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 기소 74건 전수조사 … 사망 101명·부상 33명, 후진국형 재해 대부분 … 원청 의무 위반 사항 다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을 맞았다. 2022년 1월27일 이후 기소된 사건 기준으로 노동자 101명이 스러졌다. 무려 23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아리셀 화재 참사까지 이어졌다. 노동자·시민의 생명과 신체 보호를 목적으로 정해진 법률이 법원에선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진단이 필요하다. <매일노동뉴스>는 검찰 기소와 재판 현황을 분석해 사법기관 법 적용의 한계와 개선 방향을 모색한다. 특히 현재까지 기소·선고된 기업의 실명을 ‘국민의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모두 공개한다. <편집자>
“중대재해처벌법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판단했다.”
노동자 7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친 2022년 9월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검찰이 사고 2년 만인 지난해 8월 원청인 현대백화점의 김형종 전 대표이사 사장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해 ‘불기소(무혐의)’ 처분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대전 현대아울렛 화재는 23명이 목숨을 잃은 지난해 6월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화재 참사 이전에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사고다. 화물차 하역장 바닥에 방치된 폐지와 적재된 의류박스가 화재를 키워 10분 만에 화염이 번졌고, 택배·청소·방재 업무 노동자들이 희생됐다. 하지만 검찰은 원청이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등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했다고 판단했다. 고용노동부의 기소 의견 송치에도 대전지검 공공·반부패범죄전담부(부장검사 김가람)가 여러 차례 보강수사 지휘 끝에 내린 결론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무려 31개월 수사, 2년 이상 20%
검찰의 수사와 기소 여부는 ‘깜깜이’다. 그러나 2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와 노동부 수사자료, 검찰 공소사실을 종합하면 현재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경영책임자와 법인은 총 74건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노동부는 법 시행 후 866건을 수사했고, 이 중 160건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이 기소한 비율은 송치 사건 중 최소 46%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이 됐지만, 검찰에 넘어온 사건 중 절반도 기소하지 않은 셈이다.
검찰의 수사기간은 들쭉날쭉이다. 검찰이 재해 발생일로부터 경영책임자를 재판에 넘기기까지 평균 16개월이 걸렸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기에는 기소가 빨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론의 관심이 적을수록, 수사 기간은 늘었다. 특히 2022년 4월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 지난해 11월 기소돼 무려 31개월(2년7개월)이 걸린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은 노동자 1명이 안전난간이 개방된 상태에서 자재를 옮기던 중 3.9미터 아래로 추락해 숨진 사고다.
기소까지 2년 이상 걸린 사건도 15건으로 전체 기소의 20.3%를 차지했다. 반면 23명이나 숨진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는 지난해 9월 기소돼 수사기간이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1호 기소인 두성산업 급성중독 사건 역시 4개월로 수사기간이 짧았다. 사안에 따라 수사기간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모양새다.
재래형 사고 72%, 건설업 ‘최다’
기소된 사건을 보면 ‘재래형 사고’가 대부분으로 확인됐다. 전체 기소 72건 중 추락(20건)·끼임(18건)·깔림(15건) 사고가 53건으로, 전체 기소(74건)의 약 72%를 차지했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다. 부딪힘(8건), 화재·폭발(5건), 감전(3건), 베임·중독(각 2건), 열사병(1건)이 뒤를 이었다.
업종이 파악되지 않은 12건을 뺀 62건의 기소를 기준으로 업종 형태를 보면 ‘건설업’이 26건(40.6%)으로 가장 많았다. 제조업도 20건(31.3%)의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철강업(6건), 아파트 관리업(3건), 선박 건조업·신용조합(각 2건), 공기업·냉온수 공급업·시설관리업·폐기물 처리업·항공 운송지원 서비스업이 각 1건씩 기소됐다.
의무 위반 사항은 명확했다. 기소 사건 대부분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4조가 정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 조치’를 위반했다. 경영책임자는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하고, 유해·위험요인의 확인 및 개선이 이뤄지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62건 기소를 기준으로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4조3호)’을 위반한 사례가 53건으로 가장 많았다.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4조5호)’ 위반은 40건, ‘안전보건 관련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 마련(4조7호)’ 위반은 21건으로 나타났다. ‘중대재해 발생시 작업 중지 등 매뉴얼 마련(4조8호)’ 위반이 18건으로 뒤를 이었다.
현대아울렛 등 최소 18건 불기소 ‘피해자 과실’
주목할 부분은 ‘불기소 사건’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불기소는 최소 18건이다. 본지 취재 결과 이 중 12건은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대흥알앤티(13명 급성중독·2022년 6월 불기소) △건설사 화성산업(하청노동자 1명 추락사·2023년 5월 불기소) △정유업체 에스오일(탱크 폭발 하청노동자 1명 사망 원하청 노동자 9명 중화상·2023년 8월 불기소) △LG전자 자회사 하이엠솔루텍(에어컨 설치기사 1명 추락사·2023년 8월 불기소) △속초시·고성군·양양군(헬기추락 5명 사망·2023년 10월 불기소) △건설사 용원건설(하청노동자 1명 끼임사·2023년 10월 불기소) △홈플러스(지입기사 1명 끼임사·2023년 11월 불기소) △현대자동차(노동자 1명 끼임사·2023년 11월 불기소) 등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재해자 과실 등을 이유로 원청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특히 2022년 4월 에어컨 설치기사가 추락한 하이엠솔루텍의 경우 검찰은 수리기사가 예약일보다 하루 앞당겨 수리를 하며 ‘즉흥적’으로 근무했다는 점을 불기소 이유로 들었다. 대기업의 사건은 최고안전보건책임자(CSO)까지 불기소되는 등 재판으로 가지 않고 종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드러났다.
법조계는 형식적인 조치만으로 불기소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박다혜 변호사(법률사무소 고른 대표)는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있더라도 체계대로 이행되는지를 지속해서 점검하지 못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이라며 “검찰이 페이퍼로만 체계가 갖춰졌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 시행 3년이 되도록 수사기간이 늘어나고, 기소가 늦어지고 있는데 검찰에 수사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노동부가 기소의견을 냈는데도 보강수사만 지휘한다면 법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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