할 정치개혁 필요
“주체의 각성으로 잘못된 공식 바꿔야”
- ‘잘못된 공식’은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나.
“여성의 목소리가 제도권 정치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구조를 바꿔야 한다. 표의 비례성을 높이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게 결선투표제, 전면 비례대표제, 교섭단체 요건 완화 등을 실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영정치에 여성정치가 포박당해 현 구조를 바꿔 내기 어렵다. 21대 국회에서 이를 느꼈다. 거대 양당 진영논리가 더 강해서 여성 의제를 두고 협업할 수가 없었다. 연대가 만들어질 틈이 없더라. 비례대표 여성할당제를 통해 여성 정치인이 전체 59명(19%)까지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적은 수다. 지역구 후보 30% 이상을 추천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상 권고조항은 이행되고 있지 않다.
직접적인 여성정치인 확대와 관련해서는 지역구 후보에 여성 공천 30%를 의무화하고, 이를 어기면 쌈짓돈처럼 쓰이는 여성정치발전기금을 회수하는 견제 장치를 만드는 건 어떤가.”
-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정치개혁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데.
“그래서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함께 필요하다. 여성 각성이 필요하다. 여성은 요청하는 주체가 아니라 요청을 수용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저만 해도 2017년 광장에서 각성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처벌받는 것 외에도 다른 사회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세상이 바뀌길 원했다. 그래서 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외면하면서 방황하던 때(장 전 의원의 동생은 발달장애인이다), 심상정 전 정의당 의원에게서 (정치) 제안이 왔다.”
- 당장 제도권 정치에서 다뤄야 하는 시급한 여성 의제를 꼽자면.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차별은 두더지 잡기 GAME 같은 거다. 모든 두더지를 한 번에 잡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두더지를 한 번에 잡자는 기본적인 인권법이 차별금지법이다. 가장 다수의 약자인 여성은 물론 모든 약자에게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약자의 권리 존중과도 맞닿아 있는 법이다.
여성을 향한 폭력 중지 의제 역시 놓칠 수 없다. 법제도로 보자면 2019년 낙태죄 위헌 판결 이후 여성의 안전한 임신 중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보건의료체계를 마련하는 입법, 비동의 강간을 처벌할 수 있는 비동의강간죄법 제정 등이 있다.
사회적 의제로는 동덕여대 투쟁을 꼽을 수 있다. 사태의 핵심은 사학 비리와 학내 민주화 문제이기에 국회 내에서 다뤄져야 하는 문제다.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텔레그램·페이스북·엑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규제하는 것도 논의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2017년의 저처럼, 이번 광장에서 각성한 2030 여성들을 본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직접 해도 된다고. 응원봉 들던 손으로 의사봉 들어도 된다고. 저는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선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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