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고 35건 전수조사 결과 ‘일률적 감경사유’ … 유족합의·재발방지·범행인정 ‘면죄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을 맞았다. 2022년 1월27일 이후 기소된 사건 기준으로 노동자 101명이 스러졌다. 무려 23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아리셀 화재 참사까지 이어졌다. 노동자·시민의 생명과 신체 보호를 목적으로 정해진 법률이 법원에선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진단이 필요하다. <매일노동뉴스>는 검찰 기소와 재판 현황을 분석해 사법기관 법 적용의 한계와 개선 방향을 모색한다. 특히 현재까지 기소·선고된 기업의 실명을 ‘국민의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모두 공개한다. <편집자>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업주가 중대재해 범행을 인정하고 재해자 유족과 합의하면 감형하는 추세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면 형량은 또 깎였다. 특히 ‘피해자의 과실’을 정상참작 요인으로 삼아 재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실형 피한 86% ‘판박이’ 정상참작
<매일노동뉴스>가 2022년 1월27일부터 현재까지 선고된 판결문 35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26건(74.2%)로 가장 많았다. 실형은 5건(14.3%)에 그쳤고, 벌금형과 무죄는 각각 2건(5.7%)이 나왔다. 형이 확정(1·2심 15건)됐거나 상소한 사건에서도 형량은 그대로 유지됐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85.7%(30건)가 실형을 피한 데에는 법원의 ‘정상참작’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선고 35건의 관할법원은 달랐지만, 법원은 유리한 양형인자로 △범행 인정과 반성 △유족 합의(처벌불원) △동종의 범죄전력 없음 △재발방지 노력 등을 공통으로 제시했다.
유족과 합의해 유족이 처벌불원 의사를 밝힌 경우 사업주 대부분의 형량이 감경됐다. 전체 사건 중 32건이 적용됐다.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도 선고 21건에서 유리한 양형요소로 언급됐다. 범행을 인정하거나 반성한 사업주 20명도 법원이 ‘자비’를 베풀었다. 동종의 범죄전력(벌금형 이하 포함)이 없는 사업주 9명에 대해서도 법원은 감형했다.
주목할 부분은 ‘피해자 과실’이다. 법원은 피해자가 실수로 위험한 작업을 하거나 위험공정을 알았는데도 무리하게 작업했다며 사업주 9명의 형량을 깎았다. 이들 경영책임자에게 선고된 형량은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6건이었고, 벌금 2건이 있었다. 무죄가 선고된 사건(26호 지디종합건설)도 나왔다.
‘피해자 과실’ 감형요인 9건
“작업방식 선택, 사고에 큰 영향”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린 판결은 1호 선고인 온유파트너스(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를 포함해 △5호 건륭건설(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12호 성무건설(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14호 LDS산업개발(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19호 태성종합건설(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23호 우진플라임(벌금 3천만원) △24호 한영피앤에스(벌금 5천만원) △26호 지디종합건설(무죄) △33호 디케이(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등 9건이다.
예컨대 2022년 11월 노동자 1명이 강판 코일 분리 작업을 하다 전도된 코일에 깔려 숨진 사고와 관련해 기소된 광주 광산구 소재 철강제조업체 ‘디케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사망사고 발생에는 피해자의 위험한 작업방식 선택이 큰 영향을 미쳤다. 디케이에서는 피해자에게 안전모를 지급했다”며 대표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안전모를 쓰지 않아 사고가 났다는 취지다.
그런데 법원은 야간에 피해자가 작업지휘자 없이 작업했고, 사업주가 위험상황을 알고도 방치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피해자의 과실이 컸다는 이유가 감형 요인이 된 것이다. 이 밖에도 피해자가 평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사다리에서 추락했다는 판결(6호 선고 국제경보산업·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도 나왔다. 1호 기소인 두성산업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유가 감형 요인이 됐다.
‘반복 사고’ 실형·집유 정반대 판단 ‘고무줄 잣대’
불리한 양형인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취지가 사실상 그대로 적힌 판결문이 대부분이었다. 판결문에는 “피고인들의 안전조치의무 위반으로 피해자가 사망하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다”는 내용이 반복해서 언급됐다.
동일한 양형요소는 사건에 따라 달리 적용됐다. 특히 실형의 근거가 됐던 ‘반복된 사고’가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건에서도 불리한 양형요소로 언급된 부분은 주목할 지점이다. 과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11곳 중에서 한국제강(징역 1년)·삼강에스엔씨(징역 2년)·바론건설(징역 2년)을 제외한 8곳의 경영책임자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심지어 원청이 18차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 건설사 ‘상운건설(17호 선고)’ 대표도 지난해 5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그대로 확정됐다. 유사한 사고가 반복된 아파트 관리업체 ‘광인산업’은 지난해 8월 1심에서 법정형 하한선보다 낮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과거 피해자가 사망해 벌금형을 받았던 건설사 LDS산업개발 역시 또다시 사망사고 발생했는데도 지난해 2월 대표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불리한 양형요소가 적용됐는데도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로 ‘솜방망이’ 처벌을 한 것이다.
‘인과관계 부정’ 첫 무죄 … “실형 5건 사례 살펴야”
이러한 신호는 결국 ‘무죄’ 선고로 이어졌다. 전체 선고의 94%가 유죄로 인정됐지만, △26호 선고 지디종합건설(2024년 10월) △32호 선고 평화오일씰공업(2024년 12월) 2건은 대표가 무죄로 풀려났다. 지디종합건설은 공사금액(50억원 미만) 해석으로 무죄가 나왔지만, 평화오일씰공업은 ‘상당인과관계’ 자체가 부정됐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평화오일씰공업’ 사건 대표는 2022년 2월 하청노동자 1명이 압축 성형기에서 튕긴 플라스틱 공구(수공구)에 머리를 부딪혀 숨진 사고로 2023년 2월 기소됐다. 그런데 법원은 “국내에서 과거 같은 종류의 성형기 작동 과정에서 공구와 같은 물체가 튕겨 나오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다”며 사고 가능성을 사업주가 예견할 수 없다고 보고 원청 대표와 법인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법조계는 실형 선고 사례를 통해 법원이 ‘중대재해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실제 실형 선고 5건에 대해 법원은 반복된 사고와 처벌 전력 등 중대재해 위험 신호를 경영책임자가 무시했다고 판단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중대재해처벌법은 아직 구체적인 양형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같은 양형인자라도 형량이 달라지는 것은 일관적이지 않아 피고인과 검찰 모두 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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