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종시에 위치한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세종사무소. 팔에 태극기가 새겨진 생활복을 입은 소방본부 임원들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소방노동자’ 입니다
소방공무원노조 허용 3년, 조합원 증가 … 화재진압시 순직 여전, 단체교섭·인력충원 ‘제자리’
지난 22일 오전 11시 세종시 공무원노조 소방본부 세종사무소.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나타난 김수룡(42) 소방본부 대변인이자 세종지부장이 바삐 사무소로 들어왔다.
“기자님, 죄송해요. 강의를 듣고 오느라고요.”
한국고용노동교육원에서 노조 임원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듣고 왔다는 김 대변인이 숨 돌릴새 없이 말을 건넸다. 2년 전 퇴직한 전 지부장 자리를 대신해 보궐선거로 지부장을 맡게 된 김 대변인은 올해부터 소방본부 대변인 자리도 겸하게 됐다. “바쁘겠다”는 기자의 인사말에 “건강 챙기는 게 쉽지 않다”는 웃음기 어린 답변이 돌아왔다.
실제로 ‘노조하는’ 소방관은 무척 바쁘다. 공무원·교원 노조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제도는 지난해 12월부터 관련법이 시행되면서 문이 열렸다. 하지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공무원과 교원의 타임오프 한도 논의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 연차휴가나 ‘비번’인 날 노조활동을 하는 소방공무원이 대부분이다. 세종소방본부에 소속된 12년 차 소방관인 김 대변인도 ‘주(간)-야(간)-비(번)-비(번)’ 일명 4조2교대 야간근무를 마치고 나서야 노조사무실로 출근한다. 녹초가 된 몸으로 쉬지도 못한 채 노조활동을 하는 것이다.
소방공무원노조만 5개, 조합원 3만명 시대
2021년 7월부터 개정된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이 시행되면서 소방관도 노조를 할 수 있게 됐다. 3년이 지난 지금은 바야흐로 ‘노조 춘추전국시대’다. 출범 당시 4개 노조로 출발했던 소방공무원노조가 5개가 되면서 조직경쟁도 치열하다.
공무원노조 소방본부는 소방공무원노조 중 규모가 가장 크다. 17개 시·도 모두와 119항공 분야까지 18개의 지부, 200여개 지회가 있다. 지난달 기준 조합원은 2만1천여명으로 임원은 25명이다. 임원 중 2명은 ‘노조 전임자’로 권영각 본부장과 김동욱 사무처장은 조합비로 전임활동을 하고 있다. 최대 규모 노조로서 소방청·행정안전부·인사혁신처 등과 교섭 외 간담회를 이끌고 있다.
한국노총 공무원연맹 전국소방안전공무원노조(소방노조)는 18개 지역본부로 구성돼 있다. 지난 23일 2기 집행부로 홍순탁 위원장과 공병삼 사무총장이 당선됐다. 소방노조에 따르면 올 초 기준 조합원은 4천800명으로 출범 당시보다 약간 줄어든 상태다. 소방노조는 주로 대국회 사업을 벌이며 입법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공무원노조의 총연합단체인 공노총 소속의 국가공무원노조 소방청지부에는 6개 지역본부가 존재한다. 고용노동부 노조회계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조합원수는 약 4천700명으로 추산된다. 2대 위원장인 고진영 위원장과 이창석 사무총장 체제로 인사혁신처 등과 간담회를 추진하며 퇴직연금 제도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상급단체가 없는 소방공무원노조도 있다. 2021년 7월부터 출범한 소방을사랑하는공무원노조(소사공노)다. 박일권 소사공노 위원장에 따르면 올 초 기준 6천282명의 조합원이 가입돼 있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소방통합공무원노조는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노선을 강조한다. 최영재 위원장에 따르면 1천500명의 조합원이 속해 있다.
“노조에 대한 낯선 시선 여전해
비공개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어”
김수룡 공무원노조 소방본부 대변인 세종지부장
2021년 7월 당시 2만여명이던 전체 소방공무원노조 가입자는 현재 3만명을 웃돈다. 지난해 기준 소방공무원은 6만6천797명으로 소방관 2명 중 1명은 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도 소방관들에게 ‘노조’는 낯선 존재다. ‘비공개 활동가’라고 불리며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로 노조활동을 하는 이들도 있다.
“상명하복이 확실한 조직이라 조직 상층부에서는 아직도 노조에 대한 시선이 열려 있지만은 않아요. 노조는 (불합리한) 지시에 개입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지부 내 임원 중에서 비공개로 활동하시는 분도 있고요. 보수적인 집단이죠.” 김수룡 대변인이 말했다.
이들이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20년, 많게는 30년 가까이 바뀌지 않았던 제도나 수당들이 노조가 생기면서 개선되기 시작했다. ‘21주기’라 불리던 근무체계를 바꿔낸 것이 대표적이다. 21주기는 3주, 즉 21일 단위로 근무 일정이 짜여지는 것으로 1주 동안 주간 근무를 하면 나머지 2주는 야간근무와 비번대기 근무를 격일로 반복하는 체계다.
불규칙한 근무 형태로 소방관들의 피로도를 높이는 주범으로 지목돼왔다. 공무원노조 소방본부와 국공노 소방청지부, 공무원연맹 소방노조 등은 지난 2022년 설문조사 등을 실시하며 근무체계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같은해부터 지역별로 ‘당직-비번-휴무’의 3조1교대 전환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지역·소방서·직렬마다 4조2교대나 3조1교대 등 차이는 있지만 21주기는 사라지는 추세다.
30년 가까이 제자리던 구조구급활동비도 인상됐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9월 1996년 이후 27년 만에 구조구급 업무를 담당하는 소방관에게 지급되는 활동비를 현행 10만원에서 2024년부터 20만원으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 역시 소방공무원노조들이 오랜 시간 요구해 온 결과였다.
“반쪽짜리 국가직” 오명은 언제 벗나
김동욱 공무원노조 소방본부 사무처장.
‘반쪽짜리 국가직’이라는 현실은 노조활동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다. 행정안전부 소속의 중앙행정기관인 소방청은 독립적인 예산 편성·집행 권한이 없다. 지방직과 국가직으로 이원화돼 있던 소방직은 지난 2020년 모두 국가직으로 전환됐다.
행안부는 당시 국가직 전환을 발표하며 “시·도 재정여건에 따라 인력·시설·장비 등 지역별 소방에 대한 투자의 격차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 균등한 소방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가직 전환 4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매년 소방예산의 국비 비중은 10~15% 수준에 머무른다. 지방자치법상 소방사무를 지방자치단체 사무 범위에 포함하고 있어 예산과 인사·조직 등 주요 권한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장이 보유하고 있다.
“전체 소방예산 중 15% 정도가 국비이고 나머지 85%가 지역에서 나와요. 무늬만 국가직이라는 비판의 핵심에는 예산 문제가 있습니다.”
김동욱 공무원노조 소방본부 사무처장은 “그나마 소방안전교부세가 지역마다 예산 차이를 완화해 주는 역할을 했다”며 “일몰 시한을 1년 연장한 상태인데 언제 다시 없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소방안전교부세란 소방의 부족한 예산을 보충하기 위해 지난 2015년 도입된 제도다. 담배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 총액의 45% 중 25%포인트는 소방공무원 인건비로 나머지 20%포인트는 소방·안전 사업비로 쓰인다.
사업비는 다시 두 분야로 나뉘어 소방 분야에 75%를, 안전 분야에 25%를 지출해 왔다. 지방교부세법에 근거해 시행돼 온 소방안전교부세는 2023년 말로 근거 조항 일몰을 앞두면서 폐지 논란이 일었다.
소방공무원노조들은 일몰 시한 연장을 위해 지난해부터 기자회견 등을 통해 교부세 필요성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행안부가 발의한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해 21월 국무회의를 통과해 해당 조항의 유효기간이 1년 연장된 상태다.
김수룡 대변인은 “일몰 규정으로 자꾸 연장만 할 게 아니라 교부세를 법제화하거나 안정적인 예산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일몰 시기가 도래할 때마다 조마조마하다”며 “소방청에서 지역소방본부로 정책을 지시할 때마다 ‘예산 확보에 만전을 기하라’는 문구를 넣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강조했다.
노조의 ‘꽃’ 교섭은 멀어
간담회·협의체 활동으로 우회
지난 3년간 적지 않은 성과를 이뤘지만 소방공무원노조 중 아직 소방청이나 행안부와 정식으로 교섭한 곳은 없다. 소방공무원노조는 모든 공무원과 관련해 인사혁신처와 진행하는 정부교섭, 국가공무원에 대해 인사혁신처와 하는 행정부교섭, 소방청과의 교섭, 시·도지사와 진행하는 교섭 등 다양한 방식의 교섭을 시도할 수 있는데 2020 정부교섭은 지난해부터 파행 상태다.
교섭위원 배분 방식을 놓고 공무원노조·공노총과 통합공무원노조·정부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교섭 전망이 어둡다. 소방공무원노조로서는 소방청교섭과 시·도지사와 진행하는 시·도단체교섭이 가장 현실적인데, 소방청은 예산에 대한 권한이 없어 교섭의 실질적인 효과가 떨어진다. 시·도 지방자치단체와의 교섭은 근거법이 없어 지자체장에게 교섭을 요구할 명분이 없다.
따라서 출범 3년이 지난 지금 소방공무원노조들은 교섭 외 창구 활용에 힘을 쏟고 있다. 노조의 ‘꽃’인 단체교섭의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제도나 근무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간담회나 입법활동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병삼 공무원연맹 소방노조 사무총장은 “소방노조의 방향성은 정책 노조로 국회 활동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며 “노조활동을 해 보니 법을 바꾸지 않으면 이뤄지는 게 없다는 점에서 입법부와 간담회나 토론회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룡 대변인도 “소방노조가 여러 곳 존재하는 상황에서 노조들끼리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교섭은 당장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교섭과 함께 별도의 노력을 하면서 문제를 풀어 나가는 방법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 “인력충원”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소방공무원노조 앞엔 수많은 과제가 놓여 있다. 대표적으로 인력충원 문제가 꼽힌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20~30대의 젊은 소방관 3명이 잇따라 순직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소방청은 신속 동료구조팀(RIT)이라는 대책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비현실적인 대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RIT는 사고에 처한 소방관을 구하는 팀을 사전에 꾸려놓는 것으로, 인력증원 없이는 효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사고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직접적인 그날의 사고 원인은 다 다르지만 사고 저변에는 한 번도 넉넉하지 못했던 소방력의 문제가 있습니다. 항상 소방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고 진압이 진행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같은 공간에서 2명이 위험을 감지하는 것과 4명이 위험을 감지하는 것은 결과가 판이하게 다릅니다. 인력이 여유로우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확률도 더 높아집니다.”
김수룡 대변인은 “다양한 기능을 가진 소방차는 늘어났는데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 한 사람이 차량을 여러 대 관리하는 게 현실”이라며 “특수차라 점검이 일상적인데 한 명이 여러 대를 관리하다 보니 문제에 대처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방공무원은 지난해 기준 6만6천797명으로 지난해 7월 13만1천46명인 경찰공무원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공무원노조는 현재 인력에서 1만5천명 이상의 대대적인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죽어서 영웅이 무슨 소용있나”
“소방관이 순직할 때마다 영웅이라고 칭송하고 희생자들의 헌신을 조명합니다. 죽어서 영웅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난 2월1일 권영각 공무원노조 소방본부장은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한 얘기다. 매년 반복해서 떠나보내는 동료들 뒤에 붙는 영웅이라는 칭호에 소방관들은 회의감을 느낀다. 소방노동자에게 노조란 삶을 계속 이어 나가기 위한 활동이자 더 건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목표 그 자체인 이유다.
23년 차 베테랑 소방관인 김동욱 사무처장은 “조직 내에서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것들을 바꾸려고 시작하다 보니 노조를 하게 됐다”며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이고 인간적인 관계로 바꿔 나가는 것이 지향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수룡 대변인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이 소방노동자, 나아가 모든 노동자에게 당연한 권리라는 점이 널리 인식되기를 바란다”며 “더불어 소방노조에서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소방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조직은 상명하복이 굉장히 강력하게 작용하는 곳이었고 우리의 생명을 담보로 일하면서도 우리의 기본권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없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동료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소방노동자라고요. 그리고 노조로 뭉쳐서 요구했을 때 우리의 목소리가 가장 강력하게 힘을 발휘할 거라고요,”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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